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의료계와 정부는 건강보험 요양급여기준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해왔다. 의료계는 급여기준의 형평성과 실효성을 주장한 반면 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전제로 일관성 없는 고시 개정을 남발해왔다. 이런 가운데 의료계는 물론 환자들도 불합리한 급여기준으로 인한 피해를 적지 않게 봤다. 이에 <라포르시안>은 의사와 환자 간 라뽀를 해칠 수 있는 급여기준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관련 학회와 정부의 대안을 듣는 코너를 마련했다. 이 시리즈의 제목 '애·정·기'는 '애매한 급여기준을 정리해주는 기사'란 뜻이다.


허리디스크로 고생하던 K씨는 수술이 부담스러워 두달 전부터 마취통증의학과의원에서 신경차단술 치료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다니던 의원 L원장으로부터 "치료가 다 됐으니 그만 내원하라"는 말을 들었다. K씨는 L원장에게 "허리에 아직도 통증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L원장은 K씨에게 "신경차단술 급여기준에 따르면 치료 기간당 최대 2개월까지만 보험이 적용된다"며 "K씨의 경우 2개월이 지났기 때문에 수술 등 다른 치료방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술이 여전히 부담스러운 K씨는 할 수 없이 근처 약국에서 파스를 구입해 집으로 향했다.

신경차단술은 통증을 일으키는 신경절이나 해당 신경에 국소마취제를 주입하는 시술로 국소마취제로 신경을 차단한 후 일정시간이 경과하면 신경은 가역적으로 원상태를 회복하게끔 한다.

신경차단술은 약물의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 통증의 소실을 관찰해 통증 유발 신경을 찾아내거나 스테로이드 약제 투입을 통해 (비영구적으로)통증을 제거해 진단과 치료 모두에 효과적인 방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행 신경차단술 급여기준에 따르면 상병에 따라 주 2~3회 인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최초 시술부터 15회까지는 소정 금액의 100%를, 15회 초과시 50%만 적용한다. 또한 장기간 연속적으로 실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일정기간 신경차단술 후 통증 조절이 되지 않을 경우 치료의 방향 등을 고려해야 하는 점 등을 감안해 급여 인정기간은 최대 2개월로 제한하고 있다.

이런 급여기준 때문에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환자들에게 신경차단술을 15회까지만 실시하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이 같은 신경차단술 급여기준이 환자의 적절한 진료를 방해하는 원인이 된다는 지적과 함께 급여기준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한마취통증의학과의사회 최봉춘 회장은 “똑같이 신경차단술을 시술하는데 15회가 넘는다는 이유로 급여가 반으로 줄어든다는 것은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기준”이라며 “심지어 일부 의료기관은 한 환자의 신경차단술 시술을 15회 마친 후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신경차단술이 15회가 넘을 경우 환자의 치료기회를 잃게 만드는 것은 물론 경증뿐 아니라 중증 환자도 있는만큼 다양한 환자 유형에 15회라는 일괄적인 급여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모 대학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신경차단술 급여기준을 환자의 경중에 따라 세분화시켜야 한다”며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 환자나 만성통증 환자에게는 15회보다 많은 횟수의 신경차단술을 실시해야 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2개월로 제한한 치료기간이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많다.

마취통증의학과의사회 최 회장은 “신경차단술 급여를 2개월로 제한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2개월이 지나면 다른 치료방향을 고려하라고 하는데 환자들에게 수술하라고 권유하면 다 수술하는 것도 아니다. 도대체 의사와 환자에게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동일병소에 2가지 이상의 신경차단술을 실시할 때의 급여기준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급여기준에 따르면 동일병소에 동시에 서로 다른 두 가지 이상의 신경차단술을 실시하는 경우 주된 신경차단술은 100% 급여를 인정하지만 제2의 신경차단술은 50%의 급여만 인정된다. 

한 재활의학과 전문의는 “동일병소에 두 가지의 신경차단술을 실시할 때 노력과 시간은 한 가지를 실시할 때의 2배가 소요된다”며 “그런데 이중 하나만 100%를 인정하고 나머지는 50%만 인정해준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이럴 경우 오히려 환자들이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그는 “동일병소에 두 가지의 신경차단술을 실시하면 의료기관은 총 150%의 급여를 인정받는다”며 “반면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급여를 더 받기 위해 환자에게 두 가지 시술을 같은 날에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날짜에 따로 한가지씩 실시하고 있다. 이는 불법이 아니라 편법일 뿐”이라고 털어놨다.

즉 한번에 시술할 수 있는 것을 보험급여 적용을 위해 다른 날에 따로 시술할 경우 각각 급여를 100% 인정받을 수 있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같은 날 한 번에 시술을 받는 것보다 진료접수비 등이 별도로 들어 오히려 환자 부담이 커진다는 것이다.

신경차단술 급여기준이 인구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높다.

최봉춘 회장은 “신경차단술 급여기준은 노인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고령화와 맞지 않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급여기준도 변해야 한다”며 “환자들의 의료비 증가를 막고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신경차단술의 급여기준 횟수와 기간 제한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신경차단술의 급여기준인 15회 시술과 2개월 제한의 근거를 묻는 질문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수가기준부 관계자는 “진찰료도 초진과 재진이 다르듯 연속된 (진료)행위의 급여액도 틀린 경우가 있다”며 “다만 왜 15회인지는 찾아봐야 한다”고 말해 정확한 급여기준 산정횟수를 설명하지 못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