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명(가정의학과 전문의, 내가 만드는복지국가 의료팀장, ‘의료보험 절대로 들지마라’ 저자)

올해 대선은 안철수 후보의 사퇴로 박근혜와 문재인, 양자 구도로 좁혀졌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두 후보는 오차범위내로 팽팽한 접전 양상이다. 그런데 발표된 바는 없지만 의사들의 경우 박 후보에 대한 지지로 기울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의사의 이익에 박근혜 후보가 더 화답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 수도 있고, 이념적 성향이 비슷해서 지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좀더 냉철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양측에서 쏟아져 나오는 공약을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의사에게 유익한 후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정말로 여당후보가 의사에게 유리할까.

먼저 지난 과거를 살펴보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 우리는 이미 노무현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차례로 경험한바 있다. 5년 전 많은 의사들은 MB 정권의 탄생을 환영하였다. 그가 의료계에 달콤한 무언가의 당근을 약속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긋지긋한 '의료사회주의자' 노무현 정부보다는 훨씬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평균 수가인상률 참여정부 때 더 높아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의사들은 어떠한가. 행복했나. 의사들의 기대와는 달리 이명박 정부는 오히려 의료계에 당근보다는 채찍만을 들이댔다. 의사들이 강력히 반대한 원격진료, 리베이트의 불법화, 쌍벌제 시행, 응당법, 포괄수가제 강제실시 등이 그대로 추진되었다. 영리병원 허용, 비의료인의 건강관리서비스 제공 허용 등도 그의 핵심정책이었다.

의사들이 가장 가장 큰 불만인 의료수가 문제도 그렇다. 상대적으로 이명박 정부하에서 의료수가가 더 올랐을까? 놀랍게도 오히려 정반대였다. 수치로만 보면 노무현 정부 시절이 오히려 의사에게 더 나았던 시절이었다. 간단한 통계를 보자.

노무현 정부 5년동안 평균 수가인상률은 2.88%인데 반해 이명박 정부에서는 2.01% 였다.  물가인상률의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그렇다. 노무현 정부에서의 의료수가는 물가인상률의 75%정도로 인상된 반면, 이명박 정부하에서는 54%정도로 물가인상률의 절반 정도에 그쳤다.  

왜 그랬을까. 왜 기대와 달리 이명박 정부하에서 수가인상률이 낮고, 의료사회주의라고 그렇게 비판했던 노무현 정부때 오히려 의료수가가 높았을까.

건강보험 보장률 높아져야 수가인상도 높아져

이게 단지 우연의 일치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노무현 정부하에서 수가인상률이 더 높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적극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늘려 보장률을 확대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때는 건강보험 보장률도 8%포인트 넘게 오른 반면, MB정부때에는 변화가 없었다. 보장률을 확대하기 위해 그에 필요한 건강보험 재정을 늘리려는 노력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상대적이긴 하나, MB 정부보다는 의료수가인상에도 더 관대했던 점이다.

반면 MB 정부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보다는 재정안정화에 더 초점을 두었고, 다른 축으로는 의료민영화 정책을 시도하였다. 건강보험의 재정안정화를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보장성 확대를 최소화하는 반면, 건강보험 재정은 늘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보장성을 확대를 최소화 하다보니 건강보험료 인상을 통해 재정을 늘릴 명분도 약했을 뿐 아니라 재정이 부족하다보니 의료수가인상에도 인색할 수밖에 없었다.

의료민영화는 의사 지위에 악영향 끼쳐

다른 한편 노무현 정부나 MB정부는 모두 의료민영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물론 차이는 있었는데, 노무현 정부때는 조심스럽게 진행된 측면이 있지만, MB정부에서는 공격적으로 추진되었다는 것이 다르다.

의료민영화는 의사의 지위와 역할, 그리고 진료의 자율성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친다. 의료민영화의 주요 핵심과제는 영리병원과 건강관리서비스의 도입, 그리고 민영의료보험의 역할 확대 등이다.

영리병원이라는 게 무엇인가. 간단히 설명하면 자본을 가진 자가 병원을 세우고, 의사를 고용하여 영리를 취할 수 있는 것을 합법화하여 권장하자는 거다. 비의료인 사무장 병원 합법화에 다름아니다. 누가 의사를 더 잘 착취하여 돈을 잘 버나 경쟁하는 것을 미덕으로 권장하는 정책다. 건강관리서비스회사를 만들어 건강증진서비스를 민간에서 제공하도록 하는 정책도 그렇다. 의사는 질병만 치료하고, 예방 건강증진 영역은 비의료인과 자본가에 맡겨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의사의 진료영역을 줄이겠다는 거다.

지금 실손의료보험 가입자가 3천만명에 이르는 등 급격히 늘고 있어 민영의료보험의 파워도 점차 강해지고 있다. 그 힘으로 의료공급자에 대한 통제 의지가 강하다. 국민건강보험은 의사들의 과다진료에 대해 보통 삭감과 환수조치로 대처하지만, 영리보험사는 그것을 보험사기로 엮어 의사에게 법적 응징과 배상을 청구한다. 한 자동차보험사 직원이 의사를 무릎 꿇리게 하고 빌게 한 얘기가 유명하지 않나. 의사의 진료의 자율성은 사실 공적 보험보다 영리보험이 더 크게 훼손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박근혜와 문재인 후보, 누가 의사에게 유리할까

이제 지난 정부의 경험과 평가를 토대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정책을 간단히 살펴보자.

먼저 지금 양후보의 공약은 공식적인 공약인지, 비공식적인 공약인지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공약이 후보자나 당차원에서 공식적인 방식으로 발표된 공약인지, 각 캠프에 참여한 의료계 인사의 토론회용 주장인지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박근혜 후보의 공약은 문재인 후보에 비해 빈약하기 그지 없다. 문재인후보는 직접 보건의료공약을 발표한바 있지만, 박근혜 후보는 발표하지 않았다. 새누리당이 공식적으로 제시한 공약은 4대 중증질환에 대한 100% 국가책임과 임플란트까지 보험적용을 하겠다는 것뿐이다.

그 외에 후보가 발언한 보건의료 관련해서는 영리병원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거나, 이명박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에 대해 기본적으로 찬성한다는 발언이 전부다. 이것은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 정부의 건강보험 정책과 의료민영화 정책의 기본노선을 유지해가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물론 박근혜 선본에서 보건의료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박인숙 의원은 각종 토론회에서 좀더 구체적이고 다양한 정책들을 언급한 바 있다. 예로, 건강보험보장성을 80%로 늘린다거나, 비급여의 점진적 급여화, 포괄수가제·총액계약제에 대한 반대, 수가인상 등이 그렇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당과 후보자의 공식입장이 아닌 캠프 정책담당자의 개인의견으로 보는 것이 옳다.

반면 문재인후보의 경우 좀더 구체적이고, 후보자가 직접 보건의료 공약을 발표하였다.  의료수가에 대해서는 문재인 후보는 후보자가 직접 "병의원에 대해서는 과잉진료와 비보험 진료에 의존하지 않아도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적정한 보험수가를 보장" 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건강보험 재정을 확충하여 보장률을 높이겠다는 의지가 상당히 강하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의료수가 문제는 건강보험의 보장성확대와 재원확충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풀리지 않는다.

선거철 공약보다는 의료에 대한 기본 인식이 중요해

물론 좀 시니컬하게 본다면 선거철 후보자와 당이 제시한 공약이 공식적인가 비공식적인가를 따져물으며 거기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mb의 유명한 어록이 있지 않나. '표가 된다면야 선거 때 무슨 얘기를 못하나'. 그래서 공약을 공약 문구 자체로 해석하기보다는 양측 후보자와 당의 보건의료에 대한 근본적 인식이 어떠한지가 중요할 것이다.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 정부의 의료정책의 기본틀을 그대로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건강보험의 재정을 확충하기보다는 지금의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그대로 유지해 나갈 것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가 완성하지 못한 원격의료, 건강관리서비스 허용, 영리병원 추진, 민영의료보험 역할 확대 등의 의료민영화 정책도 그대로 이어갈 것이다. 그럴 경우, 의료계와의  갈등구조는 그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사실상 MB정부와 크게 달라질 가능성은 적다.

그렇다고 해서 문재인 후보가 우리 의사의 이해를 그대로 받아주고 대변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느 나라도 국민이 아닌 의사를 위해 의료정책을 구사하는 경우는 없다. 만일 새 정부가 적정한 의료수가를 보장해준다고 한다면, 그것이 의사를 위한 정책이 아닌 국민을 위한 정책이 될 수 있을때 가능하다. 즉,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과 보장성 확대라는 국민을 위한 정책을 동반할 때 의사에게는 적정한 의료수가를 보장해 줄 것이다.

결론적으로 양 후보의 공식적 공약뿐 아니라,  후보자와 당이 보건의료에 대한 기본 인식이 무엇인지, 그것이 의사의 지위와 역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신중히 판단하여 선택할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때 필자는 문재인 후보가 상대적으로 의료수가의 문제나 의사의 지위와 역할을 유지하는데  좀 더 낫다고 본다.<*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외부 필진의 글에 대한 다른 생각이나 의견을 보내주시면 적극 반영토록 하겠습니다(bus19@rapportian.com). 혹은 기사 본문 하단의 '독자 첨부뉴스'를 통해 반론이나 의견을 게재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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