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수의 가슴앓이>

결국 포괄수가제는 정부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의사협회는 체면을 완전히 구기고, 실리도 못 찾은 형국이 되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속단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이번 문제는 누구나 예견하듯이 포괄수가제 확대를 위한 전초전 성격일 뿐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포괄수가제를 7개 질환에 묶여서 확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고, 의사들은 포괄수가제는 ‘악(惡)’이라는 경직된 사고에서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지만, 전면 시행을 막을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래서 쉽게 누가 이기고, 졌다고 얘기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우리 의사들은 차분히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면서 고독해질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에서 의사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100여년의 한국 의료

서양의학에 기초를 둔 현재의 의학 체계는 1880년대 미국의 선교사들에 의해 주로 이루어진다. 알렌(H.N. Allen 1858~1932)을 비롯한 헤론(John W. Heron 1958-1890), 에비슨(Oliver R. Avison 1860-1956) 등은 의사로서 선교의 목적을 가지고 우리나라에 오게 된다. 의사이자 선교사인 셈이다. 이들은 인원도 적었고, 주로 궁중의 주치의로서 활동이 많았으며 민간에서는 제한된 의료사업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을 침탈한 일본 제국주의는 겉으로는 조선의 문명화를 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미개한 조선 사람들에 대한 식민지 교육으로 일관하였고, 고등교육을 등한시하였다.

▲ 1921년 일제강점기 당시 경성부가 주도한 ‘파리 박멸운동’ 포스터. 서울대병원 역사문화센터 자료

의학 분야에서도 고등 의학교육과 장기적인 보건정책 수립은 만들어지지 않았고, ‘조선 사람들을 문명화시키고 위생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게(조선총독부 1913)’ 하는 것이 보건정책의 목표였다. 이 당시 보건의료의 정책 목표는 ‘파리 잡기’나 ‘쥐잡기’와 같은 것이 중요하게 자리 잡을 정도였다.

의사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나와서 아무런 제재 없이 개원을 하고 돈을 벌 수 있었다. 지역의 보건의료 문제를 조직적으로, 혹은 국가와 협력해서 해결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1920년대 영국에서는 의료전달체계와 일차의료의 중요성을 담은 ‘도슨 보고서(도슨 리포트, 1921)’가 나왔고, 1930년대를 거치면서 복지 증진과 국가적 차원의 의료 정책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 결정판이 1942년 영국에서 출판된 ‘비버리지 보고서(Beveridge Report, 1942)’였고, 전 유럽에 퍼지면서 지금 서구 세계의 보건의료 시스템이 자리 잡게 된 것으로 동시대 한반도와는 거리가 먼 역사를 가지고 있다.

보건의료 정책이 미비했던 것은 해방 후 미군정 때도 마찬가지였고, 개발경제 시대인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는 조금씩 인식이 달라진다. 소득이 없어서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서민들을 위해서 박정희 정부는 의사들에게 공적 건강보험을 강요해서 실행한 것이 1977년이다. 의사 수도 많아졌으며, 대형병원과 동네의원들의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 같은 경쟁이 심화되자 의사협회가 정부와 손잡고 의료전달체계를 시행하려고 적극적으로 했던 것은 1989년의 일이다. 아마 1977년과 1989년의 정책 시행은 의사들이 의료를 공적인 것과 연결하고자 했던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일이 아니었나 싶다.

대한민국의 의사는 무엇인가?

이 물음은 결국 대한민국을 사는 의사들의 정체성 문제이다. 앞서 짤막하나마 살펴본 역사 속에서 의사들은 국가와 혹은 지역사회와 공적인 관계를 맺어보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지금까지 의사들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나와서 자신의 힘으로 개원을 하고,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수입을 올리는 것만이 주된 역할인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의사들의 모임에서 주된 대화는 환자가 늘었느니, 줄었느니 하는 것과 그에 따른 수입이 어떻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지역에 사는 아이들의 예방접종률이 떨어졌으니 문제라거나 건강관리가 안 되어 고혈압 유병률이 지속적으로 늘어나서 지역 보건 차원에서 어떻게 해야 한다든지 이런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물론 외국의 의사들도 수입을 걱정하기는 하지만 뭔가 우리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최소한 우리처럼 의약분업이나 이번 포괄수가제 논쟁에서처럼 국민들에게는 자신들의 이익만 지키려는 이익집단으로 비치지는 않는다. 외국의 의사들은 국민들의 건강 파수꾼으로서 존경받는 직종으로 항상 순위에 올라있다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한국의 의사들에게는 무엇이 부족한가 되물어보게 된다.

필자가 의료를 알게 된지 25년 넘는 그 짧은 기간 동안 숱한 의료 문제로 갈등을 겪어왔던 것을 기억한다. 굵직한 것만으로 보면 1995년 김영삼 정부 때의 ‘주치의 등록제도’, 1998년 김대중 정부 때의 ‘단골의사제도’와 2000년의 의약분업 사태, 2011년 이명박 정부의 ‘선택의원제도’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전국민건강보험이 지속되는 것 빼고는 제대로 의료개혁이 이루어진 적이 없다.

현상적으로만 볼 때는 마치 의사들이 사사건건 정부의 정책을 반대한 것으로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의사들은 100여 년 동안 몸에 밴 관성에 의해 정부의 정책을 바라본 죄 말고는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여러 자료를 들추다 보면 김영삼 정부 때의 주치의제도 시행에 대해서 “의사협회를 비롯한 의사들의 조직적 반대로 시범사업조차 무산된” 정책으로 평가되는 것을 여기저기서 찾아 볼 수 있다. 누가 먼저 썼는지는 모르지만 한결같이 베껴서 쓴 듯 똑 같다. 현상만 보면 맞는 말이다.

의사협회는 이 정책을 적극적으로 반대했고, 시범사업이 이루어지는 것조차 방해를 했으니까. 하지만 이러한 의료 정책을 둘러싼 배경을 들여다보자는 게 이 글의 핵심이다. 생각해야 할 첫째는 의료 개혁을 위해 공적 재정이 얼마나 준비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과거 30년 전부터 지금까지도 어떠한 정부의 의료 정책도 재정을 충분히 확보하면서 시행하고자 했던 적이 없다. 주치의제도가 됐건, 최근의 선택의원제가 됐건 말이다.

이러한 재정 문제가 해결이 안 되니 의사들은 또 자신들을 쥐어짜서 선심성 정책을 펴려는 게 아닌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둘째는 의사들의 정체성이다. 위에서 살펴 본 대로 한국의 의사들은 오랫동안  자신의 힘으로 병원을 만들고 운영하면서 수입을 얻어왔으며, 지역에서 공적 의료의 역할을 하라고 계약을 맺거나 요구받은 적도 없었다.

오래도록 자영업자 정신이 몸에 배었고, 선배 의사에게서 후배 의사에게로 대물림됐던 것이다. 이러한 자영업자 의식 속에 공적 의료란 비집고 들어올 수가 없었다. 그것은 관행이었지, 의사들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마치 아이들의 잘못이 부모와 사회의 잘못도 될 수 있는 것처럼.

의사의 정체성을 재확립하기 위한 제언

의료는 그 나라의 유기적인 관계의 산물이지, 의사들 일방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의료 정책의 변화를 바라볼 때 정부와 정치인, 국민들과 시민단체, 그리고 의사들 3자 관계에서 누구에게 요구하기 보다는 우리 의사들이 먼저 바꿔나갔으면 좋겠다.

공공의료란 게 별 거 없다. 지금처럼 열심히 의료 행위를 하면서 공적인 관계를 조금씩 만들어 가면 될 일이다. 지역에서, 혹은 해외에서 의사들이 좋은 뜻을 가지고 의료봉사를 하는 것은 우리 의료를 개혁하는 일이 아니다. 의료개혁이란 법을 통해 한 나라의 의료 체계가 구조적으로 바뀌는 것을 말하며, 그것으로 인해 국민들이 지속적으로 건강을 누릴 수 있고, 의료인들은 보람 있게 전문성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것을 말한다.

예방접종을 웹에 올려서 다른 의료기관이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일, DUR 시스템에 참여하는 일, 만성질환관리를 위해 고혈압과 당뇨 환자들을 등록 관리하는 일 등은 귀찮지만 의사들이 좀 더 공적 의료에 다가가는 행위들이다. 더 적극적인 공적 의료라고 하면 우리 실정에 맞는 일차의료의 확립과 의료전달체계를 재정립하는 데 앞장서는 것들을 들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노력을 성과 있게 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의료의 여러 문제들이 같이 논의가 되어야 하고, 정부의 긴 안목과 특히 이러한 정책들을 이끌어갈 재정 확보가 중요하다.

의사들은 정부를 불신하고, 정부와 국민들은 의사들을 불신하거나 오해의 눈으로 바라보는 고리를 끊는 길은 없을까? 가브리엘 지 마르께스의 ‘100년 동안의 고독’에서 부엔디아 가문의 사람들처럼 의사들은 100여 년 동안 열심히 살아왔지만, 결국 고독한 길을 택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의사들의 전문성을 사람들과 교감하면서 보람을 찾으며 살 것인가.

결국 후자의 길은 의료의 공공성을 확대하는 것밖에 없다. 일부의 주장처럼 공공병원을 많이 짓거나 공공병상을 늘린다고 공공성이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사람들의 요구에 맞추고, 얼마나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국민들이, 혹은 정부가 주치의제도를 한다고 해도 두려워하거나 부정하지 말자. 당당히 그 중요성에 대해서 연구도 하고, 문제점도 찾아보고, 그러기 위해서 정부나 국민들이 가져야 할 자세들은 무엇이 있는지 충분히 검토하면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의사협회에서 주치의제도의 반대 논리로 늘 얘기하듯이 좋은 제도이지만 현재의 우리나라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이라면 맞지 않는 현실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는지 연구를 해서 정부에 요구를 하자. 최소한 국민들에게 좋은 의료를 제공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는 정도라도 보여야 국민들도 의사들을 선의의 집단으로 볼 것이고, 존경을 주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의사들 또한 열심히 환자를 보면서도 보람을 찾게 되지 않을까. 그 길에 우리 의사들이 먼저 손을 내밀자.

고병수는?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현재 제주도 '탑동 365일 의원'을 공동 개원해 운영하고 있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에서 보건복지분야 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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