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병원에서 전공의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우리나라의 수련교육 체계는 이 뻔한 질문에 지난 수 십 년간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이자 피교육자 신분이란 모호한 답을 늘어놓게 만든다.

전공의는 '수련병원이나 수련기관에서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수련을 받는 인턴 및 레지던트를 지칭한다. 하지만 그들은 수련병원의 값싼 의사인력이란 정체성이 더 강하다. 전문의 인건비의 1/3 또는 1/4 수준의 싼 비용으로 부릴 수 있는 전공의는 수련병원 입장에서 너무나 매력적인 인력시장이다. 해마다 신규로 쏟아지는 전공의 인력은 4천 여 명에 달한다. 이들이 전국 수련병원 및 단일 수련기관 267개(2012년 기준)에 1만6천 여 명이 소속돼 있다. 전국적으로 활동 의사 수가 8만 명을 조금 넘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전체의 약 20%가 전공의인 셈이다.     

전공의 직역이 전체 활동 의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이렇게 높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전공의란 신분이 5년간의 수련기간만 지나면 사라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잘못된 수련교육 환경에 있다.

최근 춘천성심병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들여다보면 국내 수련교육 시스템의 문제와 수련병원의 탐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춘천성심병원은 최근 수년간 일부 진료과에서 지도전문의 수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전공의 정원을 확보했다고 한다. 실제로 근무하지 않는 지도전문의 수를 서류상으로만 기재하는 식으로 전공의 정원을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병원신임위원회의 수련병원 신임평가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수련병원이 허위로 보고한 신임평가 자료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허술한 관리감독은 말할 나위 없다. 이런 식으로 전공의 정원을 확보한 곳이 춘천성심병원 뿐만은 아닌 것 같다. 본지가 확인한 바로는 서울과 부산 등 유명 대학병원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도전문의가 부족한 수련병원에서 전공의 수련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

전공의들의 부실한 파견수련도 비일비재하다. 수련병원 자격을 갖추지 않은 병원으로의 전공의 불법파견과 자병원의 부실한 파견교육 시스템 문제는 끊이지 않고 제기되고 있다. 파견수련을 나간 전공의들은 빡빡한 당직근무 등 살인적인 근무시간으로 인해 수련은커녕 그나마 스스로 공부할 시간조차 없이 과잉노동과 열악한 환경 속에 방치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련병원 지정 취소를 받은 기관은 손에 꼽을 정도다.

부실한 수련교육의 이면에는 수련병원의 탐욕이 도사리고 있다. 국내 대형병원들이 브랜치 병원을 늘리는 과정에서 전공의 인력은 가장 유용한 수단으로 이용됐다. 90년대 후반부터 적극적으로 병상 확충에 나선 국내 빅5 병원에 전체 전공의 인력의 약 1/4이 근무하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일지 모른다. 그 과정에서 병원협회 산하 병원신임위원회는 수련병원 지정을 남발하고 대형병원들의 전공의 수요에 맞춰 정원을 확대해 왔다. 그 결과, 의사국시 합격자보다 인턴 정원이 더 많고, 인턴 수료자보다 레지던트 정원이 더 많은 기형적인 인력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수련병원의 탐욕은 참 집요하다. 요즘은 펠로우(fellow)란 이름의 임상강사 인력도 늘고 있다. 전공의 수련기간을 거쳐 전문의 자격을 따고 대학병원에 임상강사란 지위로 남아 있는 이들이다. 본래 전문의 자격을 따고 세부적인 전공 분야에서 더욱 숙련된 경력을 쌓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펠노예’로도 불리는 이들은 무급, 혹은 낮은 월급을 받으며 외래진료부터 입원환잔 진료, 학생과 레지던트 교육, 진료과 업무, 그리고 기타 잡일까지 모두 해야 한다. 정작 중요한 연구나 논문작성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

펠로우를 전공의 수련의 연장선상에서 하는 젊은 의사가 늘고 있다고 한다. 전공의 수련교육 과정에서 제대로 된 술기교육을 받지 못한 까닭에 펠로우 과정을 통해 술기를 배우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수련병원 중에는 이를 악용해 전공의 때 제대로 된 술기교육을 가르치지 않고 펠로우 과정에서 이를 교육하는 곳도 있다니 믿기 어려운 현실이다. 수련병원의 탐욕이 빚어낸 결과다.

부실한 수련교육 시스템의 문제를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할지 막막할 지경이다. 수련병원들은 저수가 체계를 원인으로 돌린다. 그나마 병원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전공의들의 값싼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전공의 수련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허튼 말은 아니다. 대한의학회는 지난해 8월 발간한 ‘전문의 제도 개선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전공의 근로시간을 96시간에서 80시간으로 단축하기 위해 병원 당 13.4명의 추가 인력 고용이 필요하며, 이때 필요한 재원은 병원 당 4억7,000만원으로 추산했다. 이중 전공의 수련교육 원가만 보조한다 해도 병원 당 2억700만원이 필요하고 수련병원 전체로는 492억원의 재정이 필요한 것으로 나왔다. 

우리나라는 현재 전공의 수련교육에 필요한 재원을 수련병원이 거의 100%(비인기과 전공의에게 수련 보조수당을 일부 지급) 충당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감할 만할 주장이다. 의료 서비스는 공공재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만큼 정부가 양질의 의료인력 양성에 일정부분 재정을 부담하는 것이 필요하다. 외국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미국은 의료보험재정과 국고에서 전액을 부담하고, 일본은 의대 졸업 후 2년간의 임상 수련과정레지던트 교육 과정을 100% 국가의 일반 회계에서 부담한다.

우리도 그렇게 하자. 그 대신 전공의를 둘 수 있는 수련병원의 요건을 강화하고 수련교육 평가를 엄정하게 수행해 부실 수련병원을 퇴출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병원신임평가 업무를 수련병원과 이해를 함께하는 병원협회에서 떼어내고 독립된 수련평가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또 그 전에 병원들이 적정 의료인력을 고용해 운영될 수 있도록 적정 수가 구조를 만들어 줘야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한숨이 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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