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의 현안브리핑>

최근 대법원은 가톨릭대 여의도 성모병원이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임의비급여 과징금 부과 및 환수 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환자에게 충분한 설명 및 동의를 구하고 의학적 유효성 등의 요건을 갖출 경우 예외적인 인정이 가능하다며 임의비급여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동안 임의비급여 관련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마치 의사들이 큰 범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목소리를 높여 보도를 해 왔다. 범죄라면 반드시 동기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동기도 없이 왜 의사들이 진료비 삭감을 무릅쓰면서까지 이와 같은 의료행위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한 후 보도를 하고 있는 언론매체가 과연 있었는지 반문하고 싶다.

임의비급여란 국민건강보험법상 환자로부터 징수 가능한 급여항목에 대한 본인부담금, 비급여 항목에 대한 비용, 급여기준을 초과하는 경우 인정된 전액 본인부담금 이외에 다른 사유로 환자에게 행하는 비용징수행위를 말한다. 세부적인 임의비급여 유형과 원인으로는 급여기준을 초과한 임의비급여, 허가사항 초과에 따른 임의비급여, 신의료기술 등에 따른 비급여, 심사 삭감에 따른 임의 비급여, 별도산정불가에 따른 임의비급여 등을 들 수 있다.

임의비급여를 적용할 경우 급여기준 개선절차 미비 또는 시급한 환자 등 상황의 불가피성, 안전성과 유효성을 전제로 하는 의학적 필요성을 증빙하는 사례 및 논문 등 의학적 타당성에 대해 의료기관에서 증명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임의비급여 내용과 비용을 충분히 설명하는 등 환자동의절차를 거쳐야 한다.

대법원의 임의비급여 판결은 그동안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 하에서의 급여제도의 모순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행 건강보험제도 하에서 이러한 문제점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이에 대한 개선방안을 모색해 보도록 하겠다.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으로 인한 낮은 보장성

OECD에서 발표한 <2012 국민의료비 통계>(OECD Health Data 2012)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료비에서 공적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58.2%였다. 1995년 38.5%보다는 높아졌지만, 이는 34개 회원국 평균 72.2% 보다 14% 포인트 낮은 수치다. 이는 OECD 국가 중 미국(48.2%)과 멕시코(47.3%) 다음으로 공공재원 비율이 낮은 수치로서 미국과 멕시코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공적의료보장제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를 가진 우리나라의 보장성 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의료행위와 건강보험 관계의 모순

모든 의료행위에 수반되는 비용을 건강보험에서 지원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건강보험 기본정신에 부합되고 요양급여기준 및 유효성․안전성에 맞는 의료행위에 대해서만 건강보험에서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는 건강보험으로부터 급여를 지원받지 못하는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의료행위의 적절성을 인정받지 못한 경우는 불법의료행위로 보는 것은 타당하나, 건강보험의 재정적인 문제 등으로 급여지원을 받지 못하는 부분까지도 불법행위로 취급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다.

건강보험 급여기준의 문제

건강보험은 일반적인 환자의 평균적인 진료에 근거하여 급여기준이 구성되어 있지만 환자마다 신체적 상황이 다르며 의료에 대한 요구 또한 다양한 실정이다.

한 예로 노인 환자나 전신상태가 나쁜 환자의 경우, 약제의 용량을 감소시키거나 증가시켜야 하는데, 현행 건강보험 체계 하에서는 평균 용량을 급여 인정 기준으로 삭감의 잣대로 삼고 있다. 환자의 개인적인 특성을 반영해 용량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가감할 경우 이러한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정상적인 진료행위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최선의 치료를 원하는 환자와 의료진간 풀릴 수 없는 윤리적 갈등을 낳고 있는데 환자의 개인차를 전제한 '맞춤의료'가 가능토록 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실정이다. 이에 합리적인 방향으로 임의비급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개선방안에 대한 방법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건강보험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동안 정부에서는 지속적으로 급여항목을 확충하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재정적 제약으로 인해 급여혜택이 충실하지 못한 실정이다. 이로 인해 전반적인 건강보험제도 기능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확대돼 있다.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필수 영역이나 비용편익 효과가 검증된 의료행위들을 중심으로 급여혜택을 충실화할 필요성이 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수용성을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둘째, 국민건강보험법 및 급여기준을 개선해야 한다. 환자특성 등 의학적 필요성에 의해 급여기준을 초과하여 진료하는 경우 환자에게 비용징수를 인정할 수 있도록 할 필요성이 있다. 의학적 근거가 명확하고 의약품 오․남용 우려가 없는 경우 원칙적으로 급여기준 초과사용 부분에 대해서는 환자가 전액 비용을 부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국민건강보험법 및 급여기준 등에 대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셋째, 심사과정의 투명성 제고가 이루어져야 한다. 심사사례 등에 대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내부심사지침을 공개하고 주요한 심사지침에 대해서는 보복부 고시로 변경하여 급여기준을 명확히 할 필요성이 있다. 아울러 급여기준 등에 대한 심사기준 결정시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전문가 단체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반영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넷째, 임의비급여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법률들의 구조적인 문제와 건강보험 정책상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의료법에서는 의료인의 의무로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반면, 국민건강보험법상에서는 요양급여기준에관한규칙에 의거 요양급여의 일반원칙으로 경제적이고 비용효과적인 진료를 우선시 하고 있다.

이는 두 가지 법이 추구하는 의료서비스의 원칙이 달라 상충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국민건강보험법에서도 급여체계의 상충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행위와 치료재료는 비급여 항목을 정해 놓고 그 외 항목에 대해서는 급여화하도록 하는 네거티브 리스트 체계를 취하면서, 약제의 경우는 급여항목을 정해 놓고 그 외 항목에 대해서는 비급여화 하는 포지티브 리스트 체계를 취함에 따라 혼란을 유발하고 있다. 이러한 급여체계가 의료기술의 발전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데 따른 문제도 임의비급여 문제를 지속시키는 한가지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섯째, 비급여진료비 항목 공개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정부에서는 환자들이 비급여 진료비용을 미리 따져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취지라며 관련법령 개정을 통해 2010년 1월 31일부터 의료기관에 비급여진료비 대상 항목 및 가격 등의 게시를 의무화하도록 했다.

이에 의료기관 개설자는 비급여 대상의 항목 및 그 가격을 기재한 책자, 진료기록부 사본·진단서 등 제증명 수수료의 비용 등을 접수창구 등 환자들이 쉽게 볼 수 있는 장소에 게시하고 있다. 하지만 비급여진료비 공개에 따른 기준과 형식이 갖춰지지 않아 제도 시행 이후 의료기관들이 혼선을 빚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 대한 정보제공 효과도 미미한 실정이다.

수천 항목에 이르는 비급여 진료비 공개로 인해 최선의 진료를 해야 할 의료기관과 환자간의 충돌이 발생함으로서 의료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들의 알권리 보장 차원에서 필수 불가결한 항목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비급여진료비 내역을 고지하거나 시범사업 등을 통해 제도 시행에 따른 불편사항 등이 없는지 등에 대한 제도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언제까지 건강보험제도의 문제점을 일선 진료현장에서 소신껏 진료하고 있는 의사들에게만 짊어지게 할 것인가. 대법원 판결로 현행 건강보험체계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의학적 임의비급여 영역이 존재하고 이를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환자의 소중한 생명을 수호한다는 신념 하나로 묵묵히 환자의 진료에 최선을 다해온 의사들이 불필요한 오해에 휩쓸리지 않고 소신진료를 할 수 있도록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선하는 등 건강보험제도 전반에 대한 조직적인 개선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이재호는?

1985년 한양대 의과대학 졸업2006년 전 제34대, 제36대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2011년 의사협회 의료정책고위과정 간사2012년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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