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연구소> 국민연금 개혁, 재정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하자

[라포르시안]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위원 두 명이 위원직을 사퇴했다. 재정중심론 입장을 가진 위원들이 보고서의 보장성강화론 파트에 소득대체율을 유지하는 방안까지 서술하라 요구할 뿐만 아니라, 보장성강화론을 ‘소수안’ 이라는 낙인을 찍으려 시도했으며, 처음부터 재정중심론 위주로 구성된 위원회가 끝내 이를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결국 보고서에는 명목 소득대체율 인상 방안이 포함되지 않았고, ‘반쪽짜리’ 보고서라는 평가를 받았다.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비판이 줄을 잇는다. 사람들의 노후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국민연금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재정적 수단을 찾아야 하는 것인데, 재정안정화를 최우선으로 두면서 사람들의 노후 소득을 희생시킨다는 것이다. 지금도 노인 빈곤과 자살이 심각한 한국에서.

우리도 이러한 비판에 동의한다. 재정중심이 아니라 사람중심 접근이 필요하다.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지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보다 여성, 불안정한 노동자 등 가장 노후 소득 보장이 필요한 사람들이 오히려 국민연금에서 배제돼 버리는 문제가 지금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질 것이다.

사람중심이라고 하더라도 재정중심론자들이 강조하는 미래세대의 고통은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문제이다. 하지만 재정중심론자들이 미래세대의 부담이 커진다고 언급할 때, 정말로 그 고통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미래세대 부담’은 국민연금 재정을 논할 때만 언급되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국가가 마땅히 보장해야 할 조치를 줄이며 긴축재정을 시도할 때마다 등장한다. 그렇게 미래세대의 부담이 걱정이라면 현세대의 세금 부담을 늘리자고 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런 경우는 찾기 힘들고 오히려 감세를 주장한다. 그들의 걱정이 진심이었다면, 저출생은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고, 기후위기에는 훨씬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을 것이다.

국민연금은 애초에 제도 설계 시부터 기금 고갈을 계획했다. 그런데도 불안과 공포를 조성하는 연금 고갈에 대한 여러 시뮬레이션은 정부가 아무런 재정적, 제도적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노후 소득의 적정한 보장이 불가피하게 미래세대의 국민연금 기여금이나 세금 부담을 다소 가중시킨다 할지라도 이를 적정수준으로 관리하고, 더 형평에 맞게 부담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또한 미래세대 역시 노인이 되었을 때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노후 소득 보장은 미래세대에게 고통을 주는 과정이 아니라 그들의 삶 자체를 보장하는 긍정적인 요인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인구가 줄어든 마당에 노인이 소비력을 갖춘다는 것은 생산인구에도 도움이 된다.

국민연금 재정중심론은 ‘민영화’라는 더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민영화라고 하면 주로 공공에서 담당하던 것을 민간에 위임하거나 처분하는 것을 떠올리지만, 정부의 자원 투입 중지, 감소, 혹은 필요한 만큼 증가시키지 않으면서 민간(시장)의 비중을 서서히 늘리는 은밀한 민영화가 요즘 추세다. 정부는 보건의료, 교통, 복지, 에너지, 교육 등 전방위적으로 사람들의 삶을 보장하는 서비스 제공에 있어서 국가의 역할을 약화하고 있다. 공적연금 역시 이러한 흐름을 비껴가지 않는다. 정부는 국민연금 기금 고갈에 대한 공포를 조성하는 한편 사적연금에 대한 세액공제 상한을 높였다. 공적연금은 약화하고 사적연금을 강화하려는 속내가 보인다.

일부 사람들에게 공적 서비스의 존폐는 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리고 주로 그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이뤄진 정책 결정들로 많은 사람이 시장에서 각자 살아남길 강요받는다. 자본은 시장에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며 최대한의 수익을 올림으로써 이윤을 극대화하는 가운데, 자원이 충분치 않은 개인은 빚을 내서 교육받고, 의료를 이용하고, 주거를 마련하고,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 국가를 매개로 한 사회적 연대가 하나씩 해체되면서 사람들의 삶이 위태로워진다. 그리고 그 위태로움은 현재세대와 미래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현재 필요한 개혁은 재정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에 두고, 모든 사람이 안정적인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정부는 교묘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역할을 방기하며, 오히려 제도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훼손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어려움이 있을 때 국가에 요구되는 것은 자신의 역할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책무성을 다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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