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저서 ‘국가’에는 소크라테스와 칼케돈 출신의 소피스트인 트라시마코스 사이에 오간 흥미로운 대화가 담겨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놓고 전개된 소크라테스와 트라시마코스 간의 대화를 엿들어보면 대강 이렇다. 

트라시마코스 :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다. 지배계급에 속한 사람들이 법률을 만들 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법률을 제정한다. 이를 위반하면 정의에 어긋난 범죄자로서 처벌을 한다.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정의이고 이는 곧 강자의 이익을 말한다.소크라테스 : 법률을 만들 때 통치자들은 과오를 저지르기도 한다. 법을 따르는 게 정의라고 한다면 정의란 강자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반대의 경우에도 해당된다.트라시마코스 : 의사가 실수할 수는 있어도 실수하는 사람을 의사라고 부르진 않는다. 그러니 전문가는 절대 실수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통치자도 마찬가지. 통치자는 실수하지 않는다.소크라테스 : 의사가 의사로 불리고 선장이 선장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은 의술이나 통솔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의술과 기술이야말로 환자나 선원들에게 어떤 이익을 주는 힘이라고 봐야 하지 않나. 그렇다면 의사가 의사인 한, 자신의 이익을 생각해 지시를 내리는 게 아니라 환자의 이익을 생각하며 지시를 내리는 것이다. 선장도 마찬가지이다. 전문기술은 기술이 적용되는 대상에 이익을 줌으로써 그 기술을 구사하는 전문가에게 보수라는 이익을 부과한다. 통치자 역시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거나 지시하지 않고, 통치를 받는 쪽의 이익을 위해서도 생각하거나 지시한다. 

풋내기 소피스트를 상대로 노련한 소크라테스가 주장한 요지는 ‘정의란 강한 자의 편익을 위해 행하는 것이 아니라, 약한 자 또는 다스림을 받는 자들의 편익을 위하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의사의 역할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의료란 본디 공익적인 것이고, 의사는 의술을 통해 환자에게 이익을 줌으로써 올바름을 수행한다는 말은 결코 틀리지 않다. 

대한의사협회가 지난 19일부터 근무시간을 주 40시간으로 줄이고 토요일 휴진을 골자로 한 대정부 투쟁에 들어갔다. 의협은 대정부 투쟁의 목표로 ‘관치의료 타파와 의료민주화’를 들었다. 특히 “모든 의사들이 정당한 자신의 권리에 대해 명확히 자각하고, 왜 나의 권리가 침해되었는지, 무엇이 정의로운 것인지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이번 투쟁은 가치가 있다. 올바른 의료가 항구적으로 정착해야 국민도, 의사도 행복해진다”고 천명했다. 

의협은 ‘의사의 행복’과 ‘국민의 행복’을 등가관계의 가치로 여긴다. 앞서부터 의료계는 의사의 진료권과 국민의 건강권을 동일한 가치로 주장해 왔다. 이 주장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분명치 않다. 소크라테스의 주장처럼 의사가 의술을 통해 환자에게 이익을 준다는 명제가 참이어야 한다. 그의 삼단논법 식으로 한다면 ‘의사는 모두 정의롭다. 의협은 의사들의 집단이다. 따라서 의협은 정의롭다’는 논리적 사유가 가능하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대전제인 ‘의사는 모두 정의롭다’가 충족되지 않는다. 정의롭지 못한 의사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의료계가 정부를 상대로 의료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불합리한 의료시스템의 개선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일 때마다 사회의 여론은 늘 부정적이었다. 의사들의 ‘집단 이기주의’로 치부되는 게 일반적이다. 일부 정의롭지 못한 의사들 때문에 의사집단 전체가 ‘도매금’으로 여론의 돌팔매를 맞는다. 

의협의 이번 대정부 투쟁 역시 여론의 우호적인 반응을 얻기는 힘들어 보인다. 동네의원의 진료 시간이 줄어들고 토요일 휴진이 확산되면 ‘의료계가 환자들을 볼모로 내세워 정부를 상대로 한 투쟁을 벌인다’는 비난여론이 비등해질 것이다. 이미 일부 시민단체는 의협의 대정부 투쟁을 ‘국민의 건강권을 볼모로 한 진료거부 행위’로 규정하고 의사의 이익과 기득권을 위한 집단행동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아마 의협도 예상했을 것이다. 단 한 번도 여론의 우호적인 지지를 받아본 적 없기 때문에.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한 투쟁은 성공하기 힘들다. 설령 복지부를 압박해 소기의 성과를 내더라도 궁극적으로 의료계가 바라는 올바른 의료제도의 확립은 이루지 못할 것이다.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의사의 행복이 국민의 행복이 될 수도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의사의 행복과 국민의 건강권이 서로 상충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의협이 앞서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자정선언 운동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점은 상당히 안타깝다. 의료계 내부의 잘못을 고백하고. 스스로 자정하는 모습을 보여 국민들을 설득하고 내 편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의지가 어느 순간 자치를 감췄다. 내부로부터의 개혁을 통해 외부의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의지는 어디로 사라졌나. 대정부 투쟁 로드맵은 공개했고 이미 추진에 들어갔다. 자, 이제는 자정선언 운동의 로드맵을 공개하고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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