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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Book소리] 불안을 권하는 사회…의학에서 종교로, 다시 의학으로불안의 시대 / 앨런 호위츠 지음 / 이은 옮김 / 중앙북스 펴냄, 2013년

요즈음 수산업계는 난데없는 불황으로 한숨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쓰나미가 덮치면서 파괴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한 방사능오염수가 태평양으로 유출되고 있다는 증거가 속속 발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일본총리는 ‘방사능오염수는 철저하게 차단되고 있다’는 망언을 반복하고 있어 일본 국민들조차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산물에 대한 불안이 커지기 시작해서 이제는 걷잡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른 것이라 하겠습니다. 최근에는 오염수를 바다로 내보내는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오폐수를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은 사실상 없는 모양입니다. 일본정부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파괴된 상황에서 지금까지 사고와 관련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고조되고 있는 불안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하여 우리가 일상 먹고 있는 생선이 방사능에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례를 인용하였습니다만, 불안은 어제 오늘 갑자기 생긴 정서가 아니라 역사 이전부터 존재해왔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다만 문명이 발전하면서 보다 다양한 요소들이 우리의 삶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불안의 정체와 역사 그리고 불안에 대한 대응방법이 변해온 역사를 살펴보는 것으로 불안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학자이며 정신건강 분야를 연구하는 러트거스대학의 앨런 호위츠교수의 <불안의 시대>를 읽으면 불안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존스홉킨스 의대의 ‘질병의 역사’ 시리즈 편집위원인 찰스 E. 로젠버그 교수는 <불안의 시대>의 서문에서 불안과 불안장애를 질병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자는 “불안과 불안장애는 편도체, 전두엽, 해마 등 두려움을 인지하는 뇌 영역과 감마 아미노산(GABA), 에피네프린, 도파민, 세로토닌 등의 신경화학물질과 관련이 있다.(16쪽)”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보면, 불안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측면에서는 과거에 비하여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고 하겠지만, 서로 다른 시간, 문화에서는 각기 다른 다양한 요소들에 의하여 불안이 정의되어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앞으로 풀어야할 문제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 불안연구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즉 불안 연구는 생물학적 특성을 밝히고 이를 문화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옛날 아주 옛날에는 뱀도 전갈도 하이에나도 사자도 들개도 늑대도 걱정도 두려움도 없었고 인간은 겁낼 것이 없었네.(36쪽)”라고 기원전 4,000년에 새겨진 수메르 석판의 글귀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글귀를 새긴 시점에는 두려워할 무엇이 있었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생물학적, 심리학적, 사회학적 시각, 또는 불안을 도덕적 결함이나 영적 불완전함의 결과로 인식하던 시각은 시대에 따라 불안을 정의하는 기준에 포함되었다가 배제되기를 반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대의 불안과 불안장애에 대한 개념의 뿌리는 기원전 5세기에서 4세기경 고대 그리스 문명의 출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 시대의 의학적, 철학적 기록은 신화와 종교에서 벗어나 인간의 행동에 대한 생각을 새로이 정립했고, 건강과 질병에 대한 연구에 경험적이고 관찰적인 기반을 제공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의학에서는 착란증, 광증 그리고 울병 등 기본적인 종류의 정신질환만 독립적 질병으로 분류하고 있을 뿐 불안은 울병의 필수적 요소로 간주되었습니다. 즉 불안 증세는 이유 없는 두려움, 침울함이나 자살 충동, 또는 지나친 의심과 같은 편집증적인 증세와 더불어 울병의 특징을 형성하는 것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스 의학에서는 불안 치료를 위하여 특별한 처방을 내리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방침이었지만, 술과 아편을 사용했다거나 신화적 대모신을 섬기는 코리반트라는 집단이 춤과 음악을 통한 의식을 행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4세기 초,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종교적 세계관은 불안을 비롯한 정신질환에 대한 경험적 개념을 바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 시대에 의학적으로 접근하던 불안을 종교적으로 대응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종교는 불안을 다스리는 수단을 제공하는 동시에 죄의식, 영생, 구원에 대한 걱정 등 불안의 근원도 된다는 점이 특이하다고 하겠습니다. 중세 프란체스코교회 수도사가 남긴 기록을 보면, “1239년 일식이 일어났다. 한낮의 빛은 끔찍하고 공포스럽게 어두워졌고 곧 별들이 보이자 밤이 온 것만 같았다. 모든 남녀가 겁에 질려 미친 듯이 돌아다니고 두려움과 슬픔에 벌벌 떨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해성사를 하고 죄를 고백했고, 이를 통해 곧 마음의 평안을 되찾았다.(33쪽)”라고 적어, 종교적 믿음으로 불안을 제거할 수 있었던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실제로 타이거교수와 맥과이어교수는 최근에 개발한 뇌기능검사장비를 활용하여 ‘종교적 경험과 행동은 많은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그리고 신도와 종교 당국 간의 우호적 분위기는 뇌를 편안하게 해준다.(라이오넬 타이거, 마이클 맥과이어 지음, <신의 뇌>, 197쪽)”는 점을 확인하고, 종교를 통한 교류, 의식 그리고 믿음이라는 종교의 세 가지 특징적 요소가 신앙인들의 스트레스를 체계적으로 그리고 확실하게 줄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기도하는 동안에는 감정, 행동을 통제하는 전두엽과 사고, 연상, 인식기능을 하는 하두정엽이 활성화되는데, 기도는 신을 만나는 행위이기 이전에 자신의 뇌와 마음을 달래고 적극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5세기부터 16세기에 이르는 약 1,000년 사이에 질병에 대한 개념이 경험적 관점에서 영적인 관점으로 대체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의학에 대한 인식은 종교나 마법보다도 못한 수준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르네상스시대에 들어서면서 과학적 연구기법이 자리를 잡으면서 정신질환 역시 종교적 관점에서 의학적 관점으로 조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불안을 개별정신질환으로 처음 정의한 것은 영국의 윌리엄 배티입니다. 그는 1758년 출간한 <광증에 대한 논고>에서 “불안은 열병, 두통, 염증, 나병과 마찬가지로 광증과 반드시 연관되는 것은 아니다. (…) 불안은 우리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만일 괴롭지만 유용한 이 경고가 없다면 몇몇 종은 빠르게 멸종되고 말 것이다.(95쪽)”라고 적어 불안을 광증과 구별되는 기능을 설명하였습니다. 불안을 마음의 병에서 몸의 병으로 인식하게 되는 변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는 정신질환 전반에 대한 인식의 변화였기 때문에 불안은 여전히 정신질환의 범위에 포괄적으로 섞여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19세기 말에 들어서 불안과 불안장애는 세분화되는 경향을 나타냈는데, 신경쇠약과 히스테리라는 포괄적 분류에서 ‘히스테리는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의식, 감각, 행동에 생기는 이상으로, 다른 병적인 증상으로 전이되어 나타나며, 정신쇠약은 불안, 공포증, 강박증, 탈력, 우울 등 증상의 집합으로 정의한 것’은 1903년 피에르 자네에 의해서입니다.

20세기 초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등장으로 불안과 불안장애에 대한 인식이 커다란 변환을 맞게 됩니다. 프로이트는 과거에 서로 다른 질환으로 정의되던 신체적, 정신적 증상들을 불안장애라는 커다란 틀로 통합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초기 이론은 상당한 변화를 보여 불안에 대한 인식을 신체적 관점에서 심리적 관점으로 이동하기에 이릅니다. 전쟁은 불안이 본능적이거나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현재의 환경적 요인의 산물이라는 인식이 정신의학자들 사이에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프로이트에 의하여 창시된 정신분석학은 심리학으로 대체되는데,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은 전쟁과 더불어 성장하여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황금기를 맞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은 병사들의 두려움을 다스리는 방법을 개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심각한 심리적 이상을 겪는 참전군인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통하여 정신의학이나 심리학 전공자들이 확대된 것은 정신질환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20세기 중반까지 주류를 이루던 정신분석 치료법인 후반기에는 인지적 접근법에 자리를 내주게 되었습니다. 두 가지 방식의 차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정신역학적 접근과는 달리 인지행동치료법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에 집중했다. 이 문제들은 무의식의 안쪽에 숨어 있는 것들이 아니라, 의식적인 생각을 통해 접근 가능한 것들이었다.(187쪽)” 20세기를 통하여 불안이 서구문화의 핵심 키워드로 비중이 커지게 된 데는 대중적인 인기몰이에 성공한 프로이트 덕분이기도 하며, 하이데거나 사르트르 등과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과 진보적인 이론가들의 중심화두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끔찍함이나 핵무기의 위협이 급증하게 된 것을 비롯하여 인구의 가파른 증가에 따라 복잡해진 사회구조 등이 불안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20세기 중반에 등장한 약물치료가 성공을 거두면서 제약산업계가 초미의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도 한 몫을 하게 된 것입니다.

불안에 대한 인식의 확대에 제약산업이 기여했다는 생각은 “특별한 병리증상이 보이지 않는 이런 환자들에게는 발리움이 유용합니다.(200쪽)"라는 발리움의 광고에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또한 정신의학과 심리학이 큰 몫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1920년대 후반 언론매체들이 정신분석을 실험적인 형태의 심리치료로 간주하면서 ‘확산되는 불안, 정체성 상실, 창조성 상실, 불행’을 토론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는데서 얻은 것인데, 여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의학 역시 연구대상이 축소되는 분야는 존재의 의미도 같이 축소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이슈를 만들어내야 하는 강박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불안을 권하는 사회를 만들어온 것이 아닐까 하는 의혹을 던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미 정신분석 혹은 심리분석을 통하여 얻은 결과를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단계에 이르게 된 것이 아닐까요?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2008년 제2차 광우병파동이 확산되는데 일부 전문가들이 대중의 불안심리를 확대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실 2008년 당시 광우병이나 인간광우병과 관련된 모든 지표들은 유행의 절정을 지난 지 오래되어 소멸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묘한 수사적 표현으로 사실을 감추고 위험을 부풀리는 작업을 벌였던 것이고, 과학적 혹은 사회학적 데이터가 이미 통제단계에 들어서 대중적 위험 가능성은 의미를 둘 수 없는 단계라는 점을 설명하는 전문가들을 사기꾼으로 몰아치는 비열함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번 불붙으면 쉽게 진화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제대로 꼬드겨냈던 것입니다. 당시 상황을 보면 표면상으로는 미국산 쇠고기를 다시 수입하게 된 것을 순수하게 걱정한 아이들이 시작한 것이라고 정리하고 있지만, 내막은 대선패배를 인정하지 못한 세력들이 쟁점화에 성공한 사례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어쩌면 현대 불안의 뿌리가 생물학적 또는 심리학적 보편성이 아니라 각 사회의 특수한 조건에 있다고 본 에릭 프롬의 시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불안’은 1952년 미국 정신의학회가 처음 발표한 이래 개정을 거듭하고 있는 정신질환 진단통계편람(DSM)의 분류체계의 핵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불안장애는 전염병학자들에게도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는데, ‘사회공포증의 첫 증상은 다른 증상의 추가적인 발생을 예고한다.(222쪽)’라는 사실을 전염병학자 로널드 케슬러가 밝혀냈기 때문입니다. 불안장애가 발생하면 그 증상이 낮은 학습과 업무 성과, 청소년 임신, 이혼 등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다른 부정적인 영향으로 이어진다는 추측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손자병법은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고 했습니다. 전쟁이 아니더라도 알면 휘둘림을 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의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는 불안도 그 정체를 알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대상에 불과할 것입니다. ‘불안’을 걱정하지 않기 위하여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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