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9일 대한신경과학회에는 한 통의 메일이 접수됐다. 모의료원 산하 D병원이 개원 이후 수련병원 인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산하 병원으로부터 파견된 전공의들에게 당직을 포함한 응급실 업무와 외래 잡무를 수행토록 했다는 내용이다.

민원을 접수한 학회와 보건복지부는 사실 확인을 위해 실태조사를 했다. 전공의들은 당시 학회에 발표할 논문 지도를 받기 위해 교수를 만나러 몇 차례 D병원을 방문했고 짐을 옮기거나 세팅을 도왔다는 것이 실태조사 결과였다. 전공의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회 이사장, 수련이사, 수련간사 등 관련 임원회의를 통해 내린 최종 결정이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에는 복지부의 실태조사 결과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학회와 복지부의 D병원에 대한 실태조사는 한 전공의가 제기한 민원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전공의가 민원을 제기한 이후 실태조사를 받아들이는 학회의 인식이 좀 씁쓸하다.

실태조사에 관여했던 학회 임원들은 한결같이 이러한 사안은 원래 학회 소관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의학회에 속한 26개 전문과목 학회들은 매년 수련병원을 대상으로 전공의 수련과 관련된 사항에 대한 조사를 벌인다. 학회 차원에서 수련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평가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여기에는 지도전문의 수 충족여부, 전공의 수, 교과과정상 요구된 취급환자수, 학술활동, 학회가 요구하는 시설 및 기재, 문제점, 활용방안 등 다양한 항목이 포함된다. 이것이 학회 차원의 전공의 수련실태 조사다. 비록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병원협회의 병원신임평가와 별도로 수련병원 실태를 파악하는 데 용이한 자료로 쓰인다. 

신경과학회의 한 임원은 "학회가 정기적인 수련실태조사를 하는 것 외에 병원을 쫓아다니면서 조사하는 건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임원은 "이번 건과 같은 민원 공식 창구는 학회가 아니라 병원신임위원회"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 '내 일이 아니고 번지 수가 틀렸다'는 얘기다. 정기적인 조사는 할 수 있지만 민원에 따른 불시 조사는 탐탁지 않다는 말로도 들린다. 일부 임원은 민원이 '무기명'으로 제기된 점에 대해서도 불쾌감을 드러냈다.  

민원인에게 조사결과가 통보됐는지를 묻는 질문에 "정식으로 누군지 밝혀야 통보를 하지 자신이 누군지 밝히지도 않았는데 일일이 답해야 하느냐"며 "떳떳하게 밝혔다면 공식적으로 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원을 제기한 이는 전공의다. 게다가 학회의 그 임원은 같은 의료원 산하 병원의 교수다. 전공의 신분과 제기된 민원의 정황상 신분노출을 꺼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내부고발자에게 냉혹한 의료계의 특성도 감안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공식 기구인 병원신임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신분을 밝히고 당당하게 민원을 제기하라는 지적에는 공감하기 어렵다. 차라리 침묵하라는 말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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