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극장 / 고명섭 지음 / 김영사 펴냄

‘꼬리를 무는 책읽기’에 관한 이야기를 몇 차례 드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읽고 있는 책에서 저자의 강력한 추천에 이끌려 책을 읽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 소개드리는 <니체극장> 역시 이런 사례에 해당되면서도 조금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지난 해 ‘현대의학과 다시 만남을 모색하는 철학’이라는 제목으로 김선희 교수님의 <철학자가 눈물을 흘릴 때>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철학한다는 것이 바로 사유를 통하여 물음을 던지는 일이자 던져진 물음에 답을 구하는 일’이며, 철학적 탐구의 목적은 지식과 진리, 현실, 이성, 의미, 가치에 대한 통찰을 얻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철학이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실질적인 삶의 문제와는 거리가 있다싶은 형이상학적 문제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경도되어 온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결국 철학이 일반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 전공하시는 분들만의 영역에서 고립된 학문으로 자리하게 되고, 대중에게는 ‘철학은 어려워’라는 선입관이 자연스럽게 남겨진 것 같습니다.

그레일링은 “의학기술이 계속 발전하면서 생명윤리학의 주제가 철학과 의학, 법학, 사회학, 공공정책, 교육 및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갈수록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의학영역에서 철학적 사유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처럼 철학영역에서 역시 마음의 철학 혹은 신경철학과 같이 인간의 심리 혹은 인간의 사고체계에 대하여 사유하는 사조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삶에 대한 고민해결을 위한 철학적 실천방안을 구체화하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합니다.

치료자로서의 철학자의 역할을 자리매김하기 위한 방법을 구하는 과정에서 쇼펜하우어와 니체에 주목하게 되었다는 김선희교수님의 설명을 마음 한 구석에 갈무리해두었던 모양입니다. 그 사이에도 스탠리 큐브릭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오프닝에 장엄미를 더해 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들으면서 역시 니체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고명섭기자님의 <니체극장>을 만나게 된 인연이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제목에 대하여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니체의 철학 작품들은 하나의 독특한 공간을 구성한다. 그 공간은 극장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공간이다. 니체의 예외적인 삶이 떠받치고 그의 특별한 문체가 만들어내는 한없이 낯선 분위기의 공간, 그 극장의 무대에서 니체는 모놀로그를 한다.(23쪽)” 이런 저자의 설명을 읽으면서 KBS에서 방영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인간극장>이 떠오릅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보통사람들의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삶을 있는 그대로 영상으로 담아내기 때문에 쉽게 공감하게 되는 프로그램입니다.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라는 것이 바로 각자가 주인공으로 연기하는 한편의 드라마인 셈이라면 니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를 공연하는 극장이 바로 <니체극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책읽기는 작가의 단편적인 생각을 읽는데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요즈음 유행하는 저자와의 대화라거나 작품에 대한 저자의 생각들을 담은 다양한 매개체를 통하여 작품에 대하여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고명섭 기자님의 <니체극장>이야 말로 1844년 10월 15일 태어난 프리드리히 니체의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를 뒤쫓는 한편 그가 발표한 작품에 담겨있는 그의 정신을 분석해서 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작가는 니체의 작품과 니체가 가족 친지들과 주고받은 편지 등을 바탕으로 니체의 삶과 정신을 재구성하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니체극장>에 담아낸 그의 삶을 정리해보면 니체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은 기독교와 쇼펜하우어와 바그너였던 것 같습니다. 선조 대대로 루터파 신도였던 집안에서 목사가 된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소년시절 니체는 ‘꼬마 목사’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깊은 신앙심은 열 네 살이 되던 해에 자신의 삶을 기록한 첫 번째 글 <나의 삶>에 담겨있다고 합니다. “나는 이미 너무나 많은 것을 경험했다. 기쁨과 슬픔, 즐거운 일과 슬픈 일들을, 하지만 이 모든 것 속에서 신은 아버지가 자신의 약하고 어린 아들을 인도하듯이 안전하게 나를 이끌어 주셨다. 나는 내 마음속에서 영원히 그분의 종이 되겠다고 확고하게 결심했다.(45쪽)”

하지만 이 약속은 청소년기가 끝나기도 전에 깨어질 뿐만 아니라 종국에는 차라투스트라의 목소리를 빌어 신이 죽었다고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지난 날에는 신에 대한 불경이 가장 큰 불경이었다. 그러나 신은 죽었고 그와 더불어 신에게 불경을 저지른 자들도 모두 죽어갔다.(366쪽)” 심지어는 인간이 신의 작품이 아니라 신이 인간의 작품이라고 단언하고 “저편의 또 다른 세계를 꾸며낸 것은 고통과 무능력, 그리고 더없이 극심하게 고통스러워하는 자만이 경험하는 그 덧없는 행복의 망상이었다.(368쪽)”고 그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저편의 또 다른 세계는 사제의 주도에 따라 각자가 만들어내는 허상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두 번째는 쇼펜하우어였는데 니체는 본대학을 거쳐 라이프치히대학에서 고전문헌학을 전공하게 되는데, 라이프치히의 고서점에서 우연히 마주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를 읽고 빠져들게 되었는데, 당시 독일에서는 쇼펜하우어가 문화적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이 무렵 외롭게 방황하고 있던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세계인식, 즉 염세주의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삶이란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며, 이런 사태를 깨닫는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부정’이다. 곧 그는 ‘의지를 부정하며’,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 오직 삶에서 해방되기만을 기다리는 수행자나 성자가 된다.(69쪽)”고 요약하는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철학을 사상적 지주로 삼았던 니체는 10년이 지난 다음에는 이를 벗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리하르트 바그너였습니다. 1868년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트리스탄과 이졸데>,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 등을 들으면서 격한 감동을 느꼈는데, 특히 쇼펜하우어에 대한 두 사람의 경외심이 서로를 이끌리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삶이 치유를 필요로 할 때 예술과 철학의 역할을 논한 쇼펜하우어를 두고 바그너는 음악의 본질을 이해하는 철학자라고 평했던 것에 니체가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니체와 바그너의 이런 긴밀한 관계도 결국에는 끝이 나고 말았는데, 평생을 독신으로 외롭게 지낸 니체의 독특한 개인적 취향이 두루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니체는 자신의 사유세계에 크게 영향을 미쳤던 세 가지 요소 모두를 뛰어넘으면서 독자세계를 구축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틀을 뛰어넘는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고도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바그너와의 만남이 있고나서 니체는 바젤대학에서 문헌학자로서 입지마련을 시작하게 되는데, 첫 번째 작품 <비극의 탄생>은 그의 전공이라고 할 고전문헌학적 탐구의 범주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의 핵심내용은 쇼펜하우어 철학의 세계관에 입각해 그리스 비극의 본질을 해명하고, 이어 바그너예술을 그리스 비국의 부활로 해석하고 찬양하는 것으로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고 합니다. 어쩌면 자신이 숭배하는 쇼펜하우어와 바그너를 위한 헌사를 쓰다 보니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요?

니체는 ‘모순의 철학자’, 2000년 서양철학사 중 ‘가장 위험한 철학자’로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그것은 니체가 새로운 인식을 깨닫기 위하여 치열하게 사유한 결과를 공격적으로 쏟아냈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었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모 대선후보가 인용해서 기억에 남는 다음 구절은 니체의 <즐거운 학문>에서 볼 수 있는데, 이 글에서 니체의 사유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지를 떠나 출항했다! 우리는 건너온 다리를 태워버렸다. 게다가 우리는 뒤에 남아있는 대지까지도 불살라버렸다! 자, 작은 배여, 조심하라. 대양이 너를 도처에서 둘러싸고 있다.(302쪽)”

저자가 <니체극장>을 통하여 정리하고 있는 방대한 니체의 저술에 대한 해설을 짧게 요약하는 일은 저의 일천한 인문학적 책읽기로는 결코 가능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한 가지만 인용하려 합니다. 바로 귀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 비판입니다. 귀족주의 옹호자라는 시각에서 니체는 플라톤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하겠습니다. 니체는 자신의 조상이 폴란드의 귀족이었다고 했다는데 근거가 분명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저자는 “(니체는 다수의 저술을 통하여) 기독교에 반대하고, 민족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여성해방, 심지어는 휴머니즘과 같은 모든 근대적 이념을 부정하였다.(564쪽)”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인간의 가장 커다란 위험은 병자다. 악인이나 ‘맹수’가 아니다. 처음부터 실패한 자, 유린당한 자, 좌절한 자, 가장 약한 자들인 이 사람들은 인간 삶의 토대를 허물어버리고 삶과 인간과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의심 속으로 몰아넣고 그 신뢰에 아주 위험하게 독을 타는 자들이다.(627쪽)”라는 <도덕의 계보> 제3논문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니체의 이런 주장은 자유민주주의의 시각으로 보면 당연히 위험한 사상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만, 자유, 평등, 복지, 약자에 대한 보호와 사회적 정의를 기반으로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는 민주국가의 행태가 현대에 들어 더욱 치열해진 국가간 글로벌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도태되는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저자가 보충자료로 인용한 박찬국의 주장을 일부 인용합니다. “국가가 개인의 노후 생활을 비롯해, 질병, 실업 등 인간다운 삶에 책임지는 경향의 주요한 동기도 니체는 그것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인도주의에서 찾지 않고 국가가 모든 것을 해주기를 바라는 허약한 인간들의 의존 성향에서 찾을 것이다.(588쪽)”

앞서 인용한 <철학자가 눈물을 흘릴 때>에서 김선희 교수님은 치유의 방법으로서의 철학을 논하면서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공히 인간의 고통을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고 해답을 찾고자 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특히 니체의 경우 <우상의 황혼>으로부터, 인간이 창조한 우상을 신봉함으로써 스스로를 경멸하게 되므로 우리의 삶에서 우상의 흔적을 지워내야 할 것이며, 그로써 인간 내부에 있는 자기 치유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데, 여기에는 자기긍정이라는 접근법이 효율적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니체극장>을 통해서 만난 니체가 절망으로 나락에 떨어진 인간을 위하여 긍정적인 조언을 주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경향은 니체가 역사상 그 어떤 철학자보다 넓은 사상의 스펙트럼를 가지고 있고, 그의 저서는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극단적일 정도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결국은 그의 작품을 직접 읽고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니체가 남긴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구축한 그의 삶과 사상의 줄기를 정리한 <니체극장>이야말로 니체의 정신세계에 들어가는 안내서로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알림> 『'양기화의 Book소리' 소셜댓글 이벤트를 당분간 중단토록 하겠습니다. 내부적인 검토를 거쳐 더 많은 독자분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해 빠른 시일 내에 도서증정 이벤트를 재개토록 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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