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영국의 유력 일간지 더 타임스에 독자들의 눈길을 끄는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법 25가지'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당시 기사에 소개된 이상한 법을 보면 ▲돼지 이름을 '나폴레옹'이라 부르면 불법(프랑스) ▲모든 범죄자는 범행 24시간 전에 범죄를 저지를 사람에게 범행 내용 통보 의무화(미국 텍사스주) ▲미혼 여성이 일요일에 낙하산을 타면 구치소에 수감(미국 플로리다주) ▲영국왕이 그려진 우표를 거꾸로 붙이는 것은 반역행위(영국) ▲국회의사당에서 죽는 것은 불법(영국)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을 때 운전자의 눈을 가리는 것은 불법(미국 앨라배마주) 등이다.

실제로 이런 법이 존재할까 싶다. 무슨 이유로 필요할지 도저히 이해 불가한 법도 많았다. 아마도 해당 국가 고유의 문화와 풍습이 반영된 것으로, 예전에 제정된 법규정이 현실에 맞게 개정되거나 삭제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이상한 법’이 만들어졌다. 응급실에서 당직전문의가 직접 진료해야한다는 이른바 ‘응급실 전문의 당직법’(응급의료법 시행규칙)이다. 이 법이 만들어진 취지는 응급실을 찾은 환자가 보다 신속하게 적절한 응급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 취지 아래 2009년 7월 응급환자를 당직전문의 등이 직접 진료토록 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응급의료법 일부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이후  법안심사를 거쳐 작년 6월 말 최종적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여기까지는 그렇게 이상한 법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위법령인 시행규칙과 시행령 개정이 이뤄지면서 이상한 법이 되고 말았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5월 입법예고한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통해 응급실 '당직전문의'는 해당 진료과목 전문의나 3년차 이상 레지던트가 전담토록 했다. 이를 어길 경우 해당 응급의료기관장에는 과태료 300만원이 부과되는 처벌 규정도 포함시켰다. 시행규칙 개정안이 입법예고 되자 가뜩이나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전공의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자 복지부는 대한병원협회와 논의 끝에 ‘레지던트 3년차 이상’이란 조항을 없앴다. 그 대신 당직전문의 ‘온콜’(on-call) 체계 구축과 호출요청에 불응하면 면허정지라는 처벌 조항을 담아냈다. 논란 끝에 이 시행규칙 개정안은 지난달 31일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이달 5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복지부는 개정 시행규칙이 시행되면 공휴일과 야간에 응급환자진료가 강화돼 국민들이 보다 빠르고 적절한 응급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당직전문의 온콜 체계를 통해 응급환자가 신속하게 전문의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는 점을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개정 시행규칙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개정 시행규칙에 포함된 당직전문의 온콜 체계는 이미 일선 병원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해 오던 시스템이다. 복지부는 이를 의무화하고, 어길시 처벌 규정까지 신설했다. 당초 복지부는 응급실에 당직전문의가 상주하는 방식으로 시행규칙을 개정하려 했다. 그러나 전문의 인력이 부족한 응급의료기관이 많다는 현실을 고려해 원외대기를 인정하는 온콜 시스템을 강제화 한 것이다.

앞으로 이 법이 시행되면 응급의료기관에 소속된 전문의들은 자신의 당직 근무 때마다 적당한 시간 내에 응급실로 달려올 수 있는 지근거리에서 항시 대기해야 한다. 진료과별로 전문의 인력이 2~3명, 혹은 1명에 불과한 지방 응급의료기관의 전문의는 낮에는 외래진료를 보고 야간과 공휴일에는 항상 지근거리에서 온콜 대기 상태가 된다. 거주·이전의 자유마저 제한된다.

당직 전문의가 온콜을 받고 응급환자를 직접 진료하기까지 시간 기준도 현재로선 불명확하다. 복지부 장관은 국회 업무보고에서 ‘1시간 이내 개념’이라고 말했지만 복지부 측은 뒤늦게 환자의 상태에 따라 시간 기준은 달라질 수 있다는 모호한 입장이다. 지금으로선 온콜 이후 당직전문의가 응급환자를 직접 진료하고 치료가 잘되면 괜찮지만 만일 치료 결과가 나쁘면 제때 온콜에 응했는지 여부를 둘러싼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불가항력적 결과에도 환자나 보호자가 온콜 대응이 부적절했다며 의료분쟁을 제기할 소지도 있다.   

온콜 여부를 누가 판단해서 당직전문의에게 요청하느냐도 불분명하다. 복지부에 따르면 인턴과 레지던트를 포함한 당직의사의 의학적 판단에 따라 당직전문의에게 응급환자 진료를 요청할 수 있다. 어차피 개정 시행규칙이 적용된 이후에도 인턴이나 레지던트가 응급실 근무의사를 도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이 과연 타과 진료 여부를 판단해 적극적으로 당직전문의에게 온콜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잘못하면 동료 의사가 먼허정지 처벌까지 받을 수 있는 상황인데. 혹은 그 반대로 응급환자의 상태와 상관없이 당직전문의에게 온콜을 남발할 소지도 있다.

응급의료법 개정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려면 응급실에 당직전문의가 상주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응급의료기관이 전문의 인력 채용을 늘려야 한다. 하지만 병원의 인건비 부담이 너무 커지기 때문에 이를 적용할 수 없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그런 문제 때문에 비현실적인 당직전문의 온콜 의무화와 처벌 규정이란 꼼수를 도입한 듯 싶다. 

문제는 당직전문의 온콜의 세부 기준도 없이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개정 응급실 당직법이 시행되면 적지않은 혼란과 갈등을 초래할 것이란 점이다. 법규정 자체가 꼼수다보니 이미 일부 병원들은 불명확한 법규정을 이용한 편법적인 대응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직표에만 전문의를 포함시켜놓고 실제론 기존 방식대로 응급실 근무를 설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시민단체들의 반응도 별로다. 당직전문의 직접 진료 규정이 생겨도 병원 내에 상주하지 않는다면 응급상황에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기존 관행만 되풀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법규정은 존재하되 누구도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보는 ‘이상한 법’이다. 오직 복지부만 개정 시행규칙이 별 문제가 없단다. 답답한 노릇이다. 글머리에서 영국의 더 타임스가 소개한 이상한 법 가운데 빠뜨린 게 있다. 바레인에서는 남자 의사가 여자의 음부를 검진하는 것은 합법이나, 똑바로 쳐다보면서 검진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래서 반드시 거울로 반사된 모습을 보고 진료해야 한다는 법이 있단다. 응급실 전문의 당직법도 이 법규정 만큼이나 이상하고 모순된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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