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하고 싶다면 텔로미어(telomere)의 길이를 짧게 만드는 위험요인을 관리하세요"

2009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엘리자베스 블랙번(64) 캘리포니아대 생화학·생물리학과 교수는 최근 서울성모병원 성의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그는 텔로미어와 이를 만드는 효소인 텔로머라아제를 발견해 노화의 비밀을 풀고 암을 치료할 새 가능성을 제시한 여성 과학자이다.

이번 방한은 노벨상 수상자의 업적을 알리는 노벨미디어와 글로벌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의 공동주최로 이뤄졌다.

텔로미어는 긴 실 형태로 염색체 끝에 모자처럼 씌어있으며 세포가 분열할 때 염색체 속의 유전정보가 분해되지 않도록 막아준다. 신발끈의 끝이 풀리지 않도록 싸맨 플라스틱 마개와 비슷하기 때문에 세포가 수십번 분열해도 염색체가 완벽하게 복제될 수 있다.

텔로미어는 세포가 분열을 거듭해 노화할수록 짧아지나 다행이 세포에는 텔로미어를 계속 만들어내는 효소 텔로머라아제가 있다. 이는 세포 분열이 진행돼도 텔로미어가 어느 정도 길이를 유지하게 만든다.

텔로머라아제의 기능이 활발해져 텔로미어 길이가 줄어들지 않으면 세포 노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론적으로는 수명이 늘어날 것 같지만 세포가 늙어 죽지 않고 계속 분열하면 암세포가 된다. 텔로머라아제를 차단하면 암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은 블랙번 교수와의 일문일답.

--텔로미어 길이를 늘려 수명을 늘릴 순 없는가.

▲텔로미어 길이가 늘어나도 유전적으로 정해진 100~120세 보다는 어려울 것 같다. 텔로미어 길이가 긴 쥐도 수명은 2년 정도다. 텔로미어의 길이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 그러나 여러 위험요인으로 줄었다가 텔로머라아제의 영향으로 늘었다가를 반복하며 전체적으로는 길어진다. 즉 위험요인을 관리하면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다. 같은 텔로미어 길이를 타고 난 쌍둥이라도 운동한 쪽이 더 길게 유지됐다.

--텔로미어 길이를 짧게 만드는 위험요인은.▲암, 당뇨병, 심혈관계질환 등에 걸리거나, 심리적 스트레스,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도 텔로미어를 짧게 만든다.

--혈압처럼 텔로미어 길이도 건강 측정의 지표가 될수 있는가.

▲지금은 측정 방법이 복잡해 임상적으로 표준화하기 어렵다. 텔로미어 길이 측정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저를 포함한 4명의 연구자가 연구기관(Telome Health Inc)을 설립해 연구 중이다. 아직은 텔로미어 길이가 심각하게 줄어든 일부 희귀질환자를 제외하고는 수명을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앞으로 많은 자료가 쌓이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전 세계에서 텔로머라아제를 억제하는 항암제 개발이 한창인데.

▲먼 미래엔 가능하겠지만 당장은 어려울 것 같다. 텔로머라아제의 기능을 억제하면 암세포가 아닌 다른 정상세포에도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부작용을 어떻게 막을지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한국 학생들을 직접 만났는데.

▲많은 지식을 갖고 있고, 과학 연구를 성공시키기 위한 열망이 커 놀랐다. 나는 인체, 세포, 자연이 어떻게 서로 작용하는지 궁금해 과학을 시작했다. 어려운 순간도 있었지만 과학만이 내 갈 길이라고 생각했다. 끈기, 인내, 의지가 필요하다. 공부가 복잡한 분야이지만 용기를 내 진출하기 바란다.

--한국에서도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려면.

▲혁신을 기대한다면 연구자들이 최소 4년 이상 한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환경을 지원해야 한다. 새로운 업적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해서 그렇지, 수익성이 좋은 분야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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