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의료계와 정부는 건강보험 요양급여기준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해왔다. 의료계는 급여기준의 형평성과 실효성을 주장한 반면 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전제로 일관성 없는 고시 개정을 남발해왔다. 이런 가운데 의료계는 물론 환자들도 불합리한 급여기준으로 인한 피해를 적지 않게 봤다. 이에 <라포르시안>은 의사와 환자 간 라뽀를 해칠 수 있는 급여기준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관련 학회와 정부의 대안을 듣는 코너를 마련했다. 이 시리즈의 제목 '애·정·기'는 '애매한 급여기준을 정리해주는 기사'란 뜻이다.


지난 2008년 안면에 3도 화상을 입은 K씨는 수천만원에 달하는 막대한 수술비용 때문에 수술을 받지 못해 취업은커녕 외출도 포기한 채 집에서만 은거해왔다. 그러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2009년 1월부터 최초 1회에 한해 안면화상 수술을 급여로 인정함에 따라 20%의 본인부담금을 내고 수술을 받았다. 안면 전체에 화상을 입었던 K씨는 1회 수술로 눈 부위만 조금 나아졌을 뿐 나머지 부위는 그대로였다.

의사는 K씨에게 코와 귀, 입 주위 등의 재건수술도 받을 것을 권유했으나 두 번째 수술부터는 비급여이기 때문에 막대한 치료비 부담을 느낀 K씨는 수술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첫 수술만 받고 비용 부담 때문에 나머지 수술을 포기한 K씨는 스트레스와 우울증만 더 심해졌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계획에 따라 2009년 1월부터 안면부 화상반흔 제거를 목적으로 하는 수술에 한해 첫 번째 수술은 급여대상으로 하고 두 번째 수술부터는 비급여토록 고시했다.

안면부에 생긴 화상반흔은 운동제한이 없다 하더라도 환자가 수치감을 갖게 되고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는 등 사회생활에 영향을 받는다는 이유 때문이다. 당시 복지부는 안면 화상 환자가 매년 250명가량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지난 20년 동안 수술을 미뤄온 환자 5,000명의 수술비로 1,000억원을 배정했다.

하지만 의료계와 화상 환자들은 안면화상 첫 1회 수술에 대해서만 급여를 인정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안면화상의 경우 수차례에 걸쳐 재건수술을 해야 하기 때문에 1회에 한해서만 급여를 인정하는 것은 본인부담률 경감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화상환자들은 복지부의 급여기준이 화상환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토로하고 있다.

화상환자들의 모임인 대한화상협회 김성결 사회복지팀장은 “일반적으로 안면부는 근육이 많아서 한번에 수술하기 어렵다”며 “가벼운 화상이면 몰라도 안면화상의 경우 한번 수술로 효과를 본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꼬집었다.

김 팀장은 최근 협회에서 상담을 받은 화상환자를 예로 들었다.

김 팀장에 따르면 방화범에 의해 화재사고를 당한 A씨는 불과 20일 치료받는데 2,000만원이 넘는 비용이 들었으며 병원 측으로부터 이후 치료를 받는데 억단위의 비용이 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치료를 포기했다.

그는 “안면 화상환자들에게 레이저 치료까지 급여를 인정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얼굴 형태를 갖추고 최소한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한다”며 "북미와 유럽 등은 성형을 미용성형과 재건 성형으로 구분해 재건의 경우 화상을 포함해 대부분 보험적용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복지부의 급여기준이 보장성을 확대해주는 흉내만 내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권영대 정보이사는 “안면 재건성형은 미용이 목적이 아닌 불가항력적인 수술”이라며 “안면화상 수술을 1회에 한해서만 급여를 인정하는 것은 결국 국가가 급여를 인정해주는 시늉만 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면화상 환자들에게 재건수술은 평생 끝나지 않는 숙제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권 이사는 “안면화상의 경우 수술을 해도 조금 나아질 뿐 정상인과 비슷하게 보일 수는 없다”며 “하지만 환자들은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 돈을 벌어서 모이는대로 부분적으로 수술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이유로 안면화상 수술에 대한 급여를 제한하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희망을 가로막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안면화상 환자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선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재정적 한계 때문에 급여 확대가 부담된다면 선별적으로라도 화상 환자들만 도와줄 수 있는 기구를 설립해 이를 정부가 지원하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급여인정 기준을 안면화상 수술 1회가 아닌 안면 부위별 1회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화상 전문병원인 베스티안병원 김선규 과장(외과 전문의)는 “안면화상은 보통 눈, 코, 귀 등 따로 수술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상처라도 1회 수술로 적절한 결과를 얻기란 어렵다”며 "미용단위에 따라 안면부를 구분해 이에 대해 부위별로 1회씩 급여를 인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그나마 급여가 확대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심평원 급여기준부 관계자는 “사회생활에 큰 지장을 초래하는 안면화상을 성형수술 하고자 할 경우 기존에는 눈을 감지 못하거나 음식을 씹지 못하는 등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경우에만 건강보험 급여가 인정됐다”며 “그러나 지난 2009년 1월 이후부터 안면화상의 최초 1회 수술에 대해 건강보험 급여가 확대 적용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안면화상 수술의 급여확대에 대해서는 추후에 필요시 논의할 것”이라고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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