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연구소] 계속 이 비싼 사과를 먹게 될 것인가?

[라포르시안] 설날이 지나고도 ‘세계에서 제일 비싼’ 한국의 사과 가격은 화제다. 이미 작년 봄부터 사과 등 과일가격은 작황 부진으로 평년보다 50% 이상 올랐다. 흔한 겨울철 과일이었던 귤과 사과, 역시 부담없는 간식이던 바나나의 위상을 바꾼 가격표를 보면서 계속 이렇게 비싼 값으로 사먹어야 하는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신선 과일과 채소의 가격 변동이 커진 것은 한국만의 상황도 아니다. 영국, 스웨덴, 미국, 중국 등에서도 최근의 과일과 채소의 가격은 길게는 20년 기간중 최고 수준으로 상승해서 식품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다. 최근 가격동향에는 코로나19 이후 상품수요의 증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한 비료가격 및 에너지 가격상승이 반영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은 코로나 이전부터도 다른 나라들에 비하여 식료품 가격이 높았다. 2024년 현재에도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월등한 격차로 과일, 야채, 유제품, 육류 등의 가격이 높은데, OECD 국가 중 스위스와 아이슬란드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관련자료 바로가기). 먹고 사는 이 기본조건에 대해 정부는 적절하게 평가하고 대응하고 있는 것일까.   

정부는 1월에 발표한 <2024년 경제정책방향> 에서 ‘물가 안정’을 위해 역대 최고 수준의 관세 면제와 인하, 저율관세할당 도입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비싸진 국산 과일을 수입 과일로 대체하겠다는 이 계획은 효과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작년 봄 사과 가격이 급등했을 때도 똑같이 오렌지 수입계획을 내놓았지만 결과는 어땠나? 주 원산지 미국에서는 전년도의 허리케인과 대규모 홍수 등 기상악화로 수확량이 급감했고, 브라질과 유럽·호주 역시 폭염과 태풍, 냉해와 병충해 등으로 인한 작황 부진을 겪으면서 수입산 오렌지 가격이 상승하여 기대한 대체효과를 내지 못했다.

한국산 사과의 작황이 부진한 바로 그 이유, 즉 이상기후를 해외 원산지도 마찬가지로 겪으면서 공급이 부족해진 것이다. 날씨는 수요·공급과 함께 과일가격에 영향을 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기후변화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수입산 과일에 의존하는 가격정책은 진정한 대책이 되기 어려워졌다.

유럽중앙은행 발표에 따르면, 지난 30년간의 전지구적 기후온난화는 고소득국가와 저소득국가 모두에 명백한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으로 작용했고, 극단적 기후현상은 식품가격의 안정성에 큰 위험을 초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관련 연구 : The impact of global warming on inflation: averages, seasonality and extremes) 이상기후로 인한 농작물 수확량 감소와 유통기한 단축, 손실률 상승 등에 따른 공급 부족, 생산국의 무역 제한, 그로 인한 신선식품의 가격 급등락은 더욱 예측가능한 상수가 되었다. 이런 변화된 상황들은 당연히 정부의 새로운 농산물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고수했던 농산물 저가격정책은 한국 자본주의 축적을 위한 주요 전략으로 활용되면서 농촌의 황폐화를 이끌었고, 수입자유화 이후에는 농산물 가격 폭등시 수입농산물을 들여와 가격을 떨어트리는 ‘물가 안정’ 정책 패키지로 전환되게 되었다.

농촌을 식민화해온 이 오래된 농산물 최저가격보장제도는 농산물 가격 안정과 농가생산자 보호를 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관련기사: 거꾸로 가는 '밥상' 예산, 소비자와 생산자가 바꾸자). 또한 수입농산물 관세보조는 국산 농산물의 가격을 생산비가 보장되는 수준 이하로 하락시키기 때문에 농촌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뿐이다. 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농산물 가격은 물가지수 가중치가 낮기 때문에 제대로 된 (물가 안정)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관련 기사: 올해도 ‘물가’ 위주 농산물 수입 정책 계속)

따라서 정부의 농축산물과 과일에 대한 무관세·저관세 수입계획은 대내외 상황의 변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정책효과마저 기대할 수 없는 내용을 재탕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책임하고 안이하기 이를 데 없다. 과일 가격이 폭등하면 수입과일로 대응한다는 방식은 윤석열정부가 2023년 4월 양곡법 개정안을 “시장의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막대한 혈세를 들여 사들인다”는 이유로 거부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시 말하면 “비싸면 덜 사 먹으면 되고, 싸면 농사짓는 사람이 손해보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사람들이 양질의 식료품을 적절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도록 하고, 생산자는 안정적 생산환경에서 먹거리를 공급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시민들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국가의 책무가 아닌가. 

작년 1월 난방비 폭등때 우리는 석유나 가스같은 에너지 자원은 상품의 특성상 개인의 합리적 소비행위가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에 공급과 위험에 대처하는 국가의 책임이 더욱 중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농산물도 마찬가지이다. 농산물은 약간의 공급 변동만으로도 가격이 급변하는 특성이 있어 시장 기능에만 맡겨놓을 수 없다. 농산물유통종합정보시스템에서는 공산품과 확연하게 다른 과일과 농산물 가격동향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사과 월별 가격동향).

게다가 영양가 있고 저렴한 신선식품에 대한 가용성이 저하되면, 사람들은 고열량의 영양이 부족한 식품 소비를 늘리게 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보건학적 사실이다. 식단의 질과 영양이 저하되면 비만이나 심혈관질환, 2형 당뇨병 등 많은 만성질환 위험이 증가하고, 이는 식량 불안도가 높은 저소득가구의 건강을 더욱 나쁘게 만든다. 그러므로 다양한 제철 과일과 채소 등 신선식품에 대한 접근권은 중요한 공중보건의 문제이다.   

게다가 한국에서도 도시와 농촌을 불문하고 식료품 공급처의 부족을 의미하는 식품사막(food desert)이 사회적 문제로 진입했다(관련기사: 전국으로 확산하는 '식품 사막'···노인들 "장 보기 어려워 굶을 판"). 여기에 더해 비싼 가격이 식품사막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신선식품 접근권 보장 및 불평등 완화를 위한 정책개입이 시급하다.

2023년 지구 평균기온은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정한 1.5도에 거의 근접했다. 과학자들은 이런 기후변화는 토양과 식생에 영향을 주어 세계식량시스템을 파괴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농산물은 본래도 아니었지만, 더 이상 국제분업과 수요 공급에 의해 조정할 수 있는 시장적 상품이 아니게 되었다. 게다가 자재값과 원료비·인건비 상승, 농업인구의 고령화 및 지역 위축과 같은 생산자들이 처한 현실까지 감안하면, 가격 급등락에 대한 개입, 식량자급목표 등 정부의 농산물정책은 대대적인 재검토가 필요해졌다. 적정가격을 너머, 어떤 생산과 소비의 생태계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생존의 물적 조건에 대한 대안이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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