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휴(의료기기규제연구회 이사)

[라포르시안] 2020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은 65.7%. 이는 1977년 전 국민 의료보험이 시작된 이후 가장 높은 건강보험 보장률이다. 특히 중증질환 보장률의 경우 약 80%가 넘어 적어도 의료비 때문에 가정이 파산하는 불행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게 됐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와 함께 국내 의료기기산업은 역설적으로 코로나19 특수에 힘입어 역대 최대 성장률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되는 전기를 마련했다. 이 같은 발전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간 의료기기산업계가 꾸준히 개선을 요구해왔던 인허가 등 몇몇 규제 문제가 해소돼야한다.

첫째는 의료기기 인허가 적체 문제다. 의료기기산업계에서 바라보는 인허가 적체 문제의 원인은 다양하다. 국민 안전을 위한 인허가 심사기준 상향으로 자료 제출 자체가 많아지고 그 범위 또한 넓어졌으며 허가심사 신청 건수 대비 식약처의 심사 인력 부족을 근본적인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코로나로 인한 재난 상황에서 정책 목표에 따라 특정 제품을 우선 검토하다보니 기존 의료기기의 인허가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

둘째는 GMP 심사 만성 적체다. 현지실사 때 매 인증 당 해당 제조소를 방문하다보니 소요 시간이 부족해 문제가 되던 것이 코로나로 인한 서류심사 전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만성 적체가 되고 있다. 산업계는 관련해 심사인력 부족이 가장 큰 문제인 만큼 서류심사 요건 중 일부가 위증성 검증만을 위한 목적으로 설정되다보니 요건에는 없지만 심사기관 요청에 의해 제출해야하는 범위가 넓어져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는 재평가 기준 문제다. 최근 체외진단의료기기 재평가 기준에서 나타난 것처럼 이미 판매된 제품이 최신 규격으로 입증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과정에서 국내와 외국 규정과의 차이로 인한 여러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예로 들면 제품 안전성을 위해 4등급에서 요구되던 임상이 오히려 3등급에서 전면 임상으로 변해 이에 대한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미 판매된 제품이 사용되고 있음에도 임상자료조차 없이 허가됐다고 유효성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지만 재평가 대상 제품은 시장에서 오랜 기간 사용된 제품이기 때문에 전문가인 사용자 집단에서 충분히 검증됐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

과다한 재평가 비용은 시장 논리에 따라 업체가 시장 판매를 포기할 것이고 이 경우 사라지는 제품의 다양성으로 인해 사용자와 환자는 선택권을 제한 받고 결국 소수 제품의 과점이라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넷째는 꾸준히 높아지는 새로운 품목군에 대한 허가심사 기준이다. 의료기기만큼 첨단 기술에 대한 적용이 빠른 산업도 없다. 인공지능(AI)·빅데이터·디지털 기술이 검진·치료에 사용되고 있음에도 부룩하고 인허가 기준은 기존 의료기기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인증 요건이나 검증 혹은 유효성 평가 방법이 제품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만의 기준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령 손목시계처럼 작아진 제품에 독립장비의 전기인증 규격을 적용하면 사용 전압 용량이라는 기본 차이로 인해 측정이 불가능하다. 결국 첨단 제품이 인허가 장벽을 넘기 위해서는 규정 자체를 개선해야한다.

같은 맥락에서 AI 의료 솔루션의 진단 정확성을 검증하기 위한 방법은 이전 영상장비의 선명함을 측정하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한다.

마지막으로 코로나와 같은 세계적 재난 상황에서 필요한 진단 혹은 치료에 필요한 의료기기에 대한 인허가 절차 개선이다. ‘긴급사용승인’이라는 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사용 중 나타나는 문제점에 대한 즉각적인 정부의 검증과 개입이 필요하다. 따라서 사용상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파악하고 조치를 취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최소화시키는 사후관리 제도를 설계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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