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석의 서바이벌 의료윤리>

■ 지난달의 딜레마 사례 – 미용상의 이유로 전과를 원하는 갑상선암 환자

모 대학병원의 직원인 31세 여성이 갑상선의 세침흡입검사상 갑상선암으로 확인됐다. 건진센터를 통해 외과 쪽으로 전과가 됐고, 수술준비를 위해 입원했다. 그런데 입원 다음 날 환자가 이비인후과로 전과를 원한다는 의사표시를 했다. 이유인즉, 외과 교수님이 절개를 크게 넣는다고 소문을 들었다며 미용상의 이유로 이비인후과에서 수술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환자의 의사를 전해 들은 외과 교수는 불같이 화를 냈다. 담당 주치의로서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 이렇게 생각합니다!

병원에서 이런 일로 갈등이 생긴다는 사실이 우선 놀랍습니다. 당연히 환자가 원하는데로 과를 옮겨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나마 이 경우는 병원 직원이였으니 다행이지 사정을 잘 모르는 환자였다면 아무런 선택권 없이 목에 큰 흉터를 남기게 될 뻔 했네요. 병원에 아는 분이 한 분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말들이 사실이었군요. 저도 언제 아플지 모르는데 이것 저것 잘 알아보고 병원, 혹은 의사를 선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D여대 C학생)

■ 긴 고민, 간략한 조언

위에 제시된 사례는 동일 질병을 두고 같은 병원 내에서 두개 과가 경쟁하고 있는 구도에서 흔히 벌어지는 상황입니다. 사례 외에도 척추수술(신경외과, 정형외과), 코성형수술(성형외과, 이비인후과), 유방재건술(일반외과, 성형외과), 쌍꺼풀 수술(성형외과, 안과), 대장내시경(일반외과, 소화기내과) 같은 분야에서 크고 작은 영역다툼이 존재합니다.

사례에서 만일 환자가 전과를 강력히 원한다면 이를 막을 수도 없을 것이고 또 막아서도 안 될 일입니다. 병의 완치도 중요하지만 수술 후 삶의 질도 무시해서는 안 될진데, (결과가 같다면)작은 절개를 원하는 환자의 바램은 당연한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비록 담당 교수가 화를 낸다하더라도 주치의로서는 전과를 허락해야 합니다. 혹시 환자가 알고 있는 절개 크기에 대한 소문이 잘못된 것이라면 담당 교수와 함께 적극적으로 외과에서 수술받는 것이 좋은 이유를 설득해 볼 수는 있겠지요. 늘 강조하지만 온전한 자율성의 전제조건은 환자의 눈높이를 고려한 ‘충분한 설명’입니다. 이비인후과와 외과에서 수술의 차이점을 충분히 설명하고 환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시스템이 있다면 금상첨화겠지요.  

현재와 같은 복잡한 전문의 제도의 발전은 처음부터 큰 틀에서 통일된 체계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칼이냐(외과), 약이냐(내과)라는 기준도 있고 눈(안과), 귀코입(이비인후과), 뼈(정형외과)처럼 장기에 따라 나누기도 했습니다. 연령(소아청소년과)이나 성별(산부인과), 체액과 조직(임상진단의학과, 해부병리학과), 정신(정신건강의학과)이 기준이 되기도 하지요. 그러고 보니 입안에 있는 치아만 별도로 독립(치과대학)한 연유가 궁금하군요. 우려할 점은 이러한 진료 세분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일 작은 장기 중 하나인 눈을 다루는 안과 내에서도 눈꺼풀전문, 수정체전문, 망막전문의로 세분화 되는 추세이니까요.(조만간 오른쪽 눈과 왼쪽 눈도 나누어 볼지 모르겠군요.) 이런 진료환경은 전문성이 강화된다는 면에서야 강점이 있지만 환자들에겐 매우 불편한 면이 있습니다. 어깨가 아파 대학병원을 찾았다가 무릎전문인 정형외과 교수님의 진료일이라 발걸음을 돌리는 불편한 일이 흔합니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가고 있는 셈입니다.

이야기를 풀어내다 보니 결국 ‘패러다임’의 문제로군요. 현재의 진료체계가 환자 중심이 아니라 의사 중심이라는 이야기지요. 더 심각한 문제는 이에 대해 의료계가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고 발뺌 할 수도 있지만, 문제가 분명해졌다면  주도적으로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논의를 좀 더 확장해서 현재의 전문과목별 진료 구도를 좀 더 환자 중심적으로 개편하면 어떨까요. 복부통증, 흉통, 호흡기증상, 두통, 피로진료과처럼 환자의 흔한 증상별로 외래를 분류하든지 연계 과의 전문의들이 한 환자의 문제를 함께 의논할 수 있는, 환자가 중심이 되는 의료시스템은 우리 사회에서 불가능할까요. 

■ 이달의 딜레마 사례 -적응증이 아닌 개복수술을 고집하는 복통환자

10년전 충수돌기염으로 인한 복막염으로 큰 수술을 받은 박씨는 만성 복통으로 병원의 단골환자가 된지 오래다. 그동안 다른 병원에서 유착제거술을 두 번이나 받았으나 박씨의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마약성 진통제까지 써야 잠을 잘 수 있다는 박씨가 외과의사인 당신에게 또 한번의 유착제거술을 부탁해왔다. 지난 번 두차례의 수술 후 몇 개월동안은 배가 아프지 않았다는 것이다. 의사로서 또 한번의 수술은 오히려 유착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적응증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당신에게 박씨는 막무가내로 수술해달라고 고집을 한다. 얼마후 박씨의 아내와 아들이 찾아왔다. 혹시, 실제 수술을 하지 않고 피부만 절개했다가 닫는 가짜 수술을 해 주실 수 없냐는 것이다. 아버지 성격상 일단 수술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한 동안은 좋아질 것 같다며…. 위약(플래시보)은 사용해 본 적이 있지만, 플래시보 수술은 처음 듣는 이야기인지라 고민하는 당신의 선택은? <*'딜레마 사례 1'에 대한 여러분의 소중한 견해를 e메일(drloved@hanmail.net)로 보내주세요. 혹은 라포르시안 기사 본문 하단에 '독자첨부뉴스'로 의견 남겨 주시면 다음 호에 간략한 해설과 함께 소개해 드립니다.>

정유석은?

199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사1993년 가정의학과 전문의2001년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박사2011년 전공의를 위한 임상의료윤리 저술2011년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학교실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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