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형(제이엘메디랩스 대표이사)

[라포르시안] 필자가 대표이사로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 기업은 미국을 비롯해 글로벌 시장에서 관심이 높은 액체 생검(생체검사) 분야 체외진단의료기기를 개발 중이다. 액체 생검은 조직 생검 없이 혈액·소변·분변·타액 등 다양한 접근법이 이뤄지고 있으며, 이 가운데 혈액을 통해 암을 진단하려고 시도가 가장 두드러진다. 궁극적인 지향점은 다중 검출을 통해 한 번에 많은 암 혹은 다양한 질환을 동시 진단하는 기술에 있다. 특히 극소량으로 이러한 것을 모두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다중암 조기 발견(Multi-Cancer Early Detection)은 액체 생검 시장에서 최대 화두 중 하나다.

다중암 조기 발견은 환자의 혈액 내 특정 조직에서 유리된 DNA를 얻어 암을 진단하거나 다중오믹스(multiomics) 기술을 이용하고 세포에서 떨어져 나온 DNA(cell free DNA)와 단백질체·전사체·유전자 메틸레이션 등을 복합적으로 분석하는 쪽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의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 즉 단백질 바이오 마커보다는 핵산 쪽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 이유는 오랫동안 단백질 바이오 마커 연구가 이뤄져 왔지만 확실한 한계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백질 바이오 마커는 대부분의 암종에 높은 정확도와 조기 진단이 가능하고 저렴하다는 장점 그리고 대다수 질병으로 확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단백질 증폭은 핵산과 다르게 이러한 점이 불가능해 극소량을 검출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더욱이 현재 기술로는 다양한 종류의 단백질을 동시에 검출하기 어렵다.

이 때문인지 대부분의 국내외 기업들은 Genomic DNA 메틸화 혹은 Genomic DNA 변이 및 메틸화에 소수 단백질을 더한 바이오 마커 쪽으로 상업화를 위해 도전하고 있다. 그러나 높은 정확도의 조기 진단 가능 여부에 있어 검증이 더 필요하다. 이는 사멸된 암세포의 핵산이 혈관으로 유입되거나 혈관으로 침투한 암세포가 사명돼야 cfDNA(Cell Free DNA)가 검출되는데 대부분 암종에서 초기에 검출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또한 핵산 추출·증폭·검출 과정이 필요하고 고비용이 든다. 더불어 대다수 질병은 유전자 변이를 동반하지 않아 다른 질병으로 확장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시장은 오랫동안 암이라는 질환에 초점을 맞춰 소량의 검출물로 조기에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는 제품을 원해 왔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나 원천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나름의 방향과 전략을 수립해 스타트업을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남들이 다 뛰어들고 있는 핵산 쪽이 아닌 단백질 바이오 마커의 한계점을 극복하며 새로운 조기 진단 표준 제시라는 미션을 세우고 도전한다고 생각해 보자. 쉽게 생각하면 극소량의 검체를 다중 바이오 마커로 검출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면 된다.

그러나 필자의 경우 국내 액체 생검 시장의 인허가와 신의료기술평가 상황을 파악하면서 맹점을 발견했다. 몇몇 제품들이 인허가를 받았지만 시장의 기대치를 상회할 만큼의 정확도, 즉 수요를 담을 수 있을 만한 제품은 나오지 못한 상황이다. 개인적인 분석으로는 다중 바이오 마커에 있어 숫자가 증가할수록 일반적으로 정확도가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회사가 3개 이상을 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왜일까. 아마도 인허가 시 10개가 넘는 바이오 마커로는 허가를 받기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뿐만 아니라 임상적 근거 또한 더 많은 요구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목적의 논문은 많을 수 있지만 실제 사용된 사례는 적기 때문에 그 임상적 근거를 하나하나 제시해야 하는 쪽은 기업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 혁신 기술을 보유한 기업에서도 바이오 마커 수를 줄이고 인허가 통과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을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비이오 마커 수를 줄인다는 것은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다. 즉 시장에서 팔 수 있는 제품 상태로 인허가를 통과하지 못한 제품이 양산되고 그 앞에는 신의료기술평가라는 벽을 한 번 더 만나야 한다. 규제 완화를 목적으로 패스트트랙들이 만들어 졌지만 각각의 패스트트랙을 위해서는 적응증에 대해 고찰해야 한다. 만약 인허가 받은 내용에서 이러한 부분을 놓치고 통과한 경우 진퇴양난에 빠질 수 있다. 왜냐하면 신의료기술이나 패스트트랙을 시도할 수는 있어도 통과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인허가를 담당하는 것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공무원이고, 이들은 기존 기술에 기반해 평가할 것이다. 식약처 입장에서는 혁신 기술에 대한 판단이나 리뷰의 제한점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어떠한 기술이 기존에 나와 있지 않은 최초의 신기술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또 신의료기술은 임상 전문가로 구성된 소위원회를 중심으로 평가되는데, 인허가를 위해 혁신과 타협한 제품이 소위원회에서 혁신적인 제품으로 보여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필자는 인허가 전문가가 아니다. 다만 시장에서 요구하고 환자가 필요로 하는 제품을 빠르고 신속하게 선보이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현행 규제에서 이러한 목적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점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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