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민(대한응급의학과의사회장, 한림대성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라포르시안] 최근 의료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필수의료·지역의료 붕괴와 이를 살리기 위한 방안 모색이다. 그 중심에 응급의료가 있다. 지난해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 올해 대구 응급실 뺑뺑이 사건은 필수의료 붕괴에 대한 국가적 관심을 환기하는 계기가 됐고, 정부는 정부대로, 의료계는 의료계대로 정책·제도적 개선방안을 내놓고 있다. 특히, 정부는 지난 10월 ‘필수의료 혁신전략’을 발표하며 국내 열악한 응급의료 체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급의료 현장의 의사들의 반응은 차갑다. 급한 불 끄기에만 급급한 정부 정책으로는 본질적 문제 해결에 접근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국내 응급의료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 후 단기적 또는 중·장기적 미션을 수립하고, 각 미션에 적합한 구체적 계획에 맞게 개선해 나가야한다는 것이 응급의학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지난 8일 대한응급의학과의사회 이형민 회장을 만나 국내 응급의료의 현 상황과 정부 정책의 문제점, 응급의료 체계 정립을 위한 실질적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 국내 응급의료 체계의 현주소는. 응급의료 붕괴의 직접적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국내에 응급의료 체계 도입된 지 불과 3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볼륨은 세계적 수준이다. 세계적으로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가장 많은 국가는 미국이고, 호주와 뉴질랜드를 합쳐서 두 번째, 그리고 우리나라다. 국내에서 응급의료에 대한 목표점이 너무 높다 보니 만족도에선 부족한 점이 있지만, 응급의료의 질을 비롯해 응급 환자에 대한 적절한 처치 측면에서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누려왔고 지난 30년 동안 발전시켜왔던 응급의료는 전 세계에서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훌륭한 국내 응급의료가 왜 위기에 봉착했는지, 왜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생각해보면 분명히 취약한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대량 시스템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저가의 인력이 필요하다. 임금이 싸면서 오래 열심히 일해줄 수 있는, 즉 전공의나 펠로우에 의존하는 비중이 너무 컸던 것이다. 사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응급의료 시스템이 운영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응급의료 체계에서 핵심을 이루고 있던 그들이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힘들게 고생하는 이유는 반드시 금전적인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응급의료 전문의로서의 본인이 꿈꿔오던 것을 이루기 위해서다. 과거에는 그들이 참고 지냈던 이유는 그 이후의 안정적인 보장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 목표가 흔들리게 되는 여러 일들이 발생하면서 이탈이 시작된 것이다. 응급의료에서 큰 전력이고, 많은 일을 해줘야 할 인력이 부족해 지면서 결과적으로 응급의료 시스템 자체가 운영을 멈추게 될 수도 있는 현실에 이르게 됐다.

- 응급의료 전문의 이탈이 가속화한 시점과 이유는 뭔가.

= 응급의학과의 경우 지난 2015년에는 전공이 지원율이 100%를 넘었으나, 이후 8년째 지원율이 하락하고 있다. 의사 입장에서 전문의라는 타이틀은 평생 가지고 가는 큰 훈장 같은 것이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 응급의학과 전문의라는 타이틀이 자랑스러울 것인가를 물어보면 물음표가 남는다. 여기에는 정부의 단편적인 정책이 한 몫했다.

지난 2015년 전까지 응급의학과 전공의 지원률이 100%를 채우지 못하다가 2015년에 100%가 넘었던 이유는 당시 정부에서 20개였던 권역응급센터를 40개로 늘린 것이 배경이 됐다. 그러면서 전국적으로 응급의학과 전문의에 대한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하면서 일시적인 부족 현상도 있었다. 응급의학과 수요가 폭증하면서 젊은 의사들은 정부는 응급의학과를 적극 지원한다는 시그널로 인식하게 됐다. 2015년에 응급의학과 전공의로 들어왔던 이들이 지금은 전문의가 됐을텐데, 현재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지 물어보면 불만이 많다. 당시 응급의학과를 전공하면서 본인들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결과물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없었던 의료소송에 대한 부담도 있지만, 결정적인 한 방은 코로나19 유행 2년 동안 사실상 응급의학과를 방치한 것이다. 코로나19 최전선에서 응급의학과의 모습을 보면서 정부가 더 이상 응급의료를 발전시킬 시그널을 보내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됐고, 응급의료를 이탈하는 중요한 이유가 됐다.

- 정부는 응급의료를 포함한 필수·지역의료를 살리겠다며 지난 10월 ‘필수의료 혁신전략’을 발표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로서 혁신전략을 바라보는 시각은.

= 정부의 혁신전략은 인프라 개선에 중점이 맞춰져 있는 모양새다. 장기적인 계획이 없으니까 그런 것이다. 결국은 미션과 비전을 어떻게 가져갈 것이냐라는 부분인데, 정부에서는 최소 5~10년 이후에 대한 플랜 자체가 없다. 당장 응급실에서 뭐가 터졌다는 것에만 집중할 뿐, 5~10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선 아무도 생각조차 안 하고 있다. 가지고 있는 계획 자체가 없는 것이다.

현재 국내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2,700명 정도이고, 매년 100명씩 늘고 있으니까 오는 2043~2045년엔 4,500명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응급의학과는 1회 선배들이 은퇴도 하지 않은 젊은 그룹이다. 앞으로 최소한 10년에서 20년까지는 계속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늘어날 것이다. 지금 의료현장에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없다고 하는데, 살펴보면 이들이 취직할 자리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는 당장 배출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어떻게 감당할지 계획도, 준비도 안 된 상황에서 또 늘리자는 것이다. 늘리는 것은 상관없다. 늘려서 뭘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큰 문제다. 지금의 응급의료 지원 대책은 너무 단기적이고 미래에 대한 비전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비전은 수치 상 얼마를 낮추느냐가 관건이 아니다. 수요자인 응급환자들과 제공자인 응급의료인들이 얼마나 만족할 수 있는 합리적 시스템으로 가는 지가 가장 중요하다.

"코로나19 유행 기간 사실상 응급의학과 방치...응급의료 이탈 촉발한 주요인"

- 필수의료 혁신전략에 응급의료에 대한 미래 비전이 담겼어야 했다는 건가.

= 어려운 문제지만 그래야 했다. 대구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선 대구의 권역응급의료센터나 외상센터가 충분한 인프라를 갖추고 다른 환자를 안 보면 된다. 우리나라의 예방 가능한 외상 사망률은 약 12% 정도 된다. 예방 가능한 외상 사망률 0%는 이론적으로만 가능할뿐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몇 퍼센트 내리는데 어느 정도의 인프라와 이에 따른 지원이 필요한지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정부의 혁신전략을 보면 ‘이렇게 하면 응급실 뺑뺑이 없어진다’는 식이다. 거짓말이다. 응급의료와는 완전히 다른 부분인데 그렇게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 잘못됐다. 필수의료라는 큰 틀에다 다 때려넣으려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 현재 응급실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배후진료가 안 된다는 점이다. 앞서 지적한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있을까.

= 정부에서 그 부분을 일부러 눈 감고 있는 것인지, 혼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응급의료와 최종 진료는 다르다. 그런데 지금은 정부가 최종 진료를 컨트롤 할 수 없으니 최종 진료를 응급의료로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응급실에 근무하는 중 머리 수술 필요한 응급 환자가 오면, 나는 신경외과에 수술실이 되는지, 수술할 의사는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 이것은 응급 치료가 되고 말고와는 별개의 문제다. 그러다보니 그 책임을 응급의학과에 넘기면 안 되지만, 막상 정부는 신경외과를 컨트롤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신경외과를 늘릴 수 있는 방법도 없다보니 응급실에서 책임을 지라는 식이다.

- 최근 정부가 발표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확대 방안에 따르면 의료 기반시설(인프라)이 부족해 비대면진료가 필요한 국민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비대면진료의 예외적 허용 대상인 의료취약지 범위에 응급의료 취약지역 98개 시군구를 추가해 의료 접근성을 개선할 계획이다. 정부의 응급의료 취약지에 대한 접근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정부가 너무 조급하다. 완전히 헛다리 짚고 있다. 응급의료 취약지에 대한 해결은 정말 중요한 문제다. 응급의학과의사회에서도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뛰고 있는데 출구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의료기관이 많은 동네가 있고 부족한 동네가 있다. 의료기관이 부족한 곳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접근을 할 것이냐에 대해서 정말 많은 노력과 사업이 필요한데 그런 것들에 대한 아무런 고민없이 원격의료나 비대면진료로 해결을 하겠다는 것은 잘못됐다.

응급의료 취약지에 대한 정의도 나라마다 다르다. 공급자 또는 수요자의 개념인지, 그리고 무엇을 위한 개념인지가 상당히 중요하다. 취약지도 지역마다 지역의 인구 특성, 질병 특성, 지역의 인프라 등 여건이 다르다. 결국은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 전향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응급의료 취약지에 비대면진료 확대? 완전 헛다리 짚어"

- 전향적 대책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

= 인천 옹진군에 있는 연평도는 쾌속선으로 가는데만 5시간이 걸린다. 연평의료원 응급실은 하루에 환자가 5~10명 정도 온다. 그래도 응급의학과 의사는 필요하다. 그렇다면 얼마를 줘야 거기 가서 일을 할까. 그곳으로 취직하라고 하면 누가 할까. 이런 문제는 다른 병원에 적을 두면서 3주간 파견 근무를 하면서 이쪽 병원과 저쪽 병원에서 같이 일할 수 있는 순환 시스템을 마련하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같이 실제적이고 실효적인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 응급의학과의사회에서 몇 년 동안 꾸준하게 복지부에 제시했고, 그나마 4차 응급의료 계획에 취약지 파견 순환 근무 시범 사업이라는 말이 한 줄 올라가긴 했지만 현실화가 될 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 정부가 응급의료 체계를 정립하기 위해 당장 실현 가능한 방안이라면.

= 국내 응급실 현황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우선이다. 국내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2,700명인데 연간 응급환자 수는 1,000만명에 이른다. 코로나19 때문에 800만명대로 떨어지기는 했다. 응급환자 중 약 300만명이 구급차를 타고 오고, 구급차를 타고 오는 응급환자 중 거의 절반이 경증 환자다. 이같은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를 먼저 해야 응급실 과밀화를 해결할 것 아닌가. 걸어오는 사람이 얼마나 되고 구급차를 타고 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이 문제를 먼저 파악해야 해결책이 나온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문제조차도 아직 인식을 잘 못하고 있다.

- 응급실 과밀화를 해결하기 위해선 휴일 및 야간 또는 지역별 의료 공백 상황에 대한 대책이 우선 같다. 정부는 이를 위해 달빛어린이병원 등 다양한 제도를 시도하고 있지만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 응급의학과의사회에서 주장하는 것이 바로 그 부분이다. 응급의료 체계를 전체적으로 놓고 봤을 때 가장 핵심은 응급진료와 최종진료를 연결하는 것이다. 처음 이송한 병원에서 최종진료까지 이뤄지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결국 최초 이송병원에서 최종진료가 가능한 병원까지 환자를 데려다 줘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방 구급이 현장에서 병원까지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은 병원에서 병원 간 이동을 정부가 책임지고 있다.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은 환자가 119로 현장에서 병원까지 가는 비용을 대부분 받는다. 그것도 상당히 많이 받는다. 그런데 최초 병원에서 최종진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은 무료다. 특히, 선진국은 최초 처치 병원에서 두 번째 처치 병원에서, 또는 이송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들을 미리 정해놓고 이를 수행을 했으면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은 기본적으로 면제가 된다.

우리나라는 반대다. 현장에서 병원까지는 무료이고, 병원에서 병원은 내 돈을 내고 가야 한다. 무엇보다 책임이 민간에 있다보니 최종치료가 안 되는 병원에서 응급환자를 안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응급처치 후 119가 알아서 최종치료가 가능한 병원에 환자를 이송하면 최초 병원에서 환자를 받는데 부담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환자를 받았는데 입원도 안 되고, 치료도 안 되는 상황에서 다른 병원에 보내려면 하루종일 전화를 붙잡고 있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다보니 응급환자를 안 받게 되는 것이다.

- 정부가 응급환자의 최종 진료를 위한 병원 간 이송을 책임진다고 해도 최종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긴 어렵지 않을까.

= 그래서 최종치료가 가능한 빅 브라더가 있어야 한다. 국립중앙의료원이 그런 역할을 맡아야 한다. 적자를 감수하면서 외래환자를 보지 않고, 최종진료가 필요한 환자만 볼 수 있는 국가적 인프라를 늘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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