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의료계와 정부는 건강보험 요양급여기준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해왔다. 의료계는 급여기준의 형평성과 실효성을 주장한 반면 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전제로 일관성 없는 고시 개정을 남발해왔다. 이런 가운데 의료계는 물론 환자들도 불합리한 급여기준으로 인한 피해를 적지 않게 봤다. 이에 <라포르시안>은 의사와 환자 간 라뽀를 해칠 수 있는 급여기준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관련 학회와 정부의 대안을 듣는 코너를 마련했다. 이 시리즈의 제목 '애·정·기'는 '애매한 급여기준을 정리해주는 기사란 뜻이다. 


서울에서 자영업을 하던 K씨(남.57세)는 최근 만성신부전증으로 신장이식 수술을 받았다. K씨는 신장이식 후 혈액검사 결과, CMV antigenemia(혈액내 CMV 항원 검출)가 확인돼 망막염 등의 CMV 감염 질환이 우려되는 상황. 의사는 K씨에게 2~3주 정도 입원해 주사제 투여를 받으며 치료받을 것을 권했다. 장사 때문에 입원이 부담된 K씨는 통원치료 여부를 물어봤으나 의사는 주사제와 성분과 효과가 비슷하고 외래에서 처방을 받을 수 있는 경구용 약이 있기는 하지만 급여기준이 에이즈 환자에게만 한정돼 있어 주사제 밖에 쓸 수 없다고 답했다. K씨는 어쩔 수 없이 가게문을 닫고 입원할 수 밖에 없었다.

포진바이러스과에 속하는 CMV(Cytomegalovirus, 거대세포바이러스)는 단순포진바이러스와 달리 배양세포에 종특이성(種特異性)이 강하고 사람태아섬유아세포에서만 증식한다.

구미에서는 CMV 감염으로 인한 질환 발생빈도가 높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임부의 대부분의 항체양성이기 때문에 성인의 95% 이상이 잠복상태로 유지될 뿐 질병 발생빈도는 낮은 편이다. 다만 백혈병, 암, 면역부전증, 장기이식 후 면역억제제를 투여할 할 경우 잠복상태가 재활성화돼 망막염, 감염, 대장염 등의 질환을 야기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국내 장기이식 환자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어 CMV 치료제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KONOS)의 연도별 장기이식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신장, 간장, 췌장, 심장, 폐 등 5개 장기이식 건수는 총 3,027건으로 지난 2008년 2,210건, 2009년 2,365건, 2010년 2,489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이중 가장 많은 이식이 이뤄진 신장이식의 경우 2008년 1,144건, 2009년 1,244건, 2010년 1,291건, 그리고 2011년에는 1,642건으로 늘었다. 

CMV 질환을 예방․치료하기 위한 치료제는 'Ganciclovir' 주사제와 'Valganciclovir' 경구제가 있다. 두 치료제는 성분과 효능이 거의 비슷하지만 급여기준에는 큰 차이가 있다.

현행 급여기준에 따르면 Ganciclovir 주사제는 AIDS 환자를 포함한 면역장애환자의 생명 또는 시력을 위협하는 중증 CMV 감염질환의 치료 및 CMV 질환 감염 위험이 있는 장기이식환자의 CMV 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장기이식 환자의 경우 ▲장기이식 후 혈액 내 CMV 항원 검출이 1회 이상 확인된 환자 ▲장기이식술 전 공여자가 CMV 양성이고 수혜자가 음성인 경우 ▲장기이식술 후 면역억제제로 ALG, ATG 또는 OKT3를 투여한 경우 급여를 인정받는다.

반면 경구제인 Valganciclovir은 AIDS 환자의 CMV 망막염 치료 또는 CMV 질환 감염위험이 있는 고형장기 이식환자(단, CMV 양성인 자로부터 장기를 이식받는 CMV 음성환자)에서의 CMV 질환 예방목적 이외는 사용할 수 없다.

즉, Ganciclovir 주사제는 AIDS 환자 뿐 아니라 모든 면역장애환자에게 쓸 수 있으며 장기이식 후 면역 억제 유도치료를 받는 환자에게도 급여가 허용되는 반면 Valganciclovir 경구제는 망막염에 걸린 AIDS 환자에 한해서만 쓸 수 있다.

 

CMV감염 질환 치료제. 사진 왼쪽이 Ganciclovir 주사제, 오른쪽이 Valganciclovir 경구제.

의료계는 CMV 예방․치료제의 급여기준이 국내 여건과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구용 치료제의 급여기준이 지나치게 축소돼 있어 장기이식 환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감염내과 이상오 교수는 “해외의 경우 CMV 음성인 경우가 많지만 우리나라는 대부분 양성이라 장기이식을 받는 CMV 음성환자는 거의 없다”며 “급여기준에서 ‘장기이식술 전 공여자가 CMV 양성이고 수혜자가 음성인 경우’는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경구용 치료제의 급여를 제한하는 것은 글로벌 기준과도 맞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이상오 교수는 “Ganciclovir 주사제와 ValGanciclovir 경구제가 거의 효과가 동등하다는 논문이 많다. 미국과 유럽 등 해외에서는 이미 가이드라인에 따라 경구용 치료제을 쓰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못쓰는 상황”이라며 "오히려 국내 CMV 치료에 관한 논문을 해외에 발표하면 해외 리뷰어들이 한국의 급여기준은 왜 이러냐고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CMV 질환 환자의 경우 외래를 통해 통원하면서 치료가 가능하지만 제한된 급여기준으로 불가피하게 입원을 하고 있다”며 “경구제도 주사제와 마찬가지로 급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CMV 경구용 치료제의 급여기준을 제한하는 것은 정부가 재정에 부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대한감염학회 엄중식 보험이사(한림대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는 “심평원이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전체적인 재정 추계에 의한 의료비 부담을 제일 먼저 생각한다”며 “급여기준을 확대할 경우 사용량이 늘어나 재정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 급여 확대에 소극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엄 이사는 “감염학회에서 이미 2~3년 전부터 CMV 경구용 치료제의 급여를 확대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지만 아직까지 시정이 안되고 있다”며 “보건복지부가 이에 대한 최종 결정을 하지 않는 이상 속수무책 기다릴 수 밖에 없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환자들의 불만도 쌓여가고 있다.

엄 이사는 “주사제만 보험급여가 되기 때문에 환자가 안정이 돼도 계속 입원해야 한다”며 “주사제를 투여할 경우 환자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보통 유도요법 3주, 유지요법 3주 등 총 6주간 입원하기 때문에 환자들의 불만이 높다”고 전했다.

하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비용 효과를 고려할 때 급여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심평원 관계자는 “장기이식술 전 장기 공여자가 CMV 양성이고 수혜자가 양성인 경우 예방적으로 Ganciclovir 주사를 투여하는 것은 의학적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용 효과 등을 고려할 때 보험급여를 인정하기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치료제 급여기준에 있어 주사제에 비해 경구용을 우선하는 것이 기본원칙”이라며 “그러나 CMV의 치료제의 경우 공교롭게도 경구제가 비싸다보니 이같은 현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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