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석의 진료실 단상>

모두가 다 알다시피 지금 의료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6월 한달 동안 정부와 의료계는 포괄 수가제를 포함한 여러 안건을 가지고 충돌하다가 7월 1일부터 전면 시행에 들어가면서 포괄수가제 7개 질환에 대한 파업을 가까스로 피했다. 그 과정에서 보건복지부의 한 과장은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의협 회장의 사퇴를 요구했고 의협은 해당 과장의 파면을 요구했다.

의협 회장과 인터뷰를 한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보건복지부와 대화채널은 두 개가 있었는데 보건복지부에서 한 쪽을 무례한 방식으로 먼저 끊자 나머지 한 채널은 의협 측에서 깨뜨려 최근엔 완전히 단절되었다고 한다. 또 정몽준 의원이 중재안을 내놓아 수술연기 결정은 철회되었지만 정작 정부는 중재안에 대해 아는 바 없다는 입장인 것 같다. 마치 두 진영이 전쟁을 벌이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지금 상황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과연 정부와 의료계의 관계는 적인가 동지인가 하는 점이고 둘째는 승리를 거둔 쪽이 과연 승자인가 하는 점이다. 우선 의료계와 정부 모두 국민 건강을 위해 그 존재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설령 아무리 미워도 정부와 정부 산하 기관의 도움 없이 의료계가 단독으로 진료에만 전념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현장에서 뛰는 의사들이 없어도 정부가 의료 시책을 펼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답은 간단해진다. 다시 말해서 국민 건강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는 두 주체의 불화는 심각한 팀워크의 장애를 유발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 역시 첫 번째 문제의 연장선에 있다. 어느 쪽이 승리를 하더라도 상대방이 상처를 받으면 그 후유증은 매우 심각해진다. 실제로 의약분업으로 인한 갈등 이후 정부와 의료계 사이에 놓인 심각한 불신은 불필요한 갈등과 이로 인한 비효율성을 유발해 왔다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역사를 보면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유방과의 싸움에서 늘 승리하였던 항우는 그 잔인성으로 인해 민심을 잃었고 결국 마지막 ‘해하 (垓下) 의 전투’에서 패하게 된다. 테무진과 의형제를 3 번이나 맺었던 자무카는 몽고족의 지도자 자리를 놓고 훗날 징기스칸으로 불린 테무진과 싸워 승리를 거두지만 민심을 얻는데 실패해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흔히 말하는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전쟁에서는 진 경우이다. 지금이 어느 땐데 수 천년 전 이야기를 하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현대 사회에서도 치열한 경쟁 끝에 인기 있는 기업을 인수 합병하는데 성공한 기업이 피인수 기업과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몰락의 길로 가는 예는 그리 드물지 않다. 오히려 승자 없이 양측 모두 손해보다는 점에서는 후자가 더 적합한 사례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의료계와 정부 어느 쪽도 상대방의 도움이 없이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우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설득시켜서 공동의 목표를 향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그런데 승리에만 집착할 경우 왜곡된 자료를 이용해서라도 자신의 입장만 홍보하고 상대방의 주장을 무시하는 것을 능력으로 착각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일단은 정부의 책임이 좀 더 커 보인다. 의사들이 신명 나게 일하도록 유도하는 효율적인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정부의 임무인데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자극으로 문제를 확산시킨 측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의료계가 정부와의 모든 대화를 차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우리의 경우 군사독재 시절을 거치면서 타협은 비굴하고 사악하며 선명함은 정의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온 면이 있다. 그러나 의료는 정권 교체와는 다른 문제이다. 의료 분야의 정책은 그 결과에 따라 전 국민이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다양한 직역들이 끊임없이 소통하고 협조해야만 최선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의료계에서도 강력하고 선명한 투쟁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고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앞으로 고령화 사회가 도래하면 국민들의 의료에 대한 욕구와 의료비는 증가하게 마련인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료계와 정부가 합심단결 해도 쉽지 않은 문제이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갈등 속에서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공식적인 채널도 좋고 개인적인 채널도 좋다. 오히려 사적인 자리가 더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대화하고 설득하는 노력 자체만으로도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고 그러면 각자의 입장에서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책이라도 찾아서 합의를 하고 협조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잘못된 의료정책 하나가 얼마나 많은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가를 생각하면 정책 하나하나를 놓고 고민하고 대화하고 검토하는 노력이 절실함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과거 미국 모든 주에서 낙태는 불법이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초반부터 뉴욕, 캘리포니아, 워싱턴, 알래스카, 하와이 5개 주가 낙태를 합법화하면서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거 때마다 중요한 이슈가 되는 것은 그들이 신속하게 정책을 집행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일방적인 정책이 가져오는 승자의 저주가 얼마나 무서운 줄 잘 알기 때문이다.

최소한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정책을 추진할 때는 반대를 물리치고 빠른 시간 안에 정착시키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대화와 설득을 통해 고민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수 없이 반복해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는 것이 훌륭한 공직자의 자세인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정부와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고 진솔하게 대화하고 고민하면서 시행착오를 줄여나가는 모습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현석은?

1986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학사1994년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수료 및 전문의1998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박사2006년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 이사2011년 광운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대학원 의료커뮤니케이션 박사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외부 필진의 글에 대한 다른 생각이나 의견을 보내주시면 적극 반영토록 하겠습니다(bus19@rapportian.com). 혹은 기사 본문 하단의 '독자 첨부뉴스'를 통해 반론이나 의견을 게재할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