이익재(강남세브란스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환자들은 의사를 어렵고 무뚝뚝하게 느낀다. 의료라는 분야 자체가 어려운 탓이기도 하지만 환자나 보호자가 의료지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에서 처음으로 의료분야의 아이디어와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의미있는 행사가 열린다. 오는 28일 강남세브란스병원 주최로 열리는 ‘테드엑스 언주로(TEDx Eonjuro)’다.

 

테드란 ‘퍼트릴만한 가치가 있는’ 18분 이내 강의 동영상을 전 세계적으로 공유하는 행사다.

 

지난 13일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테드엑스 언주로를 총괄하는 이익재 교수(방사선종양학과)를 만나 이 행사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 환자들 입장에서는 의사의 말을 어렵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환자가 접할 수 있는 정보가 많지 않은 것이 문제 아닌가.

 

"의료 지식 관련 정보는 무척 많다. 단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인 것들이 많은 것이 문제다. 정보 공유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문제다. 병원에서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강좌는 너무 쉽게 풀어서 이야기하고, 의료진들이 참여하는 전문적인 컨퍼런스에서는 세부적인 부분을 이야기 하다 보니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논문 등 학술자료는 많이 공유되고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막연히 궁금해 하기는 하지만 본인이나 가족이 어떤 질병에 걸리기 전에는 관련 논문 등을 찾아보거나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은 병원을 찾는 환자나 보호자 중에 본인 질병과 관련된 논문 등을 미리 찾아보고 오는 경우도 많다."

 

  - 테드엑스 언주로라는 행사를 개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잘못된 내용의 의료 지식, 의료 상식이 인터넷 등을 통해 퍼지면서 일반인들의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바로잡고 싶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일반인들이 의료 지식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반인 입장에서 너무 쉽지도, 너무 어렵지도 않게 의료 지식을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병원 내 동아리를 만들어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다양한 직군 간 소통을 목적으로 시작했다. 그게 이번 테드엑스 행사를 만든 사내 동아리 연인이다. 동아리 활동을 잘 하려면 SNS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마트폰, 아이패드 등 스마트 디바이스 활용법에 대한 초청강의를 많이 열었다. 아이패드와 키노트를 이용한 프리젠테이션 강의를 해 주신 최웅식 선생님께서 테드엑스 한국 대사로 활동하고 계신 것을 알았다. 테드엑스라는 행사의 취지도 와 닿았고, 병원 내 좋은 강의들을 일반인들도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면 의료 지식 공유의 범위가 넓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다."

 

- 처음 하는 행사인 만큼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물론 어려움이 많았다. ‘테드’라는 명칭은 미국에 있는 테드 본사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아야만 사용할 수 있다. 또 테드와 비슷한 행사로 ‘메드’나 ‘메드앤유’ 등이 있는데 테드 본사에서는 의료 쪽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있고 메드앤유 행사와 중복되는 부분이 있는 것 아니냐며 쉽게 라이선스를 내 주지 않았다. 라이선스를 받기 위해 동아리 회원들과 집행부 오거나이저들이 새벽시간에 모여 미국 본사와 화상채팅으로 수차례 인터뷰를 했다. 다들 피곤했을 텐데 열심히 참여 해 줬다. 그 덕분에 지난해 7월 국내 의료기관으로는 최초로 테드엑스 라이선스를 받았다. '테드' 명칭을 만드는데도 어려움이 많았다. 테드엑스 세브란스나 테드엑스 매봉, 테드엑스 도곡 등도 생각했었는데 결국 테드엑스 언주로라는 명칭을 선택했다. 이번 행사의 롤모델로 삼은 행사가 ‘테드엑스 마스트릭트’다. 네덜란드 마스트릭트 의과대학의 테드 행사인데 이 병원 앞 길 이름이 마스트릭트다. 이들 역시 의료 정보의 공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언주로도 강남 세브란스 병원 앞을 지나면서 강남을 가로지르는 큰 길이다. 테드엑스 언주로라는 이름에는 우리가 준비하는 테드 행사가 대한민국 의료계에 큰 흐름이 됐으면 하는 뜻도 있다."

 

- 발표자들 중 의사는 한 명 밖에 없다. 행사 취지에 맞는 발표 내용을 고르는 것도 어려울 것 같다.

 

"의사들이 주로 나와 발표하면 의사들을 위한 행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발표자 중 유일하게 의사인 제너럴닥터 김승범 원장은 의료라는 것이 이런 형태로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발표자들은 의료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의료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작동 해 환자들을 잘 치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물론 발표자들을 섭외하는데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테드는 비영리적인 행사다. 발표자들에게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그만큼 부탁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 또 여러 발표자들이 테드엑스 행사에 맞는 내용을 발표할 수 있도록 발표자와 행사를 준비하는 오거나이저가 일대일로 큐레이팅을 하는 과정을 거친다. 발표자들이 다들 자기 일만으로도 바쁜데 열심히 참여 해 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 의료 지식의 공유가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병원에서는 중증 환자를 대상으로 협진을 한다. 협진은 여러 의사들이 모여서 환자의 증상과 치료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최선의 치료 방법을 선택 해 치료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의사끼리의 의견 교환으로 협진이 이뤄지지 않는다. 의사들 간 의견이 정리되고 나면 환자와 다시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환자가 의사의 의견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한다. 그래야 치료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다. 문제는 또 있다. 협진을 하면 치료 효과가 높지만 의료진에게 이익은 없다. 예컨대 열 명의 의사가 한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협진을 한다고 하면 의료진 한사람에 해당하는 수가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도적 문제다. 의료 지식의 공유는 이러한 제도적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환자와 환자 가족이 의료 환경과 제도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불합리한 부분을 개선하는데 힘을 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2회 부터는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다른 병원의 젊은 의사들과 함께 하는 행사를 만들 계획이다. 여러 병원의 의료진이 함께 하는 행사가 된다면 환자와 의료진간의 거리를 더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테드(TED)

1984년 미국에서 시작된 지식공유를 위한 비영리단체다. 테드엑스는 테드 행사를 만드는 사람들을 말한다. 기술, 오락, 디자인(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 중 ‘퍼트릴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의 공유’가 모토다. 18분을 넘기지 않는 강연으로 지식을 ‘공유’해야 하고 일정한 심사를 통과한 단체에만 라이선스를 부여해 파트너로 인정한다.

 

국내에서는 대학과 기업체 중심으로 테드 라이선스를 획득하고 있다. 테드의 모든 강의 내용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 CC)의 원칙에 따라 누구나 사용·공유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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