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의료계와 정부는 건강보험 요양급여기준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해왔다. 의료계는 급여기준의 형평성과 실효성을 주장한 반면 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전제로 일관성 없는 고시 개정을 남발해왔다. 이런 가운데 의료계는 물론 환자들도 불합리한 급여기준으로 인한 피해를 적지 않게 봤다. 이에 <라포르시안>은 의사와 환자 간 라뽀를 해칠 수 있는 급여기준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관련 학회와 정부의 대안을 듣는 코너를 마련했다. 이 시리즈의 제목 '애·정·기'는 '애매한 급여기준을 정리해주는 기사'란 뜻이다.


▲ 지난 9월5일 환자단체연합회의 샤우팅카페에서 유방절제술로 인한 고통을 토로 중인 제정자 씨. <사진 출처 : 환자샤우팅카페 홈페이지>

# 지난 2010년 결혼 3년만에 유방암 판정을 받은 제정자 씨(51). 제 씨는 결국 왼쪽 가슴을 전체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직후 제 씨는 여자로서의 상실감 때문에 우울증이 심해졌다. 그토록 좋아하는 찜질방과 목욕탕을 못간지도 2년 6개월째다. 거울을 보면 자신의 모습이 너무 낯설다.

회복시기에 들어갔을 때 의사는 제 씨에게 실리콘 인조브라를 권유했다. 인조브라를 착용하고 있노라면 가슴이 온통 땀에 젖었다. 땀띠도 생겼다. 집에 있을 때는 거의 착용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언젠가 약속이 있어 외출을 했다가 문든 인조브라를 착용하지 않고 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루 종일 가슴에 신경을 집중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 너무나 처절했다.

#. 지난 1997년 유방암 수술로 오른쪽 가슴을 잃은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이준희 회장(61). 수술 1년 후 이 회장은 아무 생각없이 목욕탕을 가게 됐다. 절제 수술을 받은 오른쪽 가슴을 타올로 가리고 들어가는데 다섯살짜리 꼬마아이가 다가왔다. 그런데 자신을 쳐다보던 아이의 동공이 커지면서 입이 삐죽거리더니 급기가 울음을 터뜨렸다. 이 회장이 아이를 달래는데 아이의 엄마가 달려와 우는 이유를 묻자 이 회장의 가슴을 가리켰다. 이 회장은 아직도 그 아이의 엄마가 자신을 쳐다보던 눈빛을 잊지 못하고 있다.

위에 소개된 사연은 지난 9월 5일 열린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의 제2회 Shouting(샤우팅) 카페에서 유방암으로 유방절제술을 받은 환자들의 실제 하소연이다.

유방절제술은 받은 환자들의 소원은 유방재건술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고가의 수술비용 때문에 유방재건술을 포기한 채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인조유방으로 대신하고 있다.

유방암으로 유방을 절제한 환자들에게 유방재건은 미용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장애를 치료하는 목적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건강보험에서는 미용목적으로 규정짓고 있다. 보험급여가 인정되는 유방 전체절제술의 상급종합병원 평균 수술비용이 평균 300만원대인 데 비해 비급여인 유방재건술은 1,500~2,000만원의 비용이 든다.

심지어 유방재건술에 10%의 부가세도 부과돼 유방암 환자들의 재정적·심리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비용적인 부담 때문에 유방재건술을 포기하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대한유방암학회지(Journal of Breast Cancer)에 수록된 논문에 따르면 지난 2004년 학회 기준으로 유방 절제술을 받는 환자수는 연간 5,000여명에 달하지만 유방 절제술 이후 재건술을 받는 환자는 전체의 16.4%에 불과하다. 유방절제술 환자 열명 중 여덟명이 유방재건술을 포기하고 있는 셈이다.

유방절제술을 받은 환자들은 일상 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다. 같은 논문에 실린 229명의 유방절제술 환자를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자의 70.3%가 공중목욕탕에 가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보다 많은 74.6%의 응답자가 수영장이나 해수욕장에 가지 않는다고 답했다. 성관계시 문제가 있다는 답변도 44.9%를 차지했다.

이보다 심각한 문제는 심리적인 부분이다. 여성의 상징인 유방을 잃었다는 점에서 정신적인 충격에 빠지는 환자들이 많다. 설문조사 결과, 전체의 66.8%가 여성으로서 매력을 상실했다고 답했으며 자신이 장애인과 다름없다는 답변도 62%에 달했다.

강릉아산병원 박은화 외과 전문의는 “유방재건술을 받으면 정신적으로 의지가 돼 우울증 등심리적인 문제를 막을 수 있다”며 “그러나 1,000만원이 넘는 수술비 때문에 수술을 포기하는 환자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육체적 고통도 수반된다. 대한유방암학회 임철완 보험이사(순천향의대 부천병원 외과 교수)는 “유방 한쪽이 없어지면 몸의 균형 때문에 척추가 휘고 어깨가 내려오게 돼 척추측만증과 오십견이 올 우려가 높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유방재건술을 성형․미용 목적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철완 이사는 “미용․성형수술은 정상적인 사람이 굳이 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용증진을 위해 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유방재건술은 성형이나 미용의 범위가 절대 아니다. 장애적 문제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방암으로 인한 유방절제를 신체적 장애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정신적 장애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은 유방재건술을 보험에 포함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지난 1998년부터 ‘여성 건강과 암 권리 조항’(WHCRA)에 따라 유방재건술이나 유방 보조물을 보험 대상에 포함시켰다.

임 이사는 “당시 미국은 여성 유방암 환자들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해 유방재건술을 사회에서 책임져야 한다고 발표했다”며 “심지어 당시 발표에는 여성의 유방절제는 남성의 생식기 손상에 준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보건당국은 유방재건술 급여화에 대해 미온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는 지난 3월 15일 복지부에 '유방암 수술 후 유방재건술의 건강보험 적용 제안'에 관한 탄원서를 제출했다. 복지부는 석 달이 지난 6월 20일에서야 급여확대 가능 여부와 적용범위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았다.

심평원 역시 지난 7월 복지부로부터 유방재건술 보험 적용에 관한 검토를 의뢰받았지만 이달 1일에야 뒤늦은 자리를 갖고 성형외과, 외과, 정신과, 재활의학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그러나 형식적인 만남에 그쳤을 뿐 실질적 대안을 모색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평원 급여기준부 관계자는 “의료계 전문가들과 자리를 가졌지만 그저 의견만 들었다”며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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