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문앞서 한참 서성이던 모습 CCTV 녹화돼…개원 실패 등 아픈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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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오전 전남 광주시 남구 송하동의 H요양병원에서 투신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병원 건물 옥상에서 스스로 몸을 던진 K씨(52세, 남)는 이 병원에 출근한지 이틀밖에 안된 의사였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그는 지난 20일부터 H요양병원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매일 오후 5시 30분부터 이튿날 오전 8시 30분까지 근무하는 야간당직의로 취직한 것이다.

그런 그가 왜 근무하지 이틀만에 투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사건의 발단은 첫 근무일인 지난 20일 K씨가 돌보던 노인 환자(90세, 여)의 바이탈 사인이 급격히 안 좋아지면서 시작됐다.

H요양병원 직원 말에 따르면 병원에 입원한 지 몇 개월 안된 할머니는 원래 심장질환을 겪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직원은 “요즘 시기가 요양병원에서 노인 환자들의 사망률이 높은 시기”라며 “돌아가신 할머니도 평소에 컨디션이 좋았는데 갑자기 상태가 안좋아졌다”고 설명했다.

K씨를 비롯한 의료진의 대응으로 그 노인 환자가 응급상황에서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는가 싶더니 유족들이 도착하기 5~10분 전 갑자기 심정지로 사망했다.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조치를 다하고 안심을 하다가 급작스럽게 당한 일이었다. 그런데 사망한 노인환자의 유족들이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며 담당 의사인 K씨에게 거세게 항의했다.

K씨가 그날 밤 부인에게 보낸 휴대폰 문자엔 ‘환자를 내가 죽인 것 같아 괴롭다’라는 문구가 자주 반복됐다고 한다.

부인은 끝없이 위로했지만 결국 K씨는 병원에 출근한지 이틀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병원 직원은 “투신하기 전에 많이 망설였던 것 같다. CCTV를 확인해 보니 옥상 문을 열기 전 40~50분간을 한 자리에서 서성거리는 모습이 보였다”고 울먹이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혼자 남게된 K씨의 부인은 두 번의 뇌종양 수술을 받는 동안 이마가 움푹 꺼지고 오른쪽 눈과 왼쪽 팔다리를 못쓰게 됐다.

2010년 12월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에서 뇌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코를 통한 내시경 수술을 받다가 실명과 반신불수라는 치명적 부작용을 얻었다. 

K씨 부인은 “가족 얘기로는 48일만에 중환자실에서 깨어났다고 한다. 근 1년 이상을 간병했던 남편의 맘 고생이 심했을 거다. 남편은 수술한 병원에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내가 그러지 말라고 몇차례 말렸는데. 나라도 남편 심정을 헤아렸어야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고인이 된 K씨가 H요양병원에 야간당직의로 취지하게된 사연도 현재 의사들이 처한 어려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그는 십수년 전 전남의 한 종합병원(400병상급)에서 산부인과 봉직의로 근무했다고 한다. 그러다 고향인 전남 강진으로 내려가 산부인과를 개원했다. 

거의 10년 가까이 산부인과를 꾸렸지만 환자가 점점 줄어 2009년에 폐업을 하고 말았다. 

전남 강진군은 작년 산부인과 의원을 유치하려고 애를 썼지만 실패한 지역이다. 지금은 의료취약지역으로 지정돼 산부인과 의사를 고용하는데 정부 지원금을 받고 있다.

K씨는 그후 장흥과 목포의 종합병원을 돌며 일을 하다가 부인의 뇌종양 소식을 접하게 됐다.

부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인이 반신불수와 한쪽 눈을 실명한데 대해 몹시 괴로워했다고 한다. 그 충격으로 다니던 병원도 그만뒀다.

그러다가 부인의 설득으로 나가게 된 요양병원에서 변을 당한 것이다.

“담당 의사가 한쪽 눈마저도 잘 안보이게 될거라고 하네요. 이마는 흉물스럽고. 날 위해 살아온 남편이 도대체 뭘 그렇게 잘못한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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