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형석(서울아산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임상강사)

한 밤 중에 아기가 아플 때, 갑자기 허리에 극심한 통증이 왔을 때, 이유없이 어지러울 때 전화 한 통으로 전문의를 연결해 상담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임신 중인데 이런 음식은 먹어도 되는지, 혹은 이 약은 복용해도 괜찮은지. 팔목에 금이가서 스플린트를 대고 왔는데 빨리 수술하지 않아도 상관없는지. 이런 궁금증이 들 때 전문의한테 상담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건강콜센터'는 이런 생각에서 시작된 서비스다. 서울시 김경호 복지건강실장은 "서울시민은 앞으로 '국번 없이 119'로 전화하면 응급출동에서 전문적인 의료상담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게 됐다"며 "건강콜센터를 통해 시민들이 목말라하던 전문적인 건강정보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의료접근성을 향상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서비스는 정말 시민들에게 큰 도움이 될까.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이고 공중보건의사로 3년 중 2년을 ‘1339 응급의료정보센터’에서 근무(주업무가 의료상담 및 구급대원 의료지도)한 경험에 비춰볼 때 이 서비스가 행정가들의 현실인식이 얼마나 위험하고 폭력적인 것인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건강콜센터는 전화를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얻을 것이 없다. 이런 서비스가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만 좋을 뿐이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우선 살펴봐야 할 점은 왜 사람들이 콜센터에 전화를 할까 하는 이유다. 의료상담이 필요해서이다. 좀 더 구체화시켜서 의사. 특히 전문의와 통화를 하고 싶어서다. 통화를 하고 싶은 경우를 요약해보면 ▲응급상황이라고 생각되지만, 병원에 갈 수 없어서 ▲병원에 다녀왔지만 궁금한 점이 많아서 ▲의학적으로 궁금한 것이 생겨서 등으로 볼 수 있다.

응급상황이라고 생각되지만 병원에 갈 수 없어서?

개원가에서 주말 및 야간진료를 할 뿐 아니라 대학병원을 포함한 수많은 응급실이 운영되는 서울시에서 병원에 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매우 극단적인 경우 뿐이다. 일예로 북한산 등반 중에 정상인근에서 심한 가슴통증이 생겼다던가, 독거노인이 갑자기 골절 또는 뇌졸중등의 문제가 생기는 경우이다.

이렇다 하더라도 119 구급대원들의 활약이 넘쳐나는 서울시에서는 다른 어디보다 응급의료체계가 잘 잡혀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경우는 콜센터를 통하는 것이 아니고 119상황실에 소속된 의사(아마도 공보의)의 지도를 받는 것이다.

1339 근무 당시를 되짚어보면 응급상황이라고 생각되지만 병원에 갈 수 없어서 전화하는 경우는 대부분 밤 늦은 시간이나 병원이 먼 경우인데, 대부분의 상담내용 또한 의학적으로 응급이라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만약 실제 응급상황이라면 전화상담을 받기 보다는 119를 부르는 것이 시간을 단축시킬 것이고, 또한 대부분의 경우 그렇게 한다. 급박한 응급상황에서 의사의 전화상담은 제한적일뿐더러 의사가 상황을 판단하는 데 필요한 효과적인 정보수집이 어려워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 쉽다. 이런 경우 전화한 사람에게 피해가 생긴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상담의사인가 전화한 사람인가. 게다가 전화를 통한 원격의료행위는 매우 제한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불법이다.

병원에 다녀왔지만 궁금한 점이 많아서?

병원에 다녀왔는데 궁금한 점이 많아서 콜센터에 전화한다면 질병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거나 직접적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관련된 질문일 것이다.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질문이라면 콜센터에 전화하는 것이 아니고 해당 외래에 전화해서 본인을 진료한 의사와 직접 통화해야 한다. 약간 관련성이 있더라도 본인을 직접 진료한 의사보다 콜센터에서 전화받는 의사가 더 효과적인 정보를 주긴 어렵다. 의학적 상담을 포탈사이트 게시판 정도로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의학적으로 궁금한 것이 생겨서?

본인이 궁금한 것이 있는데 병원을 가지 않고 해결하려 한다면 십중팔구 직접적인 질병관련성이 떨어지거나 건강기능식품 복용 등을 포함한 일반적인 건강상담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런 것까지 전문의 상담이 필요해서 전화를 한다면 본인이 내는 세금을 본인이 낭비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본인이 '듣고 싶어하는' 상담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 역시 하지 않는게 좋다.

1339에서 근무한 경험을 돌이켜보면 가장 많이 걸려온 전화는 밤에 아기가 열이 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묻는 전화다. 모범답안은 "해열제를 먹이고 미온수 마사지를 30분 정도 해도 열이 안 떨어지면 병원에 가라"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체온이 몇도인지, 동반증상은 어떤지, 기저질환이 있는지 상세히 물어보고 신중히 '의견을 제시' 하는 것이 의료상담일 것이다. 그러나 전화 상으로는 상대방이 말하는 체온조차 믿을 수 없는 경우가 많고 이것저것 물어보면 오히려 신경질을 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또 전화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양 쪽엔 좁히기 어려운 간극이 있는데, 전화하는 사람은 '상담' 보다는 '진단' 을 받기를 원하지만 전화받는 의사는 자신의 상담 내용조차 책임을 질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쪽이 말하는 내용은 엇갈리는 것이 당연하고 십중팔구 "전화로는 효과적인 상담이 어려우니 병원에 가보라", "내가 그런 소리 들으려고 전화했냐? 그 말은 나도 한다"라는 말로 귀결된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건강콜센터 제도의 큰 문제점은 24시간 전문의 상담이라는 홍보인데, 그렇다면 최소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4개과와 정신건강의학과를 포함해서 5개과의 전문의가 3교대근무를 한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그렇게 15명의 인원이 아니라면 응급의학과나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돌리겠다는 뜻인가. 전자의 경우 매달 억대의 예산이 필요할 것이고 후자라면 민원인이 자주 하는 질문인 "당신 전공이 뭐요?"라는 질문에 응급의학과, 혹은 가정의학과라고 하면 전문의가 아니라면서 또다른 욕을 들어먹는 일이 허다할 것이다.

또한 공무원의 입장에서 전화하는 사람은 ‘민원인’이기 때문에 민원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고 따라서 민원인의 비의료적인 상담요구에도 친절하게 적극적으로 상담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결국 이 서비스가 의료상담이 목적이 아니라 시정홍보수단으로 쓰인다는 반증이 아니고 무엇일까. 때문에 건강콜센터가 올바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다음의 조건이 선결되어야 한다.

1. 상담하는 의사의 권한이 커서 ‘비의료적인 상담’, 또는 ‘급하지 않은’, ‘진료를 대신 하려는 의도의’ 상담에 대해서는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2. 상담에 해당하는 항목을 ‘응급증상 및 이에 준하는 증상’으로 한정해야 한다.3. 상담에 대한 독자성을 인정하고 상담 이외의 다른 요구사항이 없어야 한다.

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 없이 시행하는 건강콜센터는 결국 홍보성 행정에 세금낭비일 뿐 아니라 의사의 진료행위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서형석은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로 현재 서울아산병원에서 임상강사로 근무하고 있다. '제길박사의 책상'(http://hyungseok.blogspot.kr)이란 블로그를 운영하며 의학 관련 글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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