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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인·싸] 혁신의료기기 시장의 부재, ‘생계형 R&D' 기업만 만든다김영(사이넥스 대표이사)
[라포르시안] 본지는 급변하는 의료기기 제도와 정책 변화에 대응하고 산업 발전을 모색하고자 <헬스인·싸> 코너를 신설해 관련 업계 오피니언 리더 5명의 기고를 매주 순차적으로 게재합니다. 
<헬스인·싸>는 각종 행사와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트렌드를 잘 쫓아가며 주목받는 사람을 지칭하는 '인사이더(insider)'와 통찰력을 의미하는 '인사이트(Insight)'를 결합한 단어입니다. 
앞으로 <헬스인·싸>는 의료기기 인허가, 보험급여, 신의료기술평가, 유통구조, 공정경쟁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한 오피니언 리더들의 폭넓은 안목과 통찰력을 공유해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의료기기 제도·정책을 살펴보고, 나아가 의료기기업계 정부 의료계 간 소통과 상생을 위한 합리적 여론 형성의 장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시장은 물건을 살 사람이 돈을 들고 오는 곳이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에게 살 사람이 있는 것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다. 잘 만들기만 하면 팔릴 것이니, 좋은 제품을 더 많이 만들고 싶은 의욕이 저절로 샘솟는다. 이렇게 해서 팔고 사는 거래가 활발해지면 그만큼 시장이 활성화되고 관련 산업 또한 커지게 된다.

시장은 기업 ‘지속가능성’의 원천이다. 그래서 기업 가치는 생산하는 제품에 대한 ‘수요’가 있을 때 입증된다. 스타트업 기업의 가치 평가에 있어 매출을 중요하게 보는 이유는 시장 수요가 있고 그 기업이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해 공급을 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만한 이런 기초적인 상식을 들먹이는 것은 ‘혁신의료기기’에 대한 국내시장을 만드는 노력을 다 같이 더 늦기 전에 필사적으로 하자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그래서 소중한 국민 세금이 사용되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결과물이 모두에게 보다 좋은 의료기술 혜택으로 돌아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동시에 의료기기산업도 함께 성장하고 일자리도 창출하는 일석삼조의 기회를 놓치지 말자는 것이다. 물론 해외시장 진출도 좋다. 그런데 해외 진출이 국내시장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도 되는 대안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글로벌 의료기기시장에서 10위권을 차지하는 큰 시장이다. 특히 공보험인 국민건강보험제도를 통해 일단 시장에 진입하면 확산세가 빠른 효율성 높은 국가 생태계를 가지고 있다. 해외 어디에도 우리나라만큼 의료기기시장의 제도적 환경이 좋은 곳은 찾기 어렵다. 해외 글로벌 의료기기기업들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시장으로 한국을 꼽는 이유다. 우리가 가진 의료시장의 높은 가치를 간과하지 말아야한다.

‘시장’ 없는 국가연구개발 지원, 생계형 R&D만 양상

하지만 국내 혁신의료기기의 현실은 어떤가. 앞서 정부는 지난 8월 관계부처합동으로 ▲정부사업 우대 ▲규제 완화 ▲정책금융 우대 등을 골자로 한 ‘제약·의료기기 등 혁신형 바이오기업 육성방안’을 발표하고, 오는 2030년까지 글로벌 50대 의료기기기업 대열에 국내기업 2개를 진입시키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를 통해 대표적인 의료기기 국가연구개발사업인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에 국가예산 1조2,000억 원이 2025년까지 쓰이도록 준비돼 있다. 이는 한 마디로 정부가 돈과 제도 모두를 지원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정작 의료기기업계가 가장 목말라하는 핵심이 빠져있다. 혁신의료기기의 시장 형성을 위한 실효성 있는 구체적인 대책이 없다. 단 한 줄 ‘보험수가제도 개선’ 언급이 전부이다. 국내 혁신의료기기의 상황을 보자. 현재까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정한 혁신의료기기 15건 중 10건이 의료 인공지능(AI) 의료기기이다.

의료기관은 보험수가를 더 줘야 AI 솔루션을 구매해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현재 수가에는 AI 사용료가 반영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업계는 정부에 AI 의료기기 보험수가를 달라고 한다. 국민건강보험 당국은 지금까지 의사가 해왔던 일을 보조하는 정도의 AI에는 보험수가를 더 줄 가치가 없다는 입장이다.

의사가 하지 못했던 일을 AI가 수행한다면 추가 수가를 생각해보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까지 허가받은 AI 의료기기 중 별도수가를 인정받은 제품은 단 하나도 없다. 기술적으로 혁신적이나 임상적 유용성·비용효과성 기준으로는 아직 혁신적인지 잘 모르겠다는 뜻이다. 그러니 근거를 더 쌓으라는 요구가 따른다.

이는 지금까지 새로운 의료기술이 건강보험권에 진입할 때 해외에서 개발되고 근거가 이미 많이 쌓인 의료기기에 의존해왔던 배경이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즉, 수입 의료기기가 국민건강보험에 신청되는 시점에는 이미 해외에서 많은 사용을 통해 임상근거인 논문이 발표돼있는 상태에서 급여등재가 신청됐다.

해외 근거를 기반으로 보험수가를 받았기 때문에 굳이 국내임상 근거를 쌓을 필요성이 없었다. 그래서 국내 제도는 우리도 모르게 해외에서 이미 사용례가 많은 수입 의료기기를 가정해 임상근거 요구수준이 설정돼 있다. 하지만 이제는 국내에서 혁신의료기기 개발이 이뤄지면서 국내 임상근거를 처음부터 쌓아야하는 환경이 필요해졌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도 혁신의료기기 개발이 가능한 수준으로 발전한 것이다.

지금까지 관계부처가 많은 노력을 해온 것은 인정한다. 식약처는 ▲혁신의료기기 지정제도 ▲의료기기 허가·신의료기술 통합운영제도 ▲사전상담제도 ▲신속심사제도와 같이 의료기기업체가 품목허가를 좀 더 수월하게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다.

보건복지부·건강보험심사심평원·한국보건의료연구원 또한 ▲혁신의료기술제도 ▲신의료기술평가신청 유예제도 ▲제한적 의료기술제도 등 조금이라도 새로운 의료기기의 숨통을 트여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안타깝게도 이 정도의 절차적 개선으로는 글로벌 시장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는데 한계가 있다.

특히 AI와 같은 새로운 의료기기 기술은 얼마나 많은 건수의 환자 데이터가 AI에 반영됐는지 여부가 그 성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미국에서 AI 의료기기 허가 사례를 보면 적어도 수천 건의 환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발됐다. 반면 국내 AI 의료기기는 수 백 건에 불과하다. 따라서 데이터의 양적 격차를 따라잡을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그래야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혁신적인 제품이 나올 수 있다.

건강보험 내에서의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건강보험은 의료기기의 유일한 국내시장이다. 비급여도 건강보험에서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 제품별 판매 가능 여부와 판매 범위·가격에 대한 처음이자 마지막 시장 통제자이자 지불자인 셈이다.

따라서 국내에서 개발된 새로운 개념의 의료기기가 건강보험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새로운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 건강보험 진입이 어려우니 문턱까지만 가겠다는 생각은 비겁하다. 국가연구비에 의존하는 ‘생계형 R&D’ 기업만 양산할 뿐이다. 피해가는 것은 또 다른 비효율을 낳는다.

길을 돌아가는 동안 해당 기술은 이미 시대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시장이 없는 기술 개발은 사막에서 물고기를 부화시키는 것과 같다. 척박한 환경에서의 어린 물고기는 부화되자마자 말라 죽을 수밖에 없다.

혁신의료기기, 임시급여 통한 근거 창출 지원 필요

혁신의료기기는 사람으로 말하면 신생아나 다름없다. 갓 태어난 신생아는 충분한 영양 공급과 양육을 통해 건강한 성인으로 자랄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건강보험제도는 신생아에게 영양은 주지 않으면서 혼자서 알아서 잘 큰 다음에 다시 오라고 한다. 과연 건강한 성인으로 다시 돌아올 의료기기는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미국 사례를 보자. 혁신의료기기 급여 관련 미국 연방보험청(Center for Medicare & Medicaid Services·CMS)의 혁신의료기기 메디케어 급여(Medicare Coverage of Innovative Technology·MCIT)에 대한 최근 행보가 관심을 끌고 있다.

일부 국내 언론에서는 미국 FDA가 지정한 혁신의료기기 Breakthrough Medical Device에 대해 CMS가 4년 자동급여기간을 제공하겠다던 당초 계획을 수정해 백지화 수순을 밟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사실과 좀 다르다. 지난 9월 13일 CMS 임상기준 및 품질센터장이자 최고의학책임자 닥터 리 플라이셔(Dr. Lee Fleisher)가 블로그에 이에 대한 관련 입장을 설명했다.

메디케어는 노인과 장애인 대상 공보험인데 혁신의료기기가 이들의 인구 특성을 반영한 근거를 요구하는 것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노인이나 장애인은 건강상태가 반영된 일반인들보다 더 복잡해서 FDA가 혁신의료기기로 허가한 의료기기가 이들에게 더 큰 잠재적 위험으로 노출할 수 있다고 판단해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면 임상시험이나 환자등록연구를 통해 추가로 근거를 수집하도록 요구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지역단위의 메디케어 심사기관 심사에 따라 건별로 급여할 수도 있음도 언급했다.

이 접근은 CMS가 가지고 있던 근거창출급여제도(Coverage with Evidence Development·CED) 와 유사한 접근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임상적 유용성이나 비용효과성이 불투명한 의료기기는 근거를 수집하는 조건으로 급여를 제공하고 수집된 근거를 분석·평가해 계속 급여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선구적 의료기기(Sakigake·사키가케) 제도’ 또한 비슷한 접근법으로 혁신 의료기기로 지정된 의료기기에 대해 품목허가에서 우선 검토를 받을 수 있다. 건강보험에 있어서는 혼합진료금지원칙이 있어 선구적 의료기기를 포함한 모든 의료기기는 품목허가 후에 급여를 받게 된다.

선구적 의료기기는 대부분 새로운 개념의 의료기기이므로 이 새로운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의료기관 자격을 제한해 실시할 수 있도록 한다. 더불어 사용성적조사를 통해 재심사를 받게 된다. 이처럼 미국과 일본의 제도적 공통점은 품목허가를 받은 의료기기는 급여이건 비급여이건 의료기관에 판매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 국내의 경우 혁신의료기기는 식약처 품목허가를 받아도 건강보험에서 급여·비급여를 결정 받지 못하면 현실적으로 의료기관에 판매할 수 없는 한계성이 있다. 그렇다면 국내 혁신의료기기는 어떤 형태의 임시급여를 생각해볼 수 있을까. 가장 가까이에 의약품 ‘위험분담제’를 벤치마킹할 필요성이 있다.

해당 제도의 본질은 불확실성에 대한 위험을 국가와 기업이 나눠 가지는 것이다. 예측을 초과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또는 기업의 이중가격유지 필요가 있을 때 기업이 우선 급여를 받고 일부를 국가에 환급하는 형식이다. 혁신의료기기도 실제 임상에서 임상적 유용성이나 비용효과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다면 근거 수집을 조건으로 임시급여하고 사전 합의한 조건에 따라 일부 급여비를 환수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또 다른 방법으로 미국 CMS와 같이 근거창출급여를 건강보험예산이 아닌 연구개발(R&D) 예산으로 할 수는 없을까. 근거창출이야말로 의료기기 가치를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연구개발 활동의 일환으로 근거 수집을 조건으로 급여를 제공하면 전국에 걸친 임상결과를 빠르게 수집할 수 있다.

생각만 있다면 기술이 없어서 못할 일은 없다. 혁신의료기기에 대해 추가 근거를 수집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다만 이를 기업이 판매 활동을 하면서 근거 수집을 하는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제도가 시장을 만들어가면서 근거도 수집하도록 뒷받침해주는 것이다. 임시급여라는 중간 단계를 거친 다음 지속 급여가 가능해진다면 시장 또한 같은 속도로 형성될 수 있다. 근거와 시장,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면 국내 의료기기산업 성장세도 더욱 빨라질 것이다.

라포르시안  webmaster@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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