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성남병원 폐업 이후 야간 응급의료 등 불편 초래…시립의료원 설립 마침내 확정

▲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옛 시청사 부지에 건립예정인 성남시의료원 조감도.

성남 수정구 은행동에 거주하는 K씨는 얼마 전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화가 치솟는다. 며칠 전 새벽 1시. 인기척에 잠이 깬 K씨는 얼굴이 하얗게 변한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네 살배기 아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베개에는 토한 흔적까지 보였다. K씨는 아이를 안고 나와 급하게 택시를 잡고 집 근처 S종합병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 병원에서는 응급실이 만원이라 아이가 누울 병상조차 없었다. 급한 마음에 아이를 다시 안고 나온 K씨는 어렵게 택시를 잡고 분당구 구미동에 위치한 한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저녁 먹은 것이 체했던 아이는 진료 후 무사히 응급실을 나올 수 있었다.  K씨가 다시 택시를 타고 은행동에 도착하기까지는 40분 가까이 걸렸다. 그날 K씨는 병원 때문에라도 구시가지를 떠나 분당으로 이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성남시 구시가지로 구분되는 수정구와 중원구에 거주하는 지역민이라면 K씨가 분당구로 이사하고자 하는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지난 2003년 경영난을 이유로 성남시에서 단 세 개밖에 없던 종합병원 중 인하병원과 성남병원이 폐업한 이후 구시가지에는 3차의료기관 공백이 발생한 때문이다. 그 이후 10년 이상 새로운 종합병원 설립 논의가 이어져왔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실행되지 못한 채 주민들의 야간 응급의료 불편이 계속돼 왔다.그런데 최근 성남시가 수정구 태평동 옛 시청사 부지 2만4,829㎡에 시립의료원을 건립키로 하고, 조달청에 턴키 방식 시공사 선정입찰 공고를 발주의뢰했다.

처음 설립 논의가 시작된 지난 2003년 이후 10여년간 성남시, 시의회, 시민사회간 갈등을 빚어온 시립의료원 설립이 본격적으로 구체화 된 셈이다.

성남시 보건위생과 관계자는 “현재 의료원 건립을 위한 시공사 선정을 조달청에 발주의뢰한 상태고 오는 17일경 조달청에서 공고할 예정”이라며 “오는 6월 중 신공사 선정이 이뤄지면 2개월간의 협의를 진행한 후 오는 8월 착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는 오는 2016년 12월까지 공사를 마치고 2017년 4월 개월할 예정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시민단체와 시의회간에 갈등 요소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 시립의료원 설립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10년에 걸친 지리한 설립 논의… 정치권 이해관계로 갈등 심화

성남 시립의료원 설립 논의는 지난 2003년 구시가지인 수정구에 있던 종합병원인 인하병원과 성남병원의 폐업에 따른 의료공백을 이유로 당시 시민운동을 하던 현 이재명 성남시장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이 주민 발의로 조례 제정에 나서면서 시작됐다.

당시 분당서울대병원과 분당차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이 들어서 있는 신시가지인 분당과 달리 구시가지인 수정구와 중원구에는 종합병원인 인하병원과 성남병원, 중앙병원이 지역 의료를 담당하고 있었다.

지난 2003년 경영난을 이유로 인하병원과 성남병원이 폐업 하면서 구시가지 3차의료 서비스에 공백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구시가지인 수정구와 중원구는 인구 수가 55만명에 달하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종합병원은 중앙병원 단 한 개만 남게되자 주민들은 1시간 가량 떨어진 분당구까지 찾아가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특히 응급의료센터가 없어 수정구와 중원구에서 야간 응급환자가 발생할 경우 멀리 떨어진 분당까지 환자를 이송해 치료해야만 했다.

현재 수정구와 중원구 구시가지에 위치한 종합병원인 중앙병원은 200병상이 조금 넘는 규모로, 그나마 야간 응급실 운영이 취약하고 환자들이 몰려 55만명에 이르는 지역주민이 이용하기에는 버거운 상황이다.

반면 분당에 위치한 분당서울대병원의 응급실은 50병상, 분당차병원은 30병상을 갖추고 있으며 별도로 소아응급실도 운영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성남시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2003년 11월 ‘성남시립병원설립 범시민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성남시립병원 설립을 위한 주민발의를 추진, 1만8,595명의 참여를 받아 2003년 12월 전국 최초로 주민발의 조례를 접수했다.

그러나 발의된 조례안은 2004년 9월 성남시의회 자치행정위원회에서 부결처리돼 본회의에 안건조차 상정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성남시립병원 설립을 위한 범시민추진위원회는 성남시립병원 설립운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단체 및 개인인사를 확대해 ‘의료공백해결을 위한 성남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를 2005년 6월 8일에 발족했다.

새로 발족한 운동본부에 의해 지난 2005년 11월 1만8,845명이 참여한 2차 주민발의 조례가 다시 접수되고 병원이 폐업한지 3년만인 2006년 3월 시의원 만장일치로 성남시립병원 설립 조례가 가결됐다.

하지만 지난 2010년 9월5일 의료원 설립 추진위원회 구성과 관련된 조례개정안을 당시 한나라당 소속 시의원들이 의료원 운영방법 등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결하면서 또 다시 설립 추진이 난항을 겪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낳기도 했다.

당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한다라당 소속 시장인 민선 4기 때 여야가 합의한 의료원 설립 문제를 한나라당 시의원들이 뒤늦게 발목잡고 있다”며 강하게 비난했다.그러자 당시 한나라당은 “시립의료원 건립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닌 민주당과 집행부가 일방적으로 성급하게 추진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후 의료원의 운영방식을 둘러싸고 정치권의 갈등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당초 시는 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운영주체와 방식을 결정하자는 입장이었다.

성남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와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통합진보당 역시 “무분별한 민간위탁은 공공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저렴한 의료비와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직영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직영은 막대한 혈세가 투입되기 때문에 대학병원에 위탁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적자운영을 막고 의료서비스의 질이 높아진다”고 맞섰다.

당시 한나라당 시의원들은 시립의료원 운영방식을 대학병원 위탁으로 하지 않으면 시립병원 예산을 통과시키지 않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논란 끝에 지난 2011년 7월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대학병원 위탁·운영’을 명시한 조례를 개정하고 지난해 2월 시가 개정된 조례를 공포함에 따라 갈등은 일단락됐다.

이처럼 지리한 논의를 거쳐 시립의료원 건립 계획이 확정된 것이다. 

위탁운영 놓고 갈등의 불씨 여전

아직까지 시민단체가 의료원의 대학병원 위탁운영을 문제 삼고 있어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다.

성남시립병원설립운동본부 김용진 공동대표는 “공공병원을 지으려다보니 적자 운영에 대한 걱정으로 여러 의견이 있었고 많은 갈등이 빚어졌다”며 “현재 대학병원에 위탁 운영키로 했지만 아직까지 시가 시민사회의 의견모아 조정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박 공동대표는 위탁운영 등과 관련해 정치적인 이유가 개입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박 공동대표는 “의료원 건립은 성남시민들이 오랫동안 요구했던 것인데 갈등이 빚어지는 양상을 보면 시립병원 자체에 대한 것보다는 정치적인 논리가 우선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며 “(새누리당 시의원들이)설립과 운영상 우려되는 점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반대한다기보다는 정당이나 정치적인 이유가 많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는 “충분히 합의를 보고 서로 이해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며 “본질과 동떨어진 정치적인 이유로 시민들이 원하는 것을 발목잡아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성남시는 의료원이 설립되면 조례에 따라 위탁운영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성남시 보건위생과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의회에서 조례개정 하면서 대학병원 위탁으로 명시돼 있기 때문에 이에 따를 수 밖에 없다”며 “그 밖에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의료원 건립과 관련된 갈등은 봉합됐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보건위생과 관계자는 “설립 여부와 운영방식을 둘러싼 의견 대립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지금은 초당적으로 설립에 찬성하고 있는 만큼 갈등은 표면적으로 봉합됐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시는 의료원이 흑자경영으로 전화하는 시점은 개원 후 6년 정도로 전망했다.

보건위생과 관계자는 “전국 34개 지방의료원이 대부분 적자 운영하고 있고 성남의료원도 안착륙까지 어느 정도 적자경영은 불가피할 것”이라며 “그러나 타당성 조사에서 개원 후 6년 이후 흑자경영으로 전환될 것으로 나온만큼 경영은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