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정책 기조로 ‘규제혁신·수출지원’ 강공 드라이브
의료기기업계, 복잡한 허가 절차·심사 적체 등 고충 토로 여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3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서 열린 ‘제1차 수출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출처: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3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서 열린 ‘제1차 수출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출처: 대통령실

[라포르시안] 윤석열 정부가 주력·첨단 산업 수출 경쟁력 강화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윤 대통령은 앞서 지난해 11월 23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서 열린 ‘제1차 수출전략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지금과 같은 글로벌 복합위기 상황에서는 수출 증진으로 위기를 정면 돌파해야 한다. 특히 모든 정부 부처가 산업부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대통령 의중을 반영한 ▲주력·전략시장별 수출 확대 전략 추진 ▲전 부처의 수출지원 역량 강화 및 수출 저변 확대 ▲수출산업 경쟁력 강화 및 미래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정책 방향으로 수립했다. 국가적 수출역량 강화에 사활을 건 국정 운영 기조는 의료기기산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 

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장의 올해 신년사 한 대목을 살펴보자. 

조규홍 복지부장관은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글로벌 중심국가 도약을 위해 국민 안전을 최우선 하면서도 불필요한 규제를 혁신해 나가겠다”고 언급했다. 오유경 식약처장 또한 “디지털·체외진단의료기기처럼 수출 비교우위 품목에 대해 전략적 수출지원을 강화해 글로벌 규제역량 선진국으로 발돋음 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들 신년사만 보더라도 의료기기와 밀접하게 연관돼있는 진흥기관·규제기관 할 것 없이 의료기기 ‘규제혁신’과 ‘수출지원’에 방점을 찍은 충실한 ‘산업부처’로서의 모습이 읽혀진다.

지난해 5월 현 정부 출범 이후 각 부처는 규제 개혁 성과와 치적을 홍보하는 보도자료 배포에 공을 들였다. 대표적인 규제기관인 식약처 역시 ‘식의약 규제혁신 100대 과제’를 추진해 기존 분류체계에 없는 디지털 헬스기기는 맞춤형 신속 분류제도를 통해 허가 기간을 대폭 단축했고, 혁신제품 신속심사 프로그램(Global Innovative products on Fast Track·GIFT)을 도입해 심사 기간을 기존 120일에서 90일로 최소 25% 줄이는 등 성과를 알렸다.

이 같은 규제개선은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디지털 치료기기 등 디지털 헬스케어 업계 목소리를 반영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유의미하고 환영할만한 일이다. 더욱이 식약처는 AI·빅데이터·사물인터넷(IoT) 등 융·복합 기술을 적용한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 상용화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신속한 시장진입을 견인하고자 지난해 2월 28일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의료기기심사부 내 ‘디지털헬스규제지원과’를 신설해 허가심사 지원에 나섰다.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에 대한 제도개선은 ‘규제혁신’으로 평가받을 만큼 개발업체의 체감도가 높다. 하지만 ‘AI·첨단·융복합·디지털’ 수식어가 붙지 않은 기존 의료기기업체로 눈을 돌려보면 여전히 비효율적인 규제로 인한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의료기기 인증·허가 과정을 따져 보자. 2등급 특정 제품 인증의 경우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 등 민간 심사기관에 기술문서 검토를 신청해 심사를 받는다. 이후 승인받은 심사결과통지서를 첨부해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에 인증 신청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인증 신청 단계에서 승인받은 심사결과통지서를 다시 심사해 변경 또는 보완을 지시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3·4등급 의료기기 허가는 더욱 복잡다단하다. 식약처 첨단제품허가담당관실에 허가심사(기술문서심사)를 신청하면 해당 건이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의료기기심사부로 이관되고, 이후 심사부에서 심사 후 승인받은 기술문서를 첨부해 첨단제품허가담당관실에 허가신청을 하게 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첨단제품허가담당관실이 다시 심사해 심사부 심사 결과 내용의 변경 또는 보완을 지시하면 또다시 심사부로 변경 제출을 해야 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점이다. 복잡한 인증·허가 절차와 중복 심사는 의료기기업체들의 규제 비용을 높이는 것은 물론 국가적 행정력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

또 다른 사례로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의료기기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 적합) 인증 역시 업계에 부담이 되고 있다. 현행 GMP 정기 심사 인증 신청은 유효기간 만료일 90일 이전으로 규정돼있다. 따라서 만료 전 인증을 완료해야 하지만 품질관리 심사기관과 지방청의 인력 부족에 따른 만성적인 심사 적체 및 인증 지연으로 녹록치 않은 실정이다. 이 때문에 업계는 그간 의료기기 GMP 인증에 대한 규제개선을 꾸준히 요구해왔으나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불만이 여전하다.

의료기기 ‘재평가·갱신제도’ 역시 규제개선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재평가는 인증을 받아 판매 가능한 의료기기 중 시판 후 정보 등에 의해 문제가 발생했거나 발생 우려가 있는 경우 안전성·유효성을 다시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오는 2025년부터 시행되는 갱신제는 의료기기 허가·인증·신고 유효기간을 5년으로 정하고, 유효기간 만료 전 허가·인증·신고를 갱신받도록 한 제도다. 허가 후 영구적으로 효력을 유지하던 기존과 달리 5년 동안 해당 제품의 안전성·유효성을 주기적으로 평가해 허가 유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재평가와 갱신제 모두 ‘안전성’ 검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오랜 시간 시장에서 사용돼왔던 제품이라도 기존 이력과 무관하게 특정 시점에서 최신 기준규격에 따라 시험을 진행하고 입증자료를 다시 제출해 심사를 받도록 한 것이다.

물론 업계는 전 세계적으로 의료기기 안전성이 강화되고 있는 만큼 정부의 재평가·갱신제 시행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 다만 수십 년간 별다른 문제 없이 환자에게 사용돼 이미 안전성을 확보한 제품에 대해 현행 규정에 맞춰 각종 시험검사 성적서를 요구하는 것은 불합리한 규제라는 지적이다.

이미 시장에서 안전성을 입증한 제품에 대해 신규 허가 수준의 규제를 적용한다고 해서 더 큰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의문과 함께 의료기기업체가 부담하는 시험검사 등 막대한 규제 비용이 결국 제품가격에 반영되고 이는 환자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그 어느 때보다 의료기기산업 규제혁신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 체감하는 규제는 행정적 총량이 늘어나고 절차 또한 복잡해지고 있을 뿐이다. 더욱이 각종 인증·심사는 ‘중복·적체·지연’되고 이로 인한 규제 비용도 증가하고 있다.

정부는 의료기기 수출 확대를 위한 정책 시행에 앞서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규제를 정비함으로써 의료기기업체가 규제요건을 준수하는데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연구·개발에 투자해 비교우위에 있는 제품으로 해외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 조성부터 선행해야 한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