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보험위원회 부위원장)

[라포르시안] 코로나19 팬데믹에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예상치 못한 변수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공급망 붕괴는 물론 합성수지·반도체·금속 등 원자재 비용과 인건비 급증,  환율 및 금리 인상 등으로 치료재료(의료기기) 공급 문제가 발생했다. 필자는 앞서 지난해 8월 헬스인·싸에 ‘치료재료 상한액 한시적 인상이 절실한 이유’를 제목으로 한 기고에서 이러한 위기 극복을 위해 치료재료 상한액 한시적 인상 필요성을 역설하고, 의료기기산업에 대한 정부 도움을 간곡히 요청했다.

최근 들어 코로나 위기 상황이 진정국면에 접어들어 작년과 달리 사회 경제적 분위기가 많이 호전됐다. 이 때문에 지난해 의료기기업계가 외치던 치료재료 공급 문제와 이로 인한 상한액 한시적 인상 요구도 사그라졌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치료재료 공급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 과제로서 많은 의료기기 기업들이 제품 생산과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으며 상한액 인상 필요성 또한 현재 진행형이다.

의료기기업계가 처한 현 상황을 짚어보자. 아직 코로나 여운이 남아 있어 전염병 발생 전 수준의 완전한 회복은 도달하지 못했고, 불안정한 국제 정세와 경제 및 에너지 위기 상황, 글로벌 공급망, 인플레이션 등 위험요인이 상존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치료재료 생산·공급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고 공급가격 상승세 또한 이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의료기기산업은 작년과 같은 고금리·고물가로 인한 경기 침체 및 코로나 여파로 인한 어려운 환경에 직면하고 있다.

이는 주요 글로벌 및 국내 기업들의 경영실적 발표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최근 헬스케어 분야 경영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코프만홀’(Kaufman Hall)이 발표한 미국병원현황보고서(National Hospital Flash Report, November 2022)에 따르면 병원들은 매출 대비 높은 비용 증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노동 인력 부족으로 인한 인건비 상승과 함께 인플레이션에 따른 치료재료 가격 상승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됐다. 이처럼 해외 치료재료 가격 인상 추세와 달리 우리나라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보험제도 하에서 치료재료 가격을 통제하고 가격 인상을 억제하고 있는 만큼 의료기기업계가 겪는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제약보다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 의료기기산업에 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치료재료는 주로 의료기관에서 사용되고 건강보험 급여 항목으로 정부의 가격 통제하에 있다. 이에 반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주 접하듯이 제약산업은 약국·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일반약의 두 자리 숫자가 넘는 급격한 가격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제약사들의 의약품 가격 인상 이유를 살펴보면 고환율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원부자재·원료의약품 가격 급등에 따른 ▲제조원가 ▲인건비 ▲물류비 등 제반 비용 상승을 꼽고 있다.

물론 일각에서는 가격 통제를 받는 전문의약품 가격 인상이 어렵기 때문에 일반약 가격 인상으로 나타나는 풍선효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현실적인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제약과 달리 의료기기산업은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는 점에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3월 8일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주관하는 주한미국기업 대표단과의 오찬 간담회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했다. 기조연설에도 언급됐듯이 우리나라 경제는 2022년 세계적인 고물가·고금리·경기둔화 흐름 속에서 매우 어려운 한 해를 보냈고 물가상승률은 5.1%를 기록했다. 하지만 높은 물가상승률에도 불구하고 치료재료 가격은 현실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지난 1월 31일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발표하며 중증·응급, 분만, 소아진료 분야에 다양한 지원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상급종합병원 등이 중증응급·소아진료 등 필수의료 분야 진료에 집중하도록 하고, 전문의 배치기준 및 중환자실 운영기준을 신설하는 등 병원이 필요한 인력과 병상을 확충하도록 유도하는 정부의 계획수립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이 실현하기 위해서는 의료현장에 사용되는 치료재료의 원활한 수급 및 공급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치료재료는 제품 특성상 주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 외과술을 비롯한 다양한 치료 서비스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항목이다. 즉 치료재료의 원활한 공급은 필수의료의 핵심인 셈이다. 업계가 처한 치료재료 공급 위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따라서 정부는 의료기기업계가 지속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치료재료 상한액 한시적 인상을 올해 상반기 내라도 반영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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