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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뷰| 의료기기업계가 치료재 상한액 10% 인상 호소하는 이유제조·수입원가 급증에도 가격 반영 어려워 위기 봉착
"생산·공급 중단시 의료공백 발생할 수도"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는 지난 12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의료기기 공급위기 대응을 위한 긴급성명서’를 발표했다.

[라포르시안] “백 자(尺)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몹시 위태롭게 올라 서 있는 형국이다.”

유철욱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장은 의료기기업계가 처해있는 현실을 ‘백척간두’(百尺竿頭)에 비유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 주요 도시 봉쇄 등 악재로 인해 ▲원부자재 수급 불안 ▲운송비·물류비 증가 ▲제조원가 급등과 같은 불가항력의 총체적 위기로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가 지난 12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의료기기 공급위기 대응을 위한 긴급성명서’를 발표한 것은 대내외적인 경제 상황 악화로 의료기기업체들이 더 이상 물러서거나 버틸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한국치과의료기기산업협회, 한국의료기기유통협회 등 의료기기 단체가 중지를 모아 발표한 긴급성명서에는 의료기기 공급위기 대응을 위해 ▲치료재료 보험상한액 10% 이상 한시적 일괄 인상 ▲치료재료 재평가 및 예비급여 치료재료 시행 보류 ▲관세·부가가치세 일시 면제 또는 인하 조치 등 크게 3가지 정책 제안이 제시됐다.

라포르시안은 의료기기업계가 치료재료 보험상한액 10% 이상 한시적 일괄 인상을 요구하게 된 배경을 심층 분석했다.

대내외적 경제 악화로 원자재·물류비 등 제조원가 급등

의료기기업계가 정부의 긴급지원을 요청하게 된 배경은 국내외적 환경 변화로 인한 의료기기 생산·공급에 필요한 제반비용의 급격한 상승에 있다. 먼저 국제유가 상승은 제조 산업의 에너지 비용에 영향을 미쳐 제조원가를 높이는데 영향을 미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국제유가(두바이유)는 2021년 3월 11일 배럴당 66달러에서 2022년 3월 9일 127달러로 1년간 약 85% 인상돼 제조업체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대표적인 제조업에 속하는 의료기기는 지속적인 국제유가 상승에 따라 운송비·물류비가 급증하면서 제조원가가 크게 증가했다. 지속적인 원부자재 가격 상승 또한 의료기기업체들의 제조원가 증가에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국제 원자재 가격 변동은 원자재를 중간재로 투입하는 모든 상품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코로나19와 국가 간 분쟁으로 국제 원부자재 수입가격은 연일 폭등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국내 전자의료기기와 치료재료 공급업체 모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전자기기를 조작·제어할 수 있도록 프로세스·메모리·입출력 모듈 등을 모은 반도체 핵심 부품인 의료기기용 ‘MCU(Micro Controller Unit) 칩’은 2020년 8달러 수준에서 2021년 11월 기준 50달러까지 6배 이상 가격이 급증했다. 여기에 스테인리스·강판·고무패킹 등 원부자재 또한 품목별 차이는 있지만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60%까지 가격이 증가했다.

2019년 미국·중국 간 무역 분쟁이 본격화되고 2020년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더욱 가속된 물류비용 증가세는 의료기기업체들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물류비용은 기업이 원부자재 조달부터 생산·가공·공급과정에서 발생하는 물류활동을 위해 지불하는 총비용으로 물류비 상승은 제조(수입)원가 상승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한국관세물류협회 해상물류비용 통계를 보면, 2021년 1월 대비 2021년 12월 TEU(20피트 컨테이너 단위) 당 4개 운임지수 평균 인상률은 약 132%에 이르며, 항공화물 또한 주요 운행구간 수출입 운임이 증가했다.

더욱이 의료기기는 멸균 상태 및 적정 온도 유지, 허가 상 유효기간 등과 같이 운송조건이 까다로워 코로나19 이후 잦은 항만 폐쇄, 물동량 감소로 인한 운행노선 축소 등 화물운송 확보가 어려운 해상보다 비용이 더 비싼 항공운송을 이용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의료기기업계, 생산·공급 중단 등 의료공백 우려

의료기기업계는 지난 12일 ‘의료기기 공급위기 대응을 위한 긴급성명서’를 발표하기 이전부터 정부에 긴급지원 필요성을 제기해왔다. 실제로 지난 4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의료기기 생산·공급 제반비용 상승에 따른 정책 제안으로 한시적 또는 조건부 치료재료 보험상한액 10% 인상 검토를 요청했다.

주목할 점은 이번 긴급성명서 발표가 정부를 상대로 정책 제안 수준에 머물지 않고 대화와 설득을 통한 사회적 합의로 이를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안의 중요성이 큰 만큼 지난 12일 의료기기산업협회 기자간담회에서는 유철욱 회장을 비롯해 협회 의료기기 공급위기 TF 위원장, 한국치과의료기기산업협회장, 국내 치료재료제조사 임원이 참석해 업계가 처해있는 위기 상황을 알리고 정부를 상대로 긴급지원 제안이 이뤄졌다.

사진 왼쪽부터 이상수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의료기기 공급위기 TF위원장, 송진우 인성메디칼 상무

유철욱 회장은 이 자리에서 “모든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긴급성명서 발표 자체가 사회적으로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다”며 “의료기기는 특수성이 있다. 일반 공산품의 경우 원부자재 값 상승으로 생산원가가 증가한 만큼 제품 가격에 증가분을 반영할 수 있지만 치료재료는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상한금액이 통제되는 일종의 공공재로서 제조원가가 증가해도 가격 조정이 불가하다”고 설명했다.

유 회장은 “다품목·소량생산과 매출 규모가 영세한 의료기기업계는 대내외적인 경제 상황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제조원가 상승으로 생산·공급 전반에 심각한 위기를 맞아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절박한 현실에 처해있다”며 “만에 하나 생산 중단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의료현장에서의 또 다른 의료공백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상수 의료기기 공급위기 TF위원장은 “의료기기업체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정부 정책에 부응해 원가절감과 업무효율화로 노력해왔지만 더 이상 고통을 감내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했다. 제조·수입원가가 크게 증가한 만큼 이를 보전해주는 정부 긴급지원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그는 “치료재료 보험상한액 10% 이상 한시적 일괄 인상은 업계가 현 위기 상황 극복을 위해 가장 시급하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제안인 점을 이해해 달라”고 당부했다.

송진우 인성메디칼 상무는 국내 치료재료업체가 체감하고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알렸다. 그는 “국내 제조사는 생산·조립·운송·판매 전 과정에서 대외의존도가 높다. 원자재·물류비·인건비 등 비용증가로 제조원가가 급증해 영업이익이 감소하고 적자 또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송 상무는 “급여제품을 생산하는 치료재료업체들은 보험상한액을 맞추기 위해 원가절감에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 또한 한계가 있다”며 “국내 치료재료업체가 이러한 위기를 탈출하고 지속 가능한 생존을 위해서는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책이 시급이 마련돼야한다”고 덧붙였다. 

“긴급지원 필요성 사회적 합의 이끌어낼 것”

국내 의료기기업계가 생산·공급에 필요한 제반비용의 급격한 증가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1998년 IMF 구제금융 당시 급격한 환율 변동에 따라 정부가 보험상한가를 일률적으로 36.6% 인상한 사례와 2008년 리만브라더스 사태 때 은 가격이 65% 급증하자 X-ray 필름가격을 선제적으로 인상한 점을 감안하면 치료재료 보험상한액 인상이 전혀 근거 없는 일도 아니다.

다만 업계가 요구하는 치료재료 보험상한액 10% 이상 한시적 일괄 인상 요청이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치료재료 건강보험 급여액이 약 4조 원임을 감안할 때 10% 이상 인상은 4,000억 원이 넘는 건보재정 소요가 추산된다.

더욱이 치료재료 품목 및 국내 제조사·수입사별 피해 상황과 규모가 천차만별인데 일률적인 인상안을요구했을 때 이를 정부가 수용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여기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의 사용자·공급자단체 등을 설득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도 녹록한 일이 아니다.

라포르시안은 이 점을 감안해 지난 12일 기자간담회에 앞서 의료기기산업협회가 사전 요청한 질의서를 보내 관련 내용을 물었다. 

먼저 의료기기업계가 주장하는 ▲원부자재 수급 ▲제조원가 상승 ▲운송비·물류비 증가 ▲중국 상해 ·북경 봉쇄 ▲국제원유가격 폭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대내외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의료기기업체 실제사례를 물었다.

현장 답변에 나선 이상수 의료기기 공급위기 TF위원장은 “이미 몇 개 업체는 파악이 됐지만 특정사례를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어렵다. 현재 의료기기단체들이 각 회원사 피해사례를 수집하고 있다”며 "협회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업이익이 크게 줄고 적자 때문에 연구개발을 할 수 없으며, 원자재 수급 문제로 병원에 제때 납품하지 못하는 등 피해사례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질문은 “2021년 국내 의료기기 수입실적은 6조1,257억 원으로 전년대비 20.8% 증가했다. 특히 상위 10개 수입업체에 다국적기업 8곳이 이름을 올렸으며, 이들 가운데 4곳 이상은 치료재료를 한국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다국적기업들이 현 상황에서 심각한 위기에 있다고 봐야할지 의문이다. 만약 치료재료 보험상한가의 한시적·일률적 인상이 이뤄지면 결국 다국적기업에게 더 큰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관련해 백영재 의료기기산업협회 전문위원은 “의료기기제조사와 다국적기업 모두 치료재료를 공급하고 국민 건강증진에 기여한다. 제조·수입원가 및 물류비 상승에 따른 어려움은 국내사·수입사 구분 없이 공통된 사항이기 때문에 이원화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답변했다.

이와 함께 “치료재료를 공급하는 국내 제조사·다국적기업 모두를 대상으로 보험상한가 10% 인상을 한시적 일률적으로 지원해달라는 요청은 그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소요가 약 4,000억 원이 추산되는 만큼 정부 입장에서 수용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현실적인 대안은 실제로 피해규모가 큰 의료기기업체를 파악해 이들 업체들을 대상으로 보험상한가 인상이 아닌 부품 수급, 특별 운송운항 마련 등 지원을 산업통상자원부·외교부 등 정부기관에 요청하는 방안이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상수 위원장은 “원부자재 수급과 운송·물류 지원은 제품을 생산·공급할 때 소요되는 비용을 줄여주기 때문에 분명 업체 숨통을 틔우는 좋은 방안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담을 정부에 전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답변을 내놓았다.

이 위원장은 “건강보험 운영의 기본원칙은 환자 생명을 구하고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필요한 의료기기를 적시에 공급해 의료공백이 없도록 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치료재료 보험상한액 인상을 통한 선제적 지원이 가장 시급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특히 “앞으로 정부는 물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사용자·공급자단체 및 시민단체 등을 폭넓게 만나 의료기기업계가 처해있는 어려움을 알리고 정책 지원 필요성을 설득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했다.

정희석 기자  leehan28@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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