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당 100시간' 넘는 살인적 근무시간 시달려…"자살과 과로사, 종이 한 장 차이"

지난 7일, 경기도에 위치한 모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던 전공의 A씨의 장례식이 조용히 치러졌다. 현재로선 그가 무슨 이유로 사망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유가족이 알리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10일 대한전공의협의회에 따르면 한 의사가 의사커뮤니티에 젊은 의사(전공의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병원 내에서 갈등이 있었다는 글을 올렸다.

본지가 직접 해당 대학병원에 확인한 결과, 이 병원의 마취과 전공의 3년차 A씨가 지난주 사망했다. 유족들은 A씨가 근무해왔던 병원 장례식장에서 지난 7일 발인을 마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관할 경찰서에 아직까지 의사 사망 사건이 접수된 사항이 없는 점으로 미뤄 유가족은 사건 확대를 원치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대학병원은 지난 2003년에도 전공의 과로사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 병원이다.

당시 이 병원에서 가정의학과 전공의로 근무하던 전공의 K씨는 업무를 시작한지 한달만에 심근경색으로 돌연사했다. 유족들은 K씨가 응급실 당직과 입원환자 주치의 등의 업무를 맡으며 적정한 휴식없이 살인적인 근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려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고 주장했고,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원들이 지난달 14일 오후 국립중앙의료원 대강당에서 열린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개정 공청회장에서 응급실 당직전문의를 3년차 이상 전공의로 규정한 개정안에 반대하는 침묵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같은 수련의 자살이나 과로사는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지방의 한 국립대학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1년 전에도 우리 병원 신경외과 인턴이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는데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례도 많을 것”이라며 “매일 2~3시간 쪽잠을 자면서 인격 모독을 수시로 받다보면 우울증이 오기 마련이다. 자살과 과로사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토로했다.

법무법인 세승 김선욱 변호사는 “몇년 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근무하던 전공의 자살 사건을 맡았는데 병원 측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가 2심에서 겨우 수천만원에 합의된 적이 있다”며 “전공의들이 병원 내에서 겪는 직업성 스트레스 및 업무강도 등과 자살에 대한 상관관계는 깊은 편이지만 규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는 근로자의 과로사를 규명하는 기준으로 산재보험법(제 39조)을 따르고 있지만 과도한 업무량에 대해 구체적으로 예시하진 않고 있다.

특히 만성적 과로는 근로자의 업무량과 업무시간이 발병전 3일 이상 연속적으로 일상업무보다 30% 이상 증가되거나 발병 전 1주일 이내에 업무 양, 시간, 강도, 책임 및 작업환경의 변화 등이 일반인이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로 변화했을 때로 두루뭉술하게 규정하고 있다.

반면 일본 과로사 기준을 보면 사망한 시점 최근 1개월 내에 주 100시간 또는  6개월 간 주 80시간에 상당하는 근로시간을 명시해 놓았다. 

대전협 안상현 학술이사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 과로사 기준은 업무량 등이 명확하다”며 “이에 일본은 의사의 과로사 현황을 공개하고 있고, 최근 현황을 보면 자살도 과로사로 인정된 사례가 여럿 있다”고 강조했다.

안 이사는 “미국은 환자 사망으로 인해 전공의 근무시간이 바뀌었지만 일본은 전공의가 사망해 근로시간이 바뀌는 추세”라며 “우리나라도 과로사 기준에 대한 변화와 전공의 적정 근무시간 보장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대전협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 1992년부터 2006년까지 총 17명의 의사가 과로로 사망했고, 이 중 자살자도 6명이 포함됐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34.6세다.

일본소아과학회는 지역소아센터 기준으로 전공의 근무시간을 주당 최대 56시간 이내, 주 1회 휴무로 정해 놓고 있다.

한편 대전협은 전공의 A씨 사망과 관련해 유가족이 원할 경우 산재 보상 등 적극적인 지원을 벌일 계획이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