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력을 길러주는 인문학 공부법 / 안상현 지음 / 북포스 펴냄

애플의 성공신화가 흔들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스티브 잡스의 부재를 그 원인으로 지목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누구보다 앞서 새로운 시대의 디지털 혁명을 구상하고 이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첫째, 그는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교차점에 서있었다는 것을 꼽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인문학적 소양을 과학기술에 비벼내어 소비자의 감성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 성공비결이었다는 것입니다(월터 아이작슨 지음,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의 전기는 마침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던 인문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인문학이 위기를 맞고 있다거나, 인문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인문학이 잘 나가던 때가 있었던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인문학이 어떤 학문인지 조차도 몰랐던 저도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을 보면 인문학에 대한 사회 전반의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위키백과사전에 따르면, “인문과학(人文科學)은 인간의 조건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이 경험적인 접근을 주로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며 사변적인 방법을 폭넓게 사용한다. 인문과학의 분야로는 철학과 문학, 역사학, 고고학, 언어학, 종교학, 여성학, 미학, 예술, 음악, 신학 등이 있으며, 크게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로 요약되기도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니 인문학이 다루는 영역이 광범위하다는 생각과 함께 저는 아직도 개념정리조차 못하고 있는 분야가 태반이구나 싶습니다.

최근 들어 인문학에 관심을 두고 책읽기를 시작했지만,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몰라 닥치는 대로 읽고 보자는 식이었던 저가 인문학 책읽기의 방향을 정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바로 안상헌님의 <통찰력을 길러주는 인문학 공부법>입니다. 안상헌님은 대학 때부터 시작한 4,000여권의 책읽기를 통하여 세상을 살피고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연구하는 독서와 자기계발 전문가라고 합니다.

저자는 “제가 아주 무식하다는 건 알았지만, 누구한테 물어봐야 할지 몰랐어요. 배움을 얻기 위해 닥치는 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죠.(4쪽)”라는 서머싯 몸의 소설 <면도날>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책의 서문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길을 찾는 방법을 구하기보다는 무작정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방식입니다.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는 경구를 철석같이 믿고 있는 저처럼 말이지요. 그러다 보면 중도포기를 하기도 하지만 길을 찾는 방법을 저절로 익히게 되기도 합니다. 저자는 무작정 시작했던 책읽기를 통하여 찾아낸 인문학 공부방법을 관심있는 사람들과 공유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역시 공부에도 왕도는 있는 셈입니다.

사실 저는 자기계발서에는 그리 관심이 없는 편입니다. 쓰신 분의 경험이 녹아있는 자기계발서를 특성이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하였을 때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고, 쏟아져 나오는 자기계발서를 읽다보면 오십보백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입니다. 그래도 “자기계발이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경청을 잘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면, 인문학은 ‘마음으로 들어라’라고 말한다. 자기계발이 행동이라면 인문학은 성찰에 가깝다.(27쪽)”는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인문학은 자신에게 필요한 문장을 스스로 찾아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직접 알려주지 않고 스스로 찾고 발견하도록 유도한다.”라는 저자의 생각에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태도와 책 읽는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점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2부에서는 철학, 3부에서는 문학 그리고 4부에서는 역사에 관한  대표적 저작들을 어떻게 읽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1부에서 저의 시선을 끈 대목은 “어떤 일의 본질을 찾아내는 것은 원리를 이해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원리를 알면 세상이 분명해지고 일이 수월해진다. 이때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본질을 찾기 위해서 모색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접근방법이 있다.(83쪽)”라고 시작하는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정리한 부분입니다. 앞서 문학/역사/철학이 인문학을 대표하는 분야라고 말씀드린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접근하는 방법,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방법, 그리고 전면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입니다.

첫 번째, 본질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현상을 살펴보고 본질을 파악하는 훈련을 통하여 문제를 본질적 관점에서 해결하는 길을 쉽게 찾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본질적 접근법을 훈련하는 데는 역시 철학이 도움이 되는데, 그 이유는 철학이라는 학문이 끊임없이 ‘왜?’라고 묻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건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 원인을 불러온 원인은 또 무엇인지를 추구하여 사건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사건과 문제를 발생한 순간의 상황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을 바로 잡아 시간을 거슬러 사건의 흐름을 파악함으로써 역시 사건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전면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발생한 사건 하나만을 두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과 연결될 혹은 연결될 가능성이 있는 모든 부분을 동시에 바라보며 파악하는 것을 말하는데, 문학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주인공들을 통해서 인간을 이해하는 폭을 넓히고 역시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서 현실사회의 개연성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다고 합니다.

문학/역사/철학의 세 가지 영역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는 점을 깨닫고 있지만 본격적인 책읽기가 늦었던 탓인지 역시 철학이 제일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자는 철학자들을 공부할 때는 주요 개념과 핵심문장을 먼저 파악해두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철학사전 같은 책을 곁에 두고 새로운 개념이 나올 때마다 즉시 찾아보면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철학자 한 사람에 대하여 제대로 배우려면 그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나 그를 먼저 공부한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마침 저자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중심으로 하여 니체를 설명하는데 두 개의 장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최근 저도 우연히 니체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어 자연스럽게 <비극의 탄생/즐거운 지식/반그리스도교>를 읽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 담긴 니체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는 고명섭기자님의 <니체극장>에서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저자는 니체가 철학자이자 문학가이고, 문학가이면서 또한 혁명가이기도 하다면서 철학과 문학의 경계는 없다고 적었습니다. 철학은 문학일 수 있고 문학은 철학일 수 있으며 역사 또한 그 자체로 문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면 니체의 저술들은 마치 문학작품을 읽는 것처럼 물 흐르듯 읽힌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의 가장 권위있는 기호학자이면서 뛰어난 철학자로 꼽히고 있는 움베르토 에코 역시 이론서를 통하여 철학적 사유를 발표하기도 하지만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와 같은 장편소설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장미의 이름>의 경우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논리학,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경험주의 철학과 자신의 기호학 이론을 유감없이 설파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저자의 인문학 책읽기 안내에서 제가 놓치고 있던 점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로 “모든 공부의 시작과 마무리는 자기성찰과 수양이다.(154쪽)”라는 요약입니다. 즉 공부의 시작이 자기성찰이라면 마무리는 수양인 것인데 배운 것을 반복해서 갈고 닦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면 그 공부는 죽은 공부가 된다고 콕 짚었습니다. 그리고 <논어>와 <맹자>가 바로 그런 공부에 가장 적합한 책이라고 추천하고 있습니다.

문학부문에 대한 저자의 안내에서도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저 역시 소설을 읽을 때 스토리 위주로 읽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단계를 넘어서려면 주인공의 변화과정을 느끼면서 읽는 것이라고 합니다. “문학을 읽을 때는 사람들이 변화되는 순간이나 갈등에 봉착했을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판단을 하는지를 잘 살피는 것이 좋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빨리 넘어가기보다는 갈등의 순간에 더 머무르면서 문장을 천천히 읽어야 한다. 그래야 문학을 느낄 수 있다. 문학의 목적은 느끼는 것이다. 느껴야 감동할 수 있다.(184쪽)”고 적었습니다.

최근에 저는 고전문학작품을 새롭게 읽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가 강력하게 추천하는 글에 끌려 읽는 경우도 있고, 그동안 마음속에 새겨두었던 독서목록이 떠올라 읽기도 합니다. 지난해에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완독하기도 했는데, 덕분에 주요 일간지의 문예면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면서 사교모임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적지 않아 헷갈렸던 기억 때문에 민음사에서 새로 나온 번역본에서 등장인물을 따로 정리해준 친절에 감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이런 대작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주인공을 중심에 두고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관계도에 적어 넣으면 책읽기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내용만 파악하는 소설읽기는 국어시험공부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소설에서 인생을 배우지 못하면 제대로 읽은 것이 아니다.(201쪽)”는 저자의 일갈에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는 고백을 드리면서 저자가 정리하는 소설을 읽는 다섯 가지 이유를 소개합니다. 첫째, 인간군상을 만나는 재미, 둘째, 소설 속 인물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 셋째, 역경을 이겨내며 자기 삶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통해 용기를 얻는 재미, 넷째, 스토리가 주는 재미와 감동, 다섯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점 등입니다. 그리고 이유에 따라서 읽는 방법도 달라져야 하는데 단순히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읽는 과정에서 목적을 달성할 방법들을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소설을 읽고 얻은 삶의 교훈을 자신의 문장으로 정리해보는 것이 좋은데, 그 이유는 소설은 메시지를 문장으로 정리해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결국 책읽기는 서평으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서평을 쓰려면 줄거리 뿐 아니라 그 의미를 파악하여 소설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고 인생에 대하여 배울 기회로 삼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은 역사의 바닥에 흐르는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감을 잡는 것이므로, 역사책을 읽을 때는 늘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그 원인이 되는 사실을 잘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복답다단한 역사를 다각도로 살펴 사물을 꿰뚫는 통찰을 얻고 현상의 이면을 제대로 바라보자”고 인문학으로서의 역사를 자리매김하고 있는 김동욱기자의 주장이 새삼 떠오릅니다.[김동욱 지음, 독사(讀史)]

“인문학 공부를 통해 진실함을 배울 수 있다면 제대로 공부한 것이라 믿는다(327쪽)”는 저자의 마무리는 인문학 책읽기의 최종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할 것 인가에까지 생각이 이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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