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18대 대통령 선거를 위한 본격적인 레이스의 막이 올랐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 선출에 이어 안철수 원장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면서 연말 대권 경쟁은 일단 '3자 구도'를 형성하는 모양새다. 야권의 후보 단일화 가능성이 열려 있기에 아직은 섣불리 단정할 수 없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각 후보 캠프별로 다른 어느 때보다 '보건복지 공약'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시민사회는 물론 의료계에서도 각 후보별로 어떤 보건복지 공약을 제시할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각 후보별로 명확한 보건복지 공약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그간의 행보와 발언을 살펴볼 때 기본적인 틀거리는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난다. 일찌감치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선출돼 대권 경쟁에 뛰어든 박근혜 후보는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기본 틀로 다양한 보건복지 공약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는 각 연령별로 적합한 보건복지 서비스를 제공해 국민의 자립을 돕고 경제와 복지의 선순환을 이루겠다는 것이 핵심 골자다. 일종의 선별적 복지 개념이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보건복지 공약의 골조는 '보편적 복지'로 모아진다. 그동안 민주당이 강조한 무상의료 도입을 전제로 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와 공공의료 확충이 키워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뒤늦게 대권 경쟁에 뛰어든 안철수 후보는 다른 두 후보의 중간 쯤 위치하는 것 같다. 안 후보는 지난 7월 출간한 '안철수의 생각'이란 책에서 "시대 상황에 맞춰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를 전략적으로 조합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지난 19일 대선 출마 선언에서도 경제와 복지와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어떤 보건복지 공약을 제시하든 적정성과 실현가능성 없는 부실 민생공약을 남발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그동안 대선과 총선 때마다 정치권은 저마다 장밋빛 보건복지 공약을 내놓으며 표를 구했다. 하지만 선거만 끝나면 언제 그런 약속을 했냐는 듯 어기기 일쑤였다. 이번엔 제발 누가 되든 현실에 바탕을 둔 시의적절한 보건복지 공약을 제시하고 임기 중에 반드시 지켰으면 한다.

그 성격이 선택적이든 보편적이든, 보건복지 공약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약의 적정성과 현실성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급속한 인구 고령화와 지역간 계층간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수명은 이미 80세를 넘어섰다. 문제는 수명이 길어진 만큼 노후에 각종 만성질환과 암, 치매 등 중증질환을 앓으면서 어찌보면 고통스러운 삶의 연장이 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수명 연장이 아니라 질병 없는 건강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고령인구의 건강권을 지켜주는 공약을 제시해야 한다. 아무리 의료기술이 발달하더라도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저소득층 노인들에겐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이들이 적절한 의료서비스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지역과 계층간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건강 불평등도 심화되고 있다. 수도권과 대도시로 의료자원 쏠림현상이 심화되면서 지역별 의료서비스 공급 불균형이 심각한 상황이다. 지방의 암 환자나 장기 투병 환자들이 수도권과 대도시의 대형병원을 찾아 '의료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 산부인과와 응급의료 등 필수의료 서비스 시스템도 붕괴 직전이다. 지방의 대학병원조차 전문의가 부족해 분만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고, 지방의 소도시 단위에서는 제대로 된 응급실조차 없다. 이 때문에 '출산 난민'이 양산되고 있으며 응급의료 서비스 사각지대는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첨단 의료장비의 개발과 공급, 효과가 뛰어난 신약도 속속 개발되고 있지만 비용 부담이 너무 커다. 중증질환이라도 걸리면 순식간에 가정경제가 붕괴돼 '질병 빈곤층'으로 전락한다. 최근 대한치매학회의 조사에 따르면 치매 환자 보호자의 78%가 간병을 위해 직장을 그만 두거나 근로 시간을 축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그만큼 경제적 수익을 줄어드는 반면 치료와 간병비 부담을 늘어나고 종국엔 가정경제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암환자의 경우 두말할 나위 없다. 오죽했으면 암에 걸릴 경우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치료비 부담'을 먼저 걱정할까 싶다.

따라서 대선 후보들이 앞으로 제시할 보건복지 공약에는 수명연장에 따른 건강한 노후와 건강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분명한 정책 방안이 제시돼야 한다. 덧붙여 보건복지 공약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의료계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의료서비스 시스템의 중심 축을 담당하는 의료계의 협조 없이는 어떠한 보건의료 제도 개선도 효과를 보기 힘들다. 의료계 차원에서도 각 대선 후보들에게 공약 요구사항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중에서 합리적인 방안은 적극 수용하고, 필요하다면 의견수렴에 나서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보건복지 공약을 실천할 수 있는 현실성의 담보돼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재정 확보 방안이다. 보건복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막대한 재정이 소요된다. 아무리 그럴듯한 보건복지 공약이라도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재정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결국 표를 얻기 위한 '표풀리즘' 공약이 될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 공약에는 세금 인상이나 건강보험료 인상 등의 구체적인 재정 확보 방안이 제시돼야 한다. 국민들의 부담을 우려해 추가적인 세금 부담이나 보험료 인상없이 보건복지 혜택을 강화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선거를 위한 선심성 공약일 뿐이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겠다면 가입자들이 지금보다 더 많은 보험료 부담을 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보험료와 세금 폭탄'이란 비난에 직면해 표를 잃을 것이란 정치적 고려만 앞세워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의 재정 확충 방안을 내놓아선 안된다. 절대로. 장밋빛 공약(空約)으로 헛배 부른 건 이 정도로 충분하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