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의료계와 정부는 건강보험 요양급여기준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해왔다. 의료계는 급여기준의 형평성과 실효성을 주장한 반면 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전제로 일관성 없는 고시 개정을 남발해왔다. 이런 가운데 의료계는 물론 환자들도 불합리한 급여기준으로 인한 피해를 적지 않게 봤다. 이에 <라포르시안>은 의사와 환자 간 라뽀를 해칠 수 있는 급여기준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관련 학회와 정부의 대안을 듣는 코너를 마련했다. 이 시리즈의 제목 '애·정·기'는 '애매한 급여기준을 정리해주는 기사란 뜻이다. 


간암 환자인 K씨는 최근 치료를 중단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K씨는 지난해 8월 의사로부터 간암 3기라며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다. 당시 의사는 K씨에게 약값의 절반 가량이 보험급여로 인정되는 경구용 간암 치료제를 권했다. K씨는 지난 1년 동안 의사가 처방한 약을 복용해왔다. 보험 적용을 절반가량 받았다고는 하나 한달에 140만원이 넘는 약값을 부담하기는 쉽지 않았다. K씨는 결국 약값 마련을 위해 집을 팔고 전세로 이사해야만 했다. 그런데 최근 K씨는 두 가지 뜻밖의 사실을 알게됐다. 그동안 복용해온 경구용 간암 치료제가 신장암 치료제로도 사용되는데 신장암 환자는 같은 약임에도 불구하고 본인부담율이 5%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K씨는 같은 약인데 암 종류에 따라 급여인정이 10배 가까이 차이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복용해온 약의 급여인정기간이 1년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8월부터 약을 복용해온 K씨는 다음달부터는 2배 가까운 280만원 가량의 약값을 매달 부담해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거액의 약값을 부담할 자신이 없는 K씨는 치료중단을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암등록본부가 지난해 국가암등록사업을 통해 산출한 ‘2009년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09년 1년 동안 새롭게 암으로 진단받은 신규 암환자는 19만2,561명으로 이중 간암환자는 1만5,936명(8.3%)에 달했다. 

또한 2009년 전체 암 유병환자 80만8,503명 중 간암 환자수는 위암, 갑상선암, 대장암, 유방암에 이어 5번째로 많은 3만8,920명으로 집계됐다.

높은 유병률에도 불구하고 간암의 생존율은 다른 암에 비해 현저히 낮은 편이다.

지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주요 암의 5년 생존율을 살펴보면 대장암 71.3%, 위암 65.3%인데 비해 간암은 25.1%에 불과하며, 특히 3기 이상으로 넘어가면 간암의 생존률은 10%대로 떨어진다.

현재 말기 간암 환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치료방법은 극히 제한적이다.

세계 최초의 경구용 신장암․간암 치료제인 바이엘의 ‘넥사바(성분명 소라페닙)’는 말기 간암 환자들에게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전신적 항암 요법으로, 주사를 맞기 위해 병원에 내원하는 번거로움이 없고 휴약기간 없이 지속적으로 복용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 항암제처럼 치료주기를 챙길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제한적인 보험 급여기준으로 많은 간암 환자들이 치료를 포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넥사바는 신장암의 경우 지난 2007년 4월 1일부터, 간암은 지난해 1월 1일부터 건강보험급여가 적용됐다.

그러나 신장암 환자들은 약제비의 5%만 본인이 부담하고 나머지 95%는 건강보험의 지원을 받는 반면 간암 환자들은 약제비의 50%만 보험 혜택을 적용 받는다.

넥사바의 간암 요양급여기준을 보면 급여 인정 범위 내에서 투여 시 1정에 1만1,468원(1정당 약제비 2만2,937원)까지 급여를 인정하며 초과하는 약값은 전액 본인부담토록 하고 있으며 급여인정 기간도 최대 1년으로 제한하고 있다.

급여를 인정하는 50% 중 5%(전체의 2.5%)는 환자가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가 실제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약가의 52.5%가 된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해보면 1정당 환자 본인부담액은 1만2,042원에 이른다.

넥사바는 1일 2회, 1회당 2정씩 복용하기 때문에 하루에 부담해야 하는 약가는 4만8,170원이다. 이를 한달로 따져보면 144만5,088원이며 1년에 총 1,758만1,904원을 약값으로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급여인정 기간인 1년이 지난면 이 금액의 거의 두배를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신장암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보험혜택이 50%에 불과한 간암에 비해 신장암은 95%를 지원받을 수 있다. 즉, 넥사바 1정당 간암 환자는 1만2,042원을 부담하는데 비해 신장암 환자는 1,147원만 부담하면 된다.

간암 환자의 1년치 약가 1,758만원에 비해 신장암 환자의 1년치 약가는 167만,4,401원에 불과하다.

같은 약임에도 불구하고 암의 종류에 따라 본인부담액이 10배 이상 차이가 나는 셈이다. 이를 두고 의료계 일각에서는 넥사바의 급여기준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한광협 교수는 “투약 이후 1년 이상 살았다는 것은 약이 환자에게 효과적임을 의미한다”며 “그러나 급여인정 기간을 1년으로 제한하고 있어 환자들이 비용부담 때문에 지속적인 치료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일괄적인 기간제한보다 그 치료제가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고 건강을 유지시키는데 도움이 될 경우 급여 인정기준을 확대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 한해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암 검사는 보험적용을 95%를 해주면서 치료는 제한하는 부분이 너무 안타깝다”며 “환자들이 비용 때문에 약을 못쓰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간학회도 복지부에 간암 치료제의 급여를 개선해야 한다는 내용의 질의를 한 상태다.

간학회 박상훈 보험이사(강남성심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현재 50%만 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비용 때문에 치료를 못하는 간암 환자들이 있다”며 “때문에 올해 초 학회에서 복지부에 넥사바의 전면적 보험허용을 요청하는 질의를 했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도 이에 대한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평원 약제기준부 임상희 차장은 “학회를 비롯해 의료기관 및 환자들로부터 넥사바의 급여를 확대해달라는 민원이 제기되고 있다”며 “심평원은 환자들의 어려운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급여기준 확대에 대한 결정을 심평원이 할 수 없는 입장인만큼 일단 복지부의 논의를 살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복지부는 급여확대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재정적 부담 때문에 고민 중인 상태다.

복지부 보험약제과 김지영 차장은 “간학회에서 제시한 내용들은 사실 꼭 필요한 부분”이라며 “신장암과의 형평성이나 환자 부담에 있어 급여가 확대되야 한다는 것은 해당과 담당 서기관도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급여기준 확대 시점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복지부의 고민에는 재정적 부담이 가장 큰 이유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차장은 “급여기준을 확대할 경우 건강보험재정이 추가되는 부분이라 내부적으로 고민 중”이라며 “일단 확대가 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급여 확대시점을 명확하게 답변 하기는 어렵다”고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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