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통령 선거가 2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26일 후보 등록 절차가 완료되면서 각 후보들마다 본격적인 선거 운동에 뛰어들었다. 공약 경쟁도 뜨겁다. 보건의료 관련 정책 공약도 쏟아진다. 발표된 공약대로라면 국민 누구나 비용 부담 없이 질병을 치료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장밋빛 공약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OECD 국가 평균 수준인 80%대로 끌어 올리겠다던가 연간 진료비 본인부담 100만원 상한제, 선택진료비·상급병실료 등을 급여로 전환하고 암·심장병·난치병 등의 중증질환 치료비는 전액 국가부담으로 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소요되는 재원을 어떤 식으로 마련할 것인지 그 방법은 두루뭉술하다. 정부의 국고지원을 확대하겠다, 보험료 부과체계를 개편하겠다는 식이다. 어떤 후보는 아예 재원 조달 방법에 대한 언급조차 없다. 그래서 장밋빛 공약이다.

여기서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것은 실현 가능성에 관한 게 아니다. 보장성 강화의 내용적인 측면에 관한 것이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보장성 항목을 추가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적용되는 건강보험 혜택이 제대로 된 보장성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건강보험 요양급여기준이 모호하거나 임상현장의 현실과 맞지 않아 과연 누구를 위한 보험 혜택인지 이해할 수 없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를 들어보면 이런 거다. 백혈병 환자가 있다. 이 환자는 오랜 투병생활 탓에 면역력이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 칸디다혈증이란 감염질환이 생겨 항진균제를 투여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의 담당 의사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현행 건강보험 급여기준에 따르면 이 환자에게는 칸디다혈증의 1차 치료제인 암포테리신(Amphotericin B deoxycholate)이란 약제를 주사해야 한다. 그러나 이 환자는 오랜 투병생활로 체력이 떨어졌고 다른 항생제 및 항바이러스제까지 맞고 있는 상태다. 이런 환자에게 부작용이 심하고 독성이 강한 암포테리신을 처방하기엔 너무 무리라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부작용이 적은 2차 치료제인 아니둘라펀진(Anidulafungin)이란 약제를 투여하고 싶지만 급여기준에 걸린다. 현행 급여기준대로라면 이 환자에게 우선 암포테리신을 7일간 투여해 반응이 없거나, 투여 후 신기능이 악화되거나 투여 전 신기능이 이미 나빠진 상태일 때만 2차 치료제를 투여하는 것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급여기준을 무시하고 이 환자에게 2차 치료제를 곧바로 투여하면 급여가 인정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환자가 보험 혜택 없이 본인부담을 할 수도 없다. 그럴 경우 임의비급여로 불법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환자의 몸 상태를 감안하지 않고 부작용이 우려되는 치료제를 투여하거나 병증이 더욱 악화되기를 기다렸다가 부작용이 덜한 2차 치료제를 투여하는 수밖에 없다. 의사로서 고뇌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도 있다. 동일한 항암제인데 신장암 환자가 처방을 받으면 본인부담율이 5%에 불과하지만 간암 환자는 그 10배에 달하는 50%를 본인부담으로 지불해야 한다. 이 항암제는 신장암뿐 아니라 간암에도 치료 효과가 높다는 점이 이미 입증된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보험 혜택에 차이가 나는 것일까. 신장암과 달리 간암은 환자수가 훨씬 많기 때문에 동일한 건강보험 혜택을 줄 경우 보험재정에 부담이 커기 때문이다.

또 하나 예를 들어보자. 얼굴 부위에 화상을 입은 환자는 당연히 재건수술을 받기를 원한다. 화상으로 흉측해 진 얼굴로는 생활 자체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건수술 비용이 엄청나다. 수 천 만원에 달할 정도다. 안면부위 화상환자의 재건수술에 급여 혜택을 줘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자 보건복지부는 지난 2009년 1월부터 최초 1회 안면화상 수술에 한해 급여를 인정토록 했다. 그 덕분에 안면부위 화상환자들이 20%의 본인부담금을 내고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안면부위 화상 재건수술이란게 단 한 번의 수술로는 역부족이다. 화상 부위가 넓은 경우 눈, 코, 입 등 부위별로 나눠 수차례에 걸쳐 재건수술을 해야 한다. 지금은 1회의 재건수술만 급여 혜택을 받고 나머지 수술은 엄청난 비용부담을 져야한다. 비용부담을 질 수 없는 환자들에겐 오히려 더 극심한 좌절감만 안겨 줄 뿐이다. 

이런 식의 건강보험 급여기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수도 없이 많다. 이 때문에 환자들뿐만 아니라 의사들 역시 고민이 깊다. 급여기준을 이해하지 못하는 환자들로부터 항의와 원망을 듣는 건 의사들 몫이다. 환자를 위해 임의비급여라는 불법 행위도 마다하지 의사도 있다. 나중에 문제가 불거지면 그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환자와 급여기준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당연히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는 필요하다. 다만 그에 앞서 현재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항목부터 제대로 보장해야 한다. 건강보험 재정만을 고려해 보여주기 식, 혹은 '우는 아기 달래기' 식의 급여 혜택은 오히려 임상현장에서 의사와 환자를 혼란스럽게 하고 갈등과 불만만 키운다. 이왕 급여 혜택을 주기로 했으면 환자가 적절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제대로 된 급여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환자가 급여기준에 맞춰 아플 수도 없고, 의사가 환자를 제쳐놓고 급여기준만 따져 치료를 할 수도 없지 않나.

이번 대선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가 주요 이슈로 부각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단, 그 내용에 있어서 좀 더 세밀하게 파고들었으면 한다. 임상현장의 고충을 헤아리고, 당장 환자들이 원하는 보장성 확대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현실적인 보장성 강화 공약을 제시하길 바란다. 또한 건강보험의 적정 보장을 위해서는 보험료 인상을 통한 가입자의 적정 부담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도 숨기지 말기를.<*라포르시안에서 연중 기획시리즈로 보도하는 '애.정.기(애매한 급여기준을 정리해 주는 기사)' 기사를 참고하면 불합리한, 혹은 개선돼야 할 건강보험 요양급여기준의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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