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이 정신적 피해는 물론 뇌(腦) 혈류량이 떨어지고, 당(糖) 대사가 줄어는 등의 심각한 신체적 부작용을 함께 겪는다는 사실이 국내 의료진에 의해 처음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전쟁이나 재난을 겪은 환자들에게서 뇌 기능의 이상이 관찰된 적은 있지만, 성폭행 피해 여성들에게서 이 같은 이상이 검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주대병원 핵의학과 안영실 교수팀은 국내에서 성폭행(강간)을 당한 19~51세의 여성 12명을 대상으로 뇌검사를 한 뒤 정상 여성 15명(32~53세)의 뇌 영상과 비교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3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은 정신과 분야 국제학술지 '정신의학연구(Psychiatry Research:Neuroimaging)' 최근호에 발표됐다.

연구팀은 성폭행 피해여성을 포함해 모두 27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뇌 영상을 볼 수 있는 '단일광자단층촬영(SPECT)'과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을 한 뒤 뇌영상분석프로그램(SPM2)으로 뇌 혈류량과 당 대사를 비교 관찰했다.

뇌 혈류량을 보는 것은 뇌혈관에 피가 얼마나 잘 도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고, 당 대사 검사는 당(糖)만 에너지로 쓰는 뇌가 이 에너지를 골고루 활용하는지를 분석하는데 활용된다.

성폭행 피해 여성들은 검사 당시 성폭행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은 지 평균 9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 결과 성폭행 피해 여성들은 뇌의 좌측 '해마(hippocampus)'와 '기저핵(basal ganglia)' 부분의 뇌 혈류가 정상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소한 양상을 보였다.

뇌의 당 대사 기능도 정상 여성에 비해 좌측 해마, 상측 측두엽(superior temporal), 중심전회(percentral) 부위에서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뇌혈류가 줄어들고 당 대사 기능이 떨어진 것은 성폭행 기억을 떠올리지 않으려는 피해 여성들의 행동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서의 다양한 신경생리학적 증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의료진은 분석했다.

이와 함께 피해 여성들의 뇌영상에서는 심하게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등의 과다 각성상태도 관찰됐다.

안영실 교수는 "특히 두려움과 공포심 등을 관장하는 해마 부위에 뇌혈류량이 감소한 것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환자들이 나쁜 기억을 억누르거나 잊으려 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볼 수 있다"면서 "결국 성폭행 피해여성은 피해 당시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2차, 3차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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