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경(경희대 특임교수·식약처 의료기기위원회 공동위원장)

[라포르시안] 평소 알고 지내던 방송기자가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국내 의료 현실과 의사들에 대한 이해도가 깊은 기자였는데 부친이 대학병원에서 투병 후 돌아가시는 과정에서 겪었던 경험을 울분을 토하며 공유한 내용이었다. 해당 글에는 생애 마지막 진료인 사망선고에서 의료진이 보인 성의 없는 태도, 명의(名醫)보다 심의(心醫)가 더 낫다는 말, 4천만 원 넘는 병원비를 내고도 한없이 ‘을’의 입장에서 예의조차 없는 어린 의사에게 허리 숙여야 했던 분노의 마음이 가득했다.

의학은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기에 과학적 근거를 추구하는 학문이며, 의료는 의학을 기반으로 하는 행위다. 다른 한편으로는 의학을 인문학이라고도 하는데, 아마도 사람을 대하는 학문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은 의학 수련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공부에 바쁘다 보니 사람 대하는 방법은 거의 배우지 못한 채 의사로 양성된다.

우리나라 의사들의 치료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고, 한국 의료는 저비용·고효율 시스템의 모범사례로 평가받는다. 문제는 의사들이 질병을 다루는 기술은 우수한데 환자·보호자를 대하는 방법은 서툴고 어려워한다는 점이다. 더욱이 의사 스스로도 인술보다는 치료전문가로 머무는 것이 편하다. 물론 그동안 의대 교육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특히 의대생에게 인문학 교육을 강화하고자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한정된 시간에 방대한 의학지식을 우선적으로 전수해야 하는 한계를 극복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의대 진학을 위해 초등학생 때부터 성적 경쟁을 하며 화초처럼 길러진 학생들의 소양과도 부딪히게 된다. 그래서 종종 미국 같은 4+4 제도가 부럽고, 우리도 의전원 출신 의사가 의대 출신보다 환자를 부드럽게 잘 대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4차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이 발달한 미래에는 의학지식이나 치료 기술을 인공지능과 로봇이 대체할 것이다.

그래서 미래 의사들의 경쟁력은 환자에 대한 공감력에 있고, 가슴이 따뜻한 의사가 살아남을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지금도 의학교육 현장에서는 고민이 깊다. 미래 의사는 지금과는 분명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국민 눈높이에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치료는 잘하고 고생들 하네”라고 지켜봐 주면 반드시 의사들도 변화할 것이라 믿는다.

참고로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의 특징 중 하나가 비인간화 혹은 비인격화라고 한다. 가장 인간적이어야 할 의사가 비인간적으로 보일 때 혹시 번아웃 된 것은 아닌가 들여다봐야 한다. 의사가 번아웃 되면 환자가 인격체가 아닌 질병으로 보이면서 상대 감정에 무감각한 반응을 나타내게 된다. 나아가 문제의 책임이 자신보다는 상대에게 있다고 인식하면서 자신의 부정적 태도를 더욱 강화하게 되고, 동료와 병원에 대해서도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태도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 가까운 코치를 찾아 코칭을 받도록 적극 권하고 싶다. 이미 외국의 유수 병원들은 자체 코칭 프로그램을 운용해 의료진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이니 말이다. 필자는 개인 사정으로 인해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헬스인·싸] 기고를 마무리한다. 작별 인사로 라포르시안 독자들에 대한 감사함과 함께 그동안 의료진의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에 상처 입으신 모든 환자·보호자에게 일선 의료현장에서 일하는 후배 의사들을 대신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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