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국(소아청소년과 전문의)

2013년도 수가협상에서 건강보험공단과 대한병원협회가 연명치료의 중단 시 인센티브 지급을 부대조건으로 합의했다고 한다. 소아과 의사로서 이 소식을 접하는 순간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근무 할 당시의 일들이 떠올랐다. 그곳에서는 임신 6~7개월이 채 안되어 태어난 700g의 미숙아나 만삭아로 태어났더라도 다른 질병을 가진 아기들을 치료했었다. 때로는 한명의 아기를 위해 한 달을 꼬박 쪽잠을 자며 병원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도 했다.

그곳의 아기들에게는 고비 아닌 날이 없었고 때로는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고 죽음을 예상하면서 하루, 다시 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고는 했었다. 그러다가도 어떤 아이는 기적처럼 회복을 하기도 했다. 글자 그대로 목숨을 겨우 이어 살아가는 동안 어떤 보호자들은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또는 의학적으로 무관한 환경적 이유를 들며 아기의 치료중단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물론 짧은 면회 시간마다 아기를 마주하며 기뻐하는 엄마 아빠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런 요구를 하는 보호자들과 아기의 생명을 가운데 두고 힘든 줄다리기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른 종류의 기억도 있다. 조제료를 제외한 모든 수가가 그러하듯이 신생아 중환자실의 수가 역시 턱없이 낮은 형편으로 치료하는 미숙아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또 아기들의 치료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병원은 손해를 입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의사가 아닌 병원의 경영자들 입장에서는 신생아 중환자실을 좋아할 리가 없었고 열심히 치료를 하는 의료진들에게 정기적으로 적자에 대한 책임을 묻고는 했었다. 이는 내가 근무하던 병원만의 사정이  아니라 전국 대부분의 병원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즉, 병협과 공단의 이면합의를 듣는 순간 내 머리 속에서는 치료에 의존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아기들 앞에서 치료중단을 요구하는 보호자들과 적자를 모면하고 인센티브 획득을 위해 의료진에게 이를 종용하는 병원의 경영자들이 그려진 것이다. 존엄한 생명을 금전에 비교하는 것은 과장된 망상일까? 아니다. 절대 아니다. 비용절감을 위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연명치료 중단을 종용하고 또 이에 대해 금전적으로 보상을 해준다는 식으로 공단과 보건복지부의 공무원들이 이를 부추기고 있지는 않은가.

독일에서는 연명치료 중단을 위한 절차가 민법으로 제정돼 있다. 이 절차를 살펴보면 치료여부의 판단은 일차적으로 의사에게 있으며 고려사항에는 어떠한 경제적 사유도 포함하지 않는다. 즉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할 때는 환자 생명의 존엄한 권리 또는 환자가 고통 받지 않을 권리를 위하여 해당 의료진의 전문가적 판단을 근거로 하는 것이다.

이처럼 선진국에서는 연명치료의 중단에 대하여 안락사 또는 존엄사라는 이름으로 일찍부터 고민해 왔고 많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상태에서 의사의 판단과 법률적 근거를 바탕으로 신중하게 결정한다. 이와 비교할 때 우리나라에서는 과연 어떤가. 논의가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이에 대한 의료적, 법률적 제도 역시 미흡한 실정이다. 특히 소아의 경우는 이에 대한 논의 자체가 거의 없어 어떠한 기준도 명확하지가 않다. 이러한 현실에서 공단과 병협의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부속합의는 너무나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현재의 모호한 기준으로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뇌성마비 합병증을 가지고 보조 호흡기에 유지해야 하는 영아나 또는 회복이 불가능한 유전 질환을 가진 환아 모두 말기 환자가 될 수 있다. 그러면  보호자는 치료의 중단을 요구하고 병원의 경영자는 윤리위원회라는 요식행위를 거침으로 간단히 아픈 아기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경제적으로 평가 할 수 없는 가치에 경제적인 잣대를 적용하려는 복지부의 탁상행정 때문에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올해 초 영국에서는 뇌사상태 영아의 존엄사를 인정하는 판결이 있었다. 인간적인 본능이 존재하지 않는 아기의 죽을 권리를 의료진이 청구하였고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 과정 어디에서도 비용절감, 경제적 부담이라는 가치는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 정부 관계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병국은?- 동국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일산 동국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수료- 2010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취득 - 2010~2012 평창군 보건의료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 2012년 현 강원도 횡성군 보건소에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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