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욱(연세대학교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근로능력평가의 원래 취지는 취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질병이나 장애를 이유로 차별 받지 않도록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가에 임하는 모든 사람은 자신이 가진 최선의 능력을 발휘하고자 노력한다. 그런데 이것이 원래 취지와 달리 능력이 없는 사람을 가려서 혜택을 주는 방법으로 사용된다면 누구라도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감추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근로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전문가는 아무도 없다. 지금 논란이 되는 근로능력평가가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2000년 처음 제정되었을 때는 근로능력평가는 없었고, 단순히 ‘질병·부상 또는 그 후유증으로 2월 이상의 치료 또는 요양이 필요한 자’로 규정하고 있었다. 이것으로 일할 수 있는데 일할 생각을 하지 않고, 생계급여를 받으려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근로능력평가가 도입된 것은 2009년 12월 30일 개정 때부터였다. 이는 2009년 허위진단서를 근거로 기초생활급여를 부당한 방법으로 타낸 것이 적발되어 근로능력이 있는지를 판단하는데 의사의 진단서가 의심을 받았고, 의사들 또한 근로능력평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이를 목적으로 한 진단서 발급을 꺼려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근로능력을 평가하는 기준과 함께 이 제도가 도입되었다.

문제는 질병이나 장애 상태와 근로능력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질병과 장애 상태는 단순히 건강상태를 반영하는 것이지 근로능력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스티븐 호킹 교수나 서울대학의 이상묵 교수는 모든 사람이 인정할 수 있는 심한 장애를 가져서 객관적으로 근로능력이 전혀 없는 분들이다. 그러나 이 두 분에게 근로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본인들도 근로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에 종양치료를 완료한 상태로 특별한 치료 없이 부정기적으로 관찰이 필요한 사람은 의학적 평가기준으로 1단계이지만, 이 사람의 체력이나 심리상태로 근로능력이 매우 저하되어 취업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의학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지만, 정작 본인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이런 양 극단의 사람들을 어떻게 근로능력을 평가할 것인가? 앞서도 말했지만 자신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되어야 이익이 있는 경우에는 최선을 다하겠지만, 능력을 감추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능력을 감추려고 할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의도적으로 감추는 상황에서는 어떤 전문가도 제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근로능력평가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법 제9조5항에 따르면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에게는 자활에 필요한 사업에 참가할 것을 조건으로 생계급여를 지급한다. 또한 이법 시행령 제7조에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는 18세이상 64세 이하의 수급자를 말하는데, 이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라 하더라도 ‘질병ㆍ부상 또는 그 후유증으로 치료나 요양이 필요한 자 중에서 근로능력평가를 통하여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이 근로능력이 없다고 판정한 자’는 근로능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여 자활에 필요한 사업에 참가하는 조건 없이 생계급여를 지급한다.

이 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근로능력평가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근로능력이 없는 사람은 조건 없이 생계급여를 지급하고,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은 자활 사업에 참가하는 것을 조건으로 생계급여를 지급하는 것이다. 생계급여를 받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그냥 앉아서 받느냐 아니면 조금 수고하고 받느냐 하는 정도이다. 물론 사람의 마음에 조건 없이 받는 것을 선호하겠지만, 생계급여가 꼭 필요한 사람은 이런 조건 여부를 따지지 않을 것이다.

이 법이 제정될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 제도를 ‘모든 가난한 국민에게 생계, 의료, 교육, 주거 등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하였다(동아일보 1999년 8월 20일). 당시 이 제도를 설계하는데 있어 막연한 보호로 ‘근로의욕을 상실하게 하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생산적 복지’의 원리를 반영한다고 하였다. 이 기초생활 보장제도는 근로와 연계해 급여를 제공함으로써 국가의 도움에 안주하는 ‘빈곤과 나태의 함정’을 예방하고, 자립자활 노력을 조건으로 지원한다고 하였다. 이런 의견은 이 법의 제정 당시 주무장관의 발언이었으므로 법의 입법취지를 가장 잘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의학적 평가는 최소한의 객관적 기준이어야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 근로능력평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근로능력을 평가하는 이유는 일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하지 않고 국가의 도움을 받으려는 사람을 찾아내자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벌주거나 급여를 주지 말자는 것이 아니고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조금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것이 입법취지이다.

이런 상황에서 근로능력평가 중 ‘의학적 평가’는 진단서가 아니며, 일하는데 문제가 되는 질병이나 장애 상태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최소한의 객관적인 기준이어야 한다. 적어도 이 정도면 일할 수 있거나 이 정도는 일할 수 없다는 가장 객관적인 최소 기준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 ‘의사용’ 평가 기준과 ‘한의사용’ 평가 기준이 달리 제안된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단일 진단기준으로 한의사도 ‘의학적 평가’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오히려 더 타당하다.

‘의학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의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사람들을 구제해 주자는 취지로 활동능력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근로능력이 있다는 의학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근로능력이 없다고 판단하는 활동능력평가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반대로 의학적 평가로 근로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 사람을 활동능력평가로 근로능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활동능력평가는 검사자와 피검사자의 주관적 평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법의 취지가 최저생활이 미달된 사람들을 도와주자는 것이 주목적이지, 이들 중에서 일부를 제외하는 것이 주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근로능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 받은 사람에 대해서는 그 사람의 근로능력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 주거나 일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일이 효과적으로 잘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근로능력이 없다고 평가 받아 급여를 받는 것보다 근로능력이 있다고 평가 받아 일하는 것이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근로능력평가와 관련된 논란이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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