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은 건축이다 / 김희곤 지음 / 오브제 펴냄, 2014년

[라포르시안]  영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하루 동안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고, 일주일 동안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고, 한 달 동안 행복하려면 말을 사고, 한 해를 행복하게 지내려면 새 집을 짓고, 평생을 행복하게 지내려면 정직해야 한다.” 한 달 동안 행복하려면 말을 사라는 이야기는 차를 사라는 말로 바뀌기도 한다는데, 이 구절은 아마도 여행을 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난 달에는 여행사 상품을 이용해서 동남아를 다녀왔습니다. 한 달 간 행복했느냐구요? 그렇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여행으로 생긴 일상과 업무의 공백을 메우느라고 시간에 쫓겼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여행에서 얻은 생각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여행을 꿈꾸고 있습니다. 역시 여행을 떠나는 것보다는 여행을 꿈꾸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번에는 스페인을 다녀올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꽃보다 할배>를 시청하고 있기 때문은 아닙니다.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고 있어 정작 여행지에서 얻을 수 있는 감동은 소홀하게 취급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각설하고 언제부터인가 ‘산티아고 가는 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주말을 이용해서 아내와 함께 걷기에 좋은 길을 찾아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그 무렵 읽은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와 정진홍교수님의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는 산티아고 가는 길에 대한 꿈을 부풀리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산티아고의 길)’를 직접 걸으면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쓴 첫 작품 <순례자>는 코엘료를 세계적인 작가의 길로 안내했을 뿐만 아니라,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산티아고의 길을 걸어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을 내는 일 같습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40일이 넘는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 가을에 일단 스페인을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최근에 다산북스의 북카페 ‘나나흰(백석의 시, ‘나와 니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딴 이름이라고 하는군요.)’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첫 번째 오프라인 만남에서 <스페인은 건축이다>를 쓰신 김희곤 교수를 만날 수 있다는 소식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홍대 앞에 있는 카페 나나흰에 나갔습니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동안(童顔)의 김 교수님은 마흔 셋에 떠난 스페인 유학길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스페인에 대한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셨습니다. 그 바람에 정작 자신의 책에 관한 홍보(?)는 별로 하지 못하셨습니다. 수첩을 꺼내들고 강의내용을 열심히 적은 다른 참석자들과는 달리 핵심이 될 한 구절만 챙기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저는 그저 열심히 듣기만 했습니다.

우리나라 건축가들 가운데는 처음으로 스페인 건축을 공부하러 가셨다는 김희곤 교수는 스페인 국립 마드리드 건축대학교에서 복원 및 재생건축을 전공하셨다고 합니다. “스페인 건축은 나에게 인생의 집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영혼의 집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 것인지 알려주었다”라고 유학의 결과를 요약하시는데, 이날은 스페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생각들이 자신을 사로잡더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우리들의 시각에서 생각해보면, 유라시아 대륙의 반대편 끝에 붙어 있는 작은 나라에서 온 마흔 셋이라는 늙은 이방인이 서먹하기만 하였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스페인 사람들은 저자를 그들의 생활에 끼어주고 동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스페인 사람들은 분명 틀에 박히지 않고 열려 있는 마음을 가진 넉넉한 사람들이다 싶었습니다.

13년 전에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은 바미안 석불을 폭파시켜 인류의 공분(公憤)을 산 적이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인류가 남긴 찬란한 문화유적이 무상한 세월의 흐름 속에서 스러지기도 했지만 전쟁의 와중에서 파괴된 것이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지난달에 찾았던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에 새겨진 조각들이 곳곳에서 파괴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침략자들이 앙코르제국을 건설한 강력한 크메르종족의 정신적 지주를 없애기 위하여 저지른 짓이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종족의 정신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혹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자행되어온 이러한 파괴행위는 인류에 대한 범죄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쫓기는 신세가 되고만 탈레반 정권의 만행을 인용하는 것은 이베리아 반도에 살던 사람들이 보여준 아름다운 정신을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4월 1일 태안에서 진도 5.1의 지진이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만, 지진은 상부맨틀 위에 얹혀 있는 암석권의 판들이 서로 충돌하여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도 이슬람문화와 기독교 문화는 곳곳에서 충돌을 빚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문화로 대표되는 유럽문명과 서아시아에서 시작해서 아프리카로 퍼진 이슬람문명은 오랜 세월에 걸쳐 보스포러스 해협과 지브롤터 해협이라는 미묘한 지정학적 접점을 통하여 만나왔던 것입니다. 접점의 양편에 있는 세력들의 힘의 크기에 따라서 반응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한쪽의 힘이 강대하다면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마련이겠고, 양쪽의 힘이 팽팽하다면 강한 스파크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로마의 멸망 이후 이베리아 반도는 이슬람 세력이 8세기동안에 걸쳐 지배하게 되었고, 이들을 축출하기 위한 스페인 기독교도들의 끈질긴 투쟁이 이어져 왔던 것입니다.

종족간의 접촉은 물리적 투쟁의 기록으로만 남게 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라는 측면에서는 화학적 작용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기 마련입니다. 이베리아 반도에 남아 있는 건축양식의 특징을 저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8세기에 이르는 긴 시간동안 스페인을 지배한 이슬람은 스페인만의 고유한 무데하르양식을 선물하였다. 이슬람의 지문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오른쪽 사진>에 깊이 배인 매혹적인 건축공간은 빛과 바람과 물과 기하학적인 조각이 어우러진 이슬람 건축의 진수다. 왕국이 시대의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스페인 건축은 다양한 문화의 향기로 더 깊게 숙성되었다. 전기 로마네스크양식에서 이슬람 왕국 아래 기독교도들이 발전시킨 모바사베양식과 기독교 왕국 아래 이슬람 건축을 계승 발전시킨 무데하르양식은 스페인만의 독창적인 건축문화를 형성하였다.(7쪽)”

저자의 글을 길게 인용한 것은 저자의 유려한 글솜씨를 독자들과 같이 느껴보기 위해서입니다. 전문가의 글을 읽다보면 딱딱한 문체에 전문 용어가 곳곳에서 튀어나와 읽는 흐름이 깨지기 일쑤입니다만, <스페인은 건축이다>에서는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 단숨에 읽어낼 수 있습니다. 마드리드의 부엔 레티로공원을 설명하는 부분을 더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광장이 끝나면 마사토 흙길이 아래로 허리를 누이며 아련하게 숲속의 터널을 연출한다. 레티로의 매력은 기하학으로 물든 디자인의 선형을 지워버리는 자연의 생명력에 있다. 좌측에 유리궁전을 끼고 조금 더 남쪽으로 숲길을 헤쳐 내려가면 장미정원이 반갑게 인사한다. 자연과 인공이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는 장미정원은 지조와 품격으로 다져진 어머니의 미소가 번지는 곳이다.(41쪽)”

저자의 매력적인 글솜씨를 전하려다 보니 꼭 전해야 할 메시지를 건너뛰고 말았습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문화와 기독교 문화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에 더하여, 그러한 결과물들이 오늘날에도 볼 수 있도록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열려있는 마음과 넉넉한 마음씀씀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는 점을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이슬람과 가톨릭의 혼합되어 있는 코르도바 메스키타에 대한 설명에서 느낀 생각입니다. 785년 건축이 시작된 코르도바 메스키타는 로마인과 서고트인들이 세웠던 교회에 지은 이슬람 사원인데, 메카의 사원양식을 고집하지 않고 교회의 주춧돌과 기둥, 건축양식까지 고스란히 이용하여 전형적인 교회 평면구조의 회교사원인 새로운 칼리프양식을 탄생시켰다고 합니다. 1236년 코르도바가 다시 기독교도들의 지배에 들어간 뒤로, 1523년에 이르러 메스키타의 한가운데 기둥 4줄을 뜯어내고 그 자리에 대성당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한 지붕 아래 두 종교가 동거하는 건물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을 방문한 카롤로스 국왕은 대주교를 향하여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대가 만든 것은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그대가 파손한 것은 이곳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것이다.(143쪽)”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그라나다의 알람브라가 파괴되지 않고 온전하게 남게 되었는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건축의 등불>에서 존 러스킨이 강조한 것처럼, 건축은 기억의 요체이자 수호자로 진지하게 생각되어야 할 것이므로 ‘오늘날의 건축이 역사가 되도록 하는 것’과 ‘지나간 시대의 건축을 가장 귀중한 유산으로서 보존하는 것’이라는 의무를 인류는 잘 인식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건축가는 필요한 기능에 맞추어 공간을 설계하고 외피를 장식하는 기능인이 아니다. 건축가는 도시의 역사와 문화와 그 시대의 트렌드를 이해하고 과거, 현재, 미래로 성장하는 살아 있는 공간을 제안하는 발명가다.(49쪽)”라고 한 저자의 말씀과 러스킨이 말하고 있는 건축가의 의무는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인간이 집을 만들고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집이 사람을 키우고 살찌우는 것이다.(45쪽)”라고 저자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오늘날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우리를 키우고 살찌우는 집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의 선조들은 이것저것을 따져가며 집터를 잡았다고 하는데, 막상 저는 살고 있는 집을 고를 때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톨레도를 보지 않았다면 스페인을 본 것이 아니라는 말 때문이 아니더라도 스페인에 가면 꼭 톨레도에 가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톨레도는 도시 전체가 탁월한 조각품이며 길과 언덕과 강과 성벽과 집과 성당이 조화를 이룬 공간으로, 누구라도 톨레도의 거리를 걷는 순간 대지와 영혼의 일체감으로 도시의 일부가 되어버린다.(70쪽)”라고 하신 저자의 말씀을 제대로 느껴보아야 할 것 같아서입니다.

스페인의 미술관들을 소개하는 최경화님의 <스페인 미술관 산책>편에서는 시리즈의 다른 책들과는 달리 바르셀로나에 흩어져 있는 가우디의 건축물을 따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9세기 바르셀로나에서만 나타난 모데르니스모 사조(思潮)를 반영한 건축물들로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들이라고 합니다. 다양한 사진이 곁들여진 이들 건축물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스페인은 건축이다>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가진 건축물들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건축물이 도시 전체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하는 부분에 대하여도 지면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숲을 보되 나무를 보지 못하거나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건축물로 가득 찬 도시의 진짜 모습을 보기 위해선 그 도시에서 활화산처럼 분출하는 축제를 즐겨봐야 한다. 마드리드의 펄떡거리는 심장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는 축제밖에 없다. 마드리드의 모든 축제는 마요르 광장에서 시작된다.(32쪽)”라는 구절을 읽다보면, 저자의 생각이 건축물을 넘어 그 지역의 문화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숭례문의 복원과 관련한 불협화음이 이어지는 탓인지 “복원은 건물에 가해질 수 있는 가장 완전한 파괴를 의미한다. (…) 건축에서 언젠가 위대하고 아름다웠던 것을 복구하는 것은 마치 죽은 자를 깨우는 것처럼, 불가능하다.”(존 러스킨 지음, 건축의 일곱 등불, 249쪽)라는 건축물의 복원에 대한 존 러스킨의 부정적인 견해에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복원을 전공하신 김교수님은 “복원은 말 그대로 원래 건축물의 구조와 재로와 마감을 있는 그대로 현대적인 기술과 공법으로 그림자처럼 살려내는 것이다.(105쪽)”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러스킨과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 점에 관하여 설명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스페인에 가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아이디어는 김희곤 교수의 <스페인은 건축이다>와 최경화님의 <스페인 미술관 산책>에서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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