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인터뷰 in터뷰
[in터뷰] '삼성 백혈병 노동자'의 직무관련성을 추적하다김인아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연구교수,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삼성전자 LCD패널 공장에서 일하다 ‘재생불량성빈혈’로 투병해 오던 여성 노동자가 지난 6월 사망했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네명 째로, 삼성전자 생산라인에서 일하다 백혈병 등으로 숨진 56번 째 희생자로 기록됐다. 삼성전자 반도체/LCD 공장의 백혈병 산업재해 노동자 문제가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관련 문제를 다룬 논문이 처음으로 국제학술지에 게재돼 눈길을 끈다. 최근 발간된 ‘국제직업환경보건저널’ 6월 호에는 ‘한국 반도체공장 노동자의 백혈병과 비호지킨 림프종(Leukemia and non-Hodgkin lymphoma in semiconductor industry workers in Korea)’이라는 제목의 논문이 수록됐다. 이 논문은 삼성전자 반도체/LCD 공장의 근무환경과 직업병의 연관성을 규명하는데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난 3일 논문의 제 1 저자인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김인아 교수를 만났다.  


- 이 논문은 어떤 계기로 작성하게 됐나.

“암, 우울증, 피부병 등 산업재해의 종류는 무수히 많다. 하지만 삼성전자 반도체/LCD 공장의 백혈병 산업재해 노동자 사례는 근속년수가 짧고 20대 중후반의 젊은 여성에게 주로  발병했다는 특징이 있었다. 그동안 인정돼왔던 산업재해는 근속년수가 몇 십 년 이상인 사례가 많았기 때문에 삼성 백혈병 사건은 노동자의 근속년수가 짧다는 이유로 병의 직무 관련성을 입증하기 힘들었다. 산업재해의 패러다임이 근속년수 뿐 아니라 특정 화학물질의 노출도, 스트레스, 성별은 물론 개인의 체질까지 여러 요인이 반영돼야 한다는 방향으로 바뀌어가는 시기에 터진 일이라 전문가로서 더욱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 논문에서 질병의 직무관련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을 통해 제보자 자료를 받았다. 사망한 환자가 많다보니 제보자가 환자 본인이 아니라 가족, 친구 등 다양했다. 그래서 나이 성별, 진단명 외 세부적인 정보를 입수하기 어려웠다. 58명의 제보자 중 직업력이 기재되지 않은 사례를 일단 제외하니 17명이 남았다. 17명 중에는 20대 중후반의 젊은 여성이 많았다. 이 환자들을 근무 환경과 대조해 보니 발암물질 노출도가 높은 반도체 웨이퍼 공정에서 주로 일을 했다. 남자들은 발병율이 낮았는데 주로 엔지니어 일을 했다. 여기서 인과관계를 확인하고 발암물질 노출도가 높아서 걸린 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암 중에도 혈액암인 백혈병과 비호지킨 림프종(non-Hodgkin’s lymphoma)으로 좁혀졌다. 복잡한 내용의 논문이라기보다 사실관계를 추적해 가는 작업이었다.”

 

- 직업력이 기재되지 않은 사람들을 연구 대상에서 제외시킨 이유는 뭔가.

 

“연구를 17명의 사례로 좁힐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환자들의 차트에서 직업력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임상의사들은 진료할 때 가족력을 묻는 경우는 많아도 직업에 대해 자세히 묻진 않는다. 현재 직업을 알아도 환자가 일생 동안 해온 일이 더 중요하다. 근무 시간은 몇 시간인지, 어떤 물질을 다루는지, 근속년수는 몇 년 인지 등이다. 학생들에게 수업을 할 때 꼭 직업력을 묻는 의사가 되라고 당부한다. 직업력에 대한 자료가 풍부했다면 연구가 더 원활했을 것이다. 그게 관행이 되면 사회적으로 발암물질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근무환경도 개선될 것이다.”

 

▲ 국제직업환경보건저널

- 삼성 백혈병 사건이 의학계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사망자들 대부분이 젊은 여성들이다. 여성 노동자의 건강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야 한다. 보통 여성의 건강을 논할 때는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이야기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 3월 출간된 <반쪽의 과학>이라는 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의 산업재해 관련 통계, 보상체계, 예방책은 거의 남성인력이 많은 제조업 위주로 이뤄졌다는 걸 알았다. 삼성전자 반도체/LCD 공장에서 근무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백혈병이나 비호지킨 림프종이 발병하기 전 생리불순이나 불임 등의 전조증상을 경험했다. 그런데도 그런 증상들이 업무와 관련이 있다는 자료가 거의 없었다. 연구자료가 있었다면 전조증상이 나타났을 때 미리 예방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여성의 건강권에 대한 논의가 임신과 출산을 넘어 다양한 방면으로 확대될 것으로 본다.” 

- 준비하고 있는 또 다른 산업재해 관련 논문이 있나.

 

“경찰공무원들의 근무환경과 직업병의 연관성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언어폭력 등 정신적 스트레스 문제에 관대한 편이다. 경찰공무원들은 조직 내 언어폭력 뿐 아니라, 변사체 검사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데도 크게 문제되지 않고 있다. 우울증이나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경찰들이 많지만 정확한 데이터도 없고 건강검진도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그러니 산업재해로 인정받기도 쉽지 않다. 올 하반기부터 관련 논문을 본격적으로 준비할 예정이다.”

 

- 지금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작년 4월부터 고용노동부가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근로자건강지원센터를 지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그래서 작년부터 인천남동공단에 위치한 인천근로자건강지원센터에서 무료진료를 하고 있다. 소규모사업장은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힘들고 검증하기도 어려운 사각지대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산업재해 예방효과가 있었는지 올해 대구와 창원에 근로자건강지원센터가 생겼고 내년에 다섯 개가 더 생긴다고 들었다. 직업환경의학이 복지 시스템과 맞물려 기능을 한다는 게 꽤 고무적이다.”

박소희 기자  lifegoeson@rapportian.com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소희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icon추천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