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고고학 / 미셸 푸코 지음 / 이정우 옮김 / 민음사 펴냄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철학적 사유의 핵심을 담고 있다고 소개되는 책입니다. 출판사에서는 “푸코 개인의 사상은 물론 프랑스 철학의 이론과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과학적 기초'와 '사회적 실천'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중시하는 프랑스 철학의 특징이 잘 녹아있는 책이다.”라고 소개 말에 적었습니다. 하지만 푸코의 다른 책들과 비교해서 <지식의 고고학>이 특히 어려웠다는 독자가 많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저 같은 일반 독자들에게는 어려울 한문식 철학용어로 옮겼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에서 얻은 느낌을 적기 전에 책을 쓴 푸코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광기의 역사>를 통하여 푸코를 처음 만났습니다. 오생근 교수님은 ‘푸코의 <광기의 역사>, 혹은 침묵의 고고학’이라는 제목으로 해제를 하셨는데, “푸코가 광기를 이성의 대척점에 서는 비이성으로 보고 시대에 따라서 광기를 보는 사회적인 시각의 변화를 살펴보았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광인에 대한 서구사회의 인식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정리한 것인데, 그때는 ‘고고학’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광기의 역사>를 읽은 경험은 지금 근무하고 있는 기관에서 맡고 있는 정신요양기관의 평가업무와 관련하여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업무와 관련이 있는 분들에게는 일독을 권하곤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정신요양기관의 평가에 대한 발표자료에 <광기의 역사>를 인용한 것을 보고 푸코를 읽었다고 하면 진보적 시각을 가진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 분이 계셨습니다. <광기의 역사>를 읽으면서 전혀 진보적 색체를 느끼지 못했는데 무슨 말씀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궁금증은 푸코의 30년 지기인 폴 벤느교수의 <푸코, 사유와 인간>을 읽으면서 풀리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흔히 좌파주의 성향의 철학자로 알려진 푸코는 미지의 것에 대한 열린 정신을 가지고 있었고, 모든 저항에 호의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는 ‘전투적 행동주의자’였기 때문에, 우파에서 싫어하는 그를 반동적으로 좌파가 그들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푸코는 마르크스도 프로이드도 믿지 않았고, 혁명도 마오도 믿지 않았으며, 사적으로는 선량한 진보주의적 정서에 냉소를 보냈다.(푸코, 사유와 인간, 187쪽)”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푸코의 철학적 사유의 핵심은 인간의 본질에 있어서 참인 지식과, 권력에 더하여 인간의 주체였다고 합니다. 특히 끊임없이 스스로를 구성하여 확립해가는 인간의 주체를 신뢰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지식의 고고학>을 옮기신 이정우 교수님이 역자 서문을 통해서 푸코와 프랑스 철학에 대한 우리사회의 오해를 지적하는 대목에 주목합니다. “프랑스 철학자들은 언제나 양면성을 지닌다. 그 하나는 그들의 철학이 순수사변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항상 과학적인 일차적 연구를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 프랑스의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철학자이기 이전에 우선 과학자인 것이다.(6쪽)”이정우 교수님은 푸코철학을 이해하려면 세 가지의 지적배경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프랑스의 인식론이 바로 ‘과학사의 철학적 이해’에 있는 것처럼 과학사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조주의라고 부르는 20세기 프랑스의 ‘인간과학’ 즉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마지막으로 현대의 전반적인 문학과 예술에 대한 소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과학과 인문이 같이 녹아서 섞여야 그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식의 고고학>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지식의 고고학>은 매우 깊이 있는 책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사상적이고 정교한 인식론적 논의로 일관되어 있다.”는 옮긴이의 말처럼 한마디로 말해서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죽하면 읽다말고 책장으로 모셨다는 독자도 있었는데, 그래도 옮긴이는 “모든 파토스가 배제된 무색, 무미, 무취의 세계를 터득한 사람이라면 갖가지 질(質)들로 어우러져 있는 세계에서는 결코 느끼지 못할 깊은 감동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고고학(考古學)하면 “유적과 유물을 통하여 선조의 생활과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다양한 유물들이 고고학의 연구대상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의 경전인 구약 성서와 신약 성서의 기술과 사실과의 관련을 연구하는 고고학의 한 분야”로 성서고고학(聖書考古學)이 있는 것처럼 인간의 앎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추구하는 학문의 영역으로 ‘지식고고학’이라는 독특한 영역이 성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쪽이 되었든 우리에게 남겨진 유물에서 그 시대에 살던 사람들의 삶이나 생각을 제대로 읽어내는 것이 고고학의 중요한 임무가 될 것입니다.

푸코는 <지식의 고고학>을 통하여 특정한 분야의 지식이 역사를 통하여 어떻게 흘러내려왔는지 비교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다양한 분야의 역사를 다룬 책을 읽을 기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자료가 당시의 상황을 유추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며, 같은 의미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표시하는 방법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동일한 의미로 변환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푸코는 이를 “문서의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25쪽)”이라고 짧게 요약하였습니다. 푸코는 “한 과정의 극한들, 한 곡선의 변곡점, 한 조절운동의 전복, 한 진동의 경계들, 한 기능작용의 문턱, 한 순환적인 인과의 변조의 순간(29쪽)”일 것이라는 현학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만, 우리에게 남겨진 것들은 기록을 남긴 사람의 주관에 개입하여 진실이 왜곡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변곡 혹은 왜곡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방법론을 구조주의적 사유를 통하여 정리한 푸코의 생각에 공감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사유와 언어가 결코 상응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의 사유가 언어화될 때 또는 언어가 우리로 하여금 사유하게 할 때 가시적인 언어와 말하는 주체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언설의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이라고 하는 푸코의 언어철학의 핵심을 알게 되면, 최근 소개한 우리나라의 한의학자들의 존재를 뒤쫓은 <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을 읽으면서 마음 한구석에 남았던 앙금의 정체를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중요한 키워드로 보이는 언설(言說)와 언표(言表)에 대한 개념을 쉽게 정리할 수 없었습니다.  다음 국어사전에 언설(言說)은 “① 말로 설명함 ② 말로 설명하다.”라고 하였고, 언표(言表)는 “① 말로 나타낸 바 ② 말에 나타난 뜻의 밖, 말로 드러낸 뜻의 이면(裏面).”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식의 고고학이란 무엇인가?’하는 물음에 푸코는 “언설적 형성과 그의 변환에 대한 분석‘이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언설적 형성을 대상의 형성, 언표행위적 양태의 형성, 개념의 형성, 전략의 형성으로 나눈다면 각 부분에 대한 세부적 내용이 고고학적 범주론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결국 언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언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입니다.

푸코에게 있어 언표란 “고유하게 기호에 속하는, 그리고 그로부터 출발해 우리가, 분석에 의해 또는 직관에 의해, 그들이 ‘의미를 가지는가’의 여부를, 어떤 규칙들에 따라 그들이 계기하고 병치되는지를, 그들이 무엇에 대한 기호인지를, 어떤 종류의 행위가 그들의 언어표현에 의해 실행되는가를 결정할 수 있는 존재의 기능인 것(129쪽)”입니다.

언표란 기본적으로 ‘말로 나타낸바’이므로 문법적 의미의 문장이나 논리적 의미의 명제와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습니다. “언표는 감춰지지 않으려 해도 어쩔 수 없으며, 그렇게나 가시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자기 한계와 특성의 명시적인 담지자로서 스스로를 자각에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을 인식하고 그 자체로 고찰할 있으려면, 시선과 태도의 전환이 필요하다.(푸코, 사유와 인간. 33쪽)”고 한 것처럼 푸코는 단절된 기록의 연속으로 되어 있는 일반적 역사와는 달리, 단절을 감지하고 언표가 관계를 맺고 있는 대상들을 긴밀하게 서로 연결함으로써 내재하고 있는 의미를 상호연관시켜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언설적 형성과정을 설명하면서 푸코가 인용하고 있는 광인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의학이 발전하면서 개별 질환에 대한 정의가 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그 형태에 있어 상이하고, 시간 속에서 분산되어 있는 언표들은, 그들이 하나의 유일하고 동일한 대상을 가질 때, 하나의 단위를 형성한다.(59쪽)”는 가설을 비롯하여 역사의 흐름에서 등장하는 언표들 사이의 관계를 정의하고 이들을 다시 분류하며 그 아래 나타나는 통일된 형태를 도출하기 위한 가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푸코의 철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역사인식은 역사가의 그것과는 분명 차별되는 점이 있다 하겠습니다. 그래서 “푸코식의 역사 그림 안에는 무언의 형이상학적 감수성이 있다.”고 폴 벤느교수는 말하는지도 모릅니다.조금 쉽게 설명한다면, 제가 하고 있는 의료영역에서의 질에 대한 평가만 하더라도, 해가 거듭되면서 나타나는 의료환경의 변화를 반영하여 평가지표를 수정보완하며 심지어는 더하거나 빼기도 합니다. 따라서 평가가 진행되면서 지표가 변화하는 단절 혹은 변곡점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런 변곡점의 차이를 가진 동일한 이름의 평가결과라해서 같은 해석값으로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상대적 의미의 비교는 가능하겠지만 절대적 의미의 비교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동성애자이며 에이즈로 사망했다는 푸코의 개인사는 논외로 하고 푸코의 철학적 사유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그가 철학을 공부한 다음 정신의학의 이론과 임상을 연구하여 <정신병과 심리학(1954)>, <광기의 역사(1961)>와 <임상의학의 탄생(1963)> 등 의학계에서 관심을 가질 책을 저술한 때문일 것입니다. <임상의학의 탄생>을 보면 동양의학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던 서양의학이 현재에 이르게 된 계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서양의학이 발전하게 된 동력은 부검에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만, 19세기에 접어들면서 환자가 사망 전에 보인 임상증상과 사망한 다음 얻은 부검결과를 연결하여 해석하는 관점에서 변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부검을 통하여 나타나는 기호(즉 부검소견)를 질병이라는 기의의 기표들로 간주하게 되는 일관성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인데, 레넥은 간병변의 임상과 병리소견 사이의 일관성을 발견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합니다. 알코올성 간경변을 레넥 간경화라고 이름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리를 해보면 푸코의 지식의 고고학은 언설의 형성을 통하여 다양한 영역에서의 텍스트들의 통일성을 특성화하는데 이로서 고고학적 탐구를 통하여 얻어진 비교대상들을 ‘같은 수준’ 또는 ‘같은 거리’에 위치함으로써, ‘같은 개념의 장’을 전개시킴으로써, ‘같은 전장’위에서 대립함으로써 ‘같은 것’을 말했는가 드러낼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하겠습니다.

끝으로 <지식의 고고학>을 읽으면서 그 난해함에 더하여 독자가 겪을 수 있는 혼돈을 폴 벤느교수의 친절한 경고를 인용하여 귀띔하고자 합니다. 푸코가 제시하고 있는 과학사적 담론의 형성과 변환에 대한 새로운 개념장치를 이해하는데 있어, 담론은 이데올로기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 뿐 아니라 거짓을 말하는 이데올로기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확실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담론은 마르크스주의적인 의미에서 하부구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비록 푸코가 담론을 물질적 층위로 간주함으로써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상부구조를 결정하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에 비견되는 마르크스적인 하부구조와 헷갈릴 수 있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극단적으로 공격적이고 극좌파로 보일 정도로 단호했던 푸코의 회의주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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