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석의 진료실 단상>

뜨거운 여름날에 한 줄기 청량제가 되어준 런던올림픽도 이제 끝났다. 88올림픽 이래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종목이 골고루 선전을 하였고, 특히 5위에 머무른 체조의 손연재 선수나 동메달을 딴 축구의 선전은 어느 금메달 종목보다도 높은 인기를 누려 이기는 경기보다는 즐기는 경기를 선호하는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고 축구의 박준우 선수가 독도 세리머니를 하면서 불거진 한일 간의 갈등이 일본 천황에 대한 사과요구를 거치면서 극도로 격해지고 있는 분위기이다. 단지 우리 땅을 우리 땅이라고 한 것 뿐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독도 문제를 가지고 우리가 흥분할 필요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일본의 입장에서는 중국(조어도; 센카큐 열도)과 러시아(큐릴 열도)와도 영토 분쟁이 있기 때문에 어느 특정 국가와 매우 심각한 갈등이 빚어질 경우, 다른 나라들도 자국의 영토 분쟁 문제에 도움이 되게 이를 활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도 분쟁이 발생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중국인들이 조어도에 상륙하고 러시아가 함정 2척을 큐릴 열도로 급파하였다. 그리고 이는 과거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이름으로 일으킨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는 많은 아시아 국가들의 분노를 살 수 없다.

경제적으로도 중국에 추월 당하고 한국이 바짝 추격하고 있는 입장을 감안하면 경제제제 역시 오히려 침체된 일본 경제에 더 큰 악재가 될 수 있다. 이미 우리나라의 경우 3100억 달러의 외환 보유고를 가지고 있으며 미국 및 중국과 통화 스와프를 맺고 있어 일본과의 통화 스와프는 별 의미가 없는 상태이다. 그리고 아시아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상처를 자극할 경우 일본이 경제회생을 위해 적극적으로 가입하여 주도하려고 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Trans-Pacific-Partnership)에도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너무 독도 문제에 흥분하는 것보다는 차분하게 현안에 대응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국제분쟁이 될 경우 우리에게 유리하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점이다.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현직판사 15명 중에는 일본 왕세자비의 아버지인 ‘오와다 히사시’가 2003년부터 재직 중이며 특히 2009년부터 금년까지 3년간 ICJ 소장을 지낸 거물일 뿐 아니라 국제 기구 요소요소에 실력 있는 일본인들이 진출하고 있어 국제사회에서의 일본 영향력이 적지 않다. 실제로 유도의 조준호 선수가 8강전에서 일본의 에비누마 마사시 선수를 심판 전원 일치 판정으로 이기고도 일본의 항의 한번에 번복될 정도로 일본의 국제적 영향력은 막강하다.

과거에는 약소국에 불과했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현직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할 정도로 성장했다고는 하나 아직은 몇몇 엘리트에 의존하는 느낌이다. 특히 의료분야에서도 과거 신종플루 유행시 타마플루를 확보하기 위한 국제간의 치열한 경쟁이 있었듯이, 이제는 특정 질환이 발생하면 수 많은 여행객을 통해 비행기를 타고 순식간에 전세계로 확산되는(pandemic)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먹는 식품의 원자재가 전세계에서 수입되고 있음을 생각해도 더 이상 우리의 노력만으로 우리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또 앞선 의료기술을 개발해도 국제적인 경험이 없이는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없다. 고지혈증 약인 심바스타틴(Simvastatin)의 경우 일본이 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MSD와 협력과정에서 MSD가 먼저 특허등록을 해 손해를 본 경우이다. LG생명과학에서 개발한 항생제인 '펙티브'가 해외 파트너와의 문제로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한 것과 같이 공공의료 또는 민간 기업의 문제 모두 국제적인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가 없이는 정당한 대접을 받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6.25전쟁의 어려운 시기에 지금의 국립의료원인 메디컬 센터를 세워준 유럽국가나 국내  젊은 의사들에게 선진의료를 접하게 해준 미국의 도움이 우리나라 의료 발전에 토대가 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가 국제기구를 도와 개발도상국의 실정에 맞는 지속 가능한 의료기술과 관련지식을 해당국가 전문의료인들이 익히고 표준화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이는 결과적으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지난 13일 WHO수장으로 많은 업적을 남긴 이종욱 박사를 기념하고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이종욱글로벌센터’가 서울대에 설립되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참석한 가운데 심포지엄을 개최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무척 기쁜 일이다. 글로벌 센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교수들이 염원하는 사업의 순위가 국제 기구와의 협력활동, 국가정책연구와 자문, 보건의료 인력교육(초청 및 파견), 개발도상국 보건의료 시스템 개선이라는 점은 매우 적절한 판단으로 생각된다.

이종욱글로벌센터를 시작으로 보다 많은 정부 혹은 민간 기구들이 만들어지고 아프리카 '수단의 슈바이처'로 불리며 추앙 받는 이태석 신부님 같은 분의 뜻을 이어받는 각종 사업들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제 더 많은 한국의 젊은 의료인들이 국제 기구, 글로벌 기업, 각종 민간 봉사단체 등에서 활동하면서 새로운 질환으로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할 때, 우리의 선진 의료기술을 앞세워 도움을 주고 세계 곳곳에서 한국인의 따뜻한 마음과 의술을 전파해 국가의 격을 높이는데 앞장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현석은?

1986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학사1994년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수료 및 전문의1998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박사2006년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 이사2011년 광운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대학원 의료커뮤니케이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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