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리웍스(Sorry Works)’라는 게 있다. 미국에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나쁜 일이 생겼을 때 진실을 말함으로써 상호 신뢰를 얻고 보다 나은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미 미국 내 주요 병원들이 의료분쟁 해결 방안으로 이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단다. 진실을 말하고 진심어린 사과를 함으로써 갈등을 해소하고 법적분쟁을 피할 수 있게 하는 효과가 나름 입증됐기 때문이다.

사실 국내에도 쏘리웍스 프로그램 도입이 절실하다. 병원에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절실한 곳은 정책당국이다. 포괄수가제라는 새로운 진료비 지불제도 도입 논란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오는 7월부터 일종의 ‘입원진료비 정액제’인 포괄수가제(DRG)가 종합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으로 확대 시행된다. 그런데 이를 놓고 정확히 1년 전과 비슷한 갈등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마치 데자뷔 같다. 1년 전인 작년 6월의 상황은 이랬다. 당시 의료계는 포괄수가제를 강제적용 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부족하고, 적정수가를 책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되면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가 우려된다고 반대했다. 강력한 항의의 표시로 포괄수가제 적용 대상인 제왕절개수술과 백내장 수술을 중단하겠다는 선언도 나왔다. 보건복지부는 포괄수가제가 시행되면 환자들의 진료비 부담이 줄어들고 의료기관의 경영 효율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맞받았다. 물론 의료서비스 질 저하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결국 정부의 뜻대로 시행에 들어갔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현재 의료계와 정부는 포괄수가제 확대 시행을 놓고 갈등을 겪고 있다. 작년에는 동네의원과 보건당국이 싸웠다면 이번에는 대형병원과 보건당국의 싸움이다. 지난 4일 전국 의과대학의 산부인과 교수진이 직접 나서 복지부를 향해 포괄수가제 확대 시행을 중단을 것을 촉구했다. 만일 복지부가 제도 시행을 밀어붙이면 산부인과의 복강경수술을 중단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날렸다. 이를 대하는 복지부의 태도나 반박하는 논리는 변함없다. 제도를 먼저 시행한 후 문제가 생기면 고쳐 나가자고 한다.

의료계가 이렇게 반발하는데도 불구하고 복지부는 왜 포괄수가제를 밀어붙일까. 이 질문에 대한 복지부의 생각은 이렇다. 우리나라 국민의료비 증가 속도가 OECD 평균의 2배를 넘을 정도로 진료비 증가 현상이 심각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억제 대책이 시급하다고 한다. 지금과 같은 행위별수가제 하에서는 필연적으로 과잉진료가 발생하고, 비급여 진료가 증가함으로써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 복지부의 판단이다. 결국, 건강보험 보장성을 아무리 높여도 행위별수가제의 특성상 병원들이 새로운 비급여 진료를 만들어 수익을 보전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포괄수가로 진료비 지불제도를 바꾸면 과잉진료가 사라지고 비급여를 자연스럽게 끌어안아 의료비 증가 억제는 물론 보장성 강화 효과도 생긴다는 ‘장밋빛 전망’을 제시한다. 지난달 31일 사립대학교의료원협의회 주최로 열린 '민간의료기반에서의 포괄수가제(DRG) 해법 진단 미래의료정책포럼'에서 복지부 관계자가 주장한 요지다.

복지부의 주장은 자가당착이다. 지금의 국민의료비 급증과 의료기관의 과잉진료와 비급여 진료 양산, 낮은 건강보험 보장성이 행위별수가제란 진료비 지불제도 탓이란 말인가. 포괄수가제로 바꾸면 다 해결될 수 있단 말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흔히 '국민의료비'라 하면 단순히 가계가 직접 부담하는 의료비로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 않다. 국민의료비는 가계가 직접 부담하는 의료비 뿐만 아니라 정부재원, 사회보장재원, 민영보험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렇게 구성된 국민의료비가 최근 빠르게 증가해 2010년 기준으로 연평균 9%에 달해 OECD 평균(4.5%)의 2배에 달한다는 것이다.

국민의료비 재원의 구성비율을 보면 그저 놀랍다. 각 재원 중에서 가계부담 의료비는 OECD 평균을 훨씬 웃돌지만 정부재원(국고지원)과 사회보장재원(건강보험 재정)의 비율은 형편없이 낮기 때문이다. 'OECD Health Data 2012’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OECD 평균 정부부담 보건의료비는 322억5400만 달러에 달하지만 우리나라는 132억200만 달러로 약 40%에 불과했다. 국민 1인당 정부부담 보건의료비는 더 낮다. 우리나라는 평균 267.2달러로 OECD 평균(1,361.3달러)의 1/5 수준이다. 사회보장부담 보건의료비는 453억6500만 달러로 OECD 평균(707억1700만 달러)의 64% 수준에 머물렀다. 반면 가계가 직접 부담하는 의료비는 OECD 평균(232억1100만 달러)보다 훨씬 높은 322억7700만 달러였다.

상당히 이상하고 기형적인 구조다. 국민의료비 재원 중에서 정부부담 비율이 지나치게 낮아 사실상 의료공급체계에서 국가가 국민들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 ‘무임승차’를 하는 꼴이다. 국민의료비 지출 증가 속도가 OECD 평균의 2배에 달한다고 걱정하기 전에 정부의 역할이 크게 부족했음을 사과하고 개선해야 한다.

의료기관의 과잉진료와 비급여 진료 양산은 또 무슨 이유인가. 정부가 전국민 건강보험제도라는 아젠다에 집착한 결과다. 건강보험제도 도입 초기 국민들의 제도 저항을 없애고 가입률을 높이기 위해 낮은 보험료를 부과했다. 당연히 보험재정이 부족한 탓에 급여 보장 영역은 좁고 진료행위에 따른 보상도 저수가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의료기관들은 경영을 유지하기 위해 진료 행위량을 늘리고 급여 항목 이외의 비급여 양산이란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정부도 그 원인이 자신들이 만들어낸 제도에 있다는 점을 알기에 눈감아 왔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정부는 의료공급체계의 핵심인 의료기관 확충을 민간의 자원에 내맡겼다. 그 결과, 전체 의료공급체계에서 공공병원 비중은 5~6%에 불과하다. 의사를 양성하는 과정에서 거의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았다. 결국 자영업자로서 양성된 의사와 민간이 세운 병원이 국내 의료공급체계의 90% 이상을 메우는 ‘민영 의료시스템’이 구축됐다. 자영업자로 양성된 의사들을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앞세워 건강보험 틀 안에 가둬놓았으니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의료기관과 행위별수가제라는 진료비 지불제도 탓을 한다. 포괄수가제로 바꾸면 마치 모든 문제가 일소에 해소될 것처럼 말한다. 절대 그렇지 않다. 건강보험 재정 확충 없이 보장성은 확대되지 않는다. 저수가 체계를 유지하는 이상 비급여와 과잉진료 문제는 계속된다.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지 않는 이상 국민들의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 문제는 개선될 수 없다. 포괄수가제는 그 다음 문제다.

 ‘쏘리웍스’. 진실을 말하고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문제의 본질이 보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해법을 찾게 된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