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전국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이 19대 국회 개원과 함께 드디어 발의된다. 지난 6월 27일 민주통합당 김용익, 은수미, 윤관석 의원, 통합진보당 박원석, 심상정, 정진후 의원이 환자안전과 의료 서비스 질 향상, 고령사회 대비를 위한 ‘보건의료인력 지원특별법안’ 공동발의를 제안하는 기자회견이 국회 정론관에서 있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도래하는 초고령화 사회, 우리의 노후와 건강을 책임질 보건의료인력을 더 이상 시장에 맡기지 말고 범 국가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관리하자는 법안이다.

이 법은 보건의료 관련 수많은 법이 있지만 기존의 법과는 질을 달리하는 획기적인 법안이다. 정부는 그동안 보건의료정책을 수립할 때 건강보험, 의료공급체계, 공공의료, 병상총량제, 시설과 장비 등에 대해서는 많은 계획과 대책을 제시했지만 단 한 번도 보건의료인력 문제를 전면적으로 진지하게 검토하거나 계획을 세운 적이 없다.

병원 매출액에서 인건비 비중이 50%를 차지할 만큼 노동집약산업으로서 보건의료인력이 6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인구대비 보건의료인력은 OECD 국가의 절반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 인력부족으로 보호자가 환자간병을 위해 병원에 상주해야하고, 환자안전사고의 우려가 높다. 이직율이 높아 의료서비스 질 하락이 우려되고, 지방 중소병원에 의사, 간호사인력이 부족해서 의료공백이 생긴다. 이처럼 인력 관련한 문제가 다방면에서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력 문제는 늘 정책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의사인력에 대해서만 몇 차례 검토된 적이 있을 뿐이다, 

작년 3월 정부가 야심차게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을 위한 10대 과제'를 발표했지만 거기서도 인력문제는 ‘인력 양성․공급체계 개편’이라는 소제목 하에 의사 인력이 주로 언급되어있을 뿐, 나머지 인력문제는 ‘의료서비스 수준 향상을 위한 간호인력 수급 및 수가지원체계 개선’이 전부다. 그들의 눈에 의료기관 기능재정립이란 의료시스템과 건물, 시설, 장비만 보이고 거기서 일하는‘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한국 사회가 급속도로 고령화되면서 질병구조의 변화로 인한 보건의료서비스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고, 현재 보건의료기관의 양극화와 지역별 편중으로 인해 수도권을 제외한 많은 지역에서 보건의료인력 수급이 원활하게 되지 않아 환자에게 필요한 양질의 적정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문제가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보건의료기관에 종사하는 보건의료인력 수준으로는 환자 안전과 보건의료서비스의 질을 담보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다. 따라서 보건의료기관에 종사하는 보건의료인력의 원활한 양성과 공급, 근로환경 개선 및 복지향상 등을 통해 고령사회를 대비할 안정적이고 종합적인 보건의료인력지원 정책 수립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보건의료인력지원 정책 수립의 근거인 현행 의료법 등 관련 법령이 이와 관련된 내용이 미비하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강제성이 떨어져 실효성이 전혀 없다. 그런데, 의료기관은 인력관리에 있어 의료라는 특수성에 의하여 다른 조직체보다 엄격한 법률적 규제를 받는 대상이기 때문에 법적, 제도적 정비를 통해서만이 보건의료인력 지원사업이 가능하다. 따라서 반드시 법률적 정비와 함께 문제해결의 주체를 바로 세우면서 중장기적 세부 실행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배경으로 발의되는 인력법은 다음과 같은 새로운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 최근 보건의료 현장의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보건의료기관’과 ‘보건의료인력’에 대한 정의를 최대한 확장해 법 적용의 사각지대를 없애려고 노력하였다. 대상 보건의료기관은 일반 의료기관은 물론 노인복지법, 장기요양보험 관련 장기요양시설, 혈액원 등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했다. 보건의료인력도 의사, 약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의료기사는 물론 안경사, 안마사,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사무직, 영양사, 전기기사, 보일러기사 등 현장 기술직 포함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모든 인력을 포함시켰다. 노동법상 필수공익사업 대상, 의료법상 의료기관평가인증 대상 부서와 직종도 업무의 중요성을 감안 포함시켰다.

둘째, 보건의료인력 지원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분명히 명시하고, 정부가 인력 문제의 현실을 파악하기위해 3년마다 보건의료 인력지원 종합계획과 연도별 시행계획을 수립․시행하고, 인력지원 및 개선에 필요한 종합적 실태조사를 실시하도록 했다. 여기에 임금, 노동조건과 여성, 외국인, 비정규직 직원 등의 현황도 포함하도록 했다. 조사 없이 올바른 정책이 나올 수 없는데 그동안 정부차원에서 제대로 된 인력 종합실태조사를 실시한 적이 없다. 이런 기본사업을 위해 보건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보건의료인력지원 심의위원회’를 설치·운영하고 여기에 정부는 물론 공급자, 소비자, 직종협회, 환자단체, 노조 등 현장 중심으로 구성하도록 하였다.

더불어 보건의료 인력지원 업무를 전담하는 ‘보건의료인력원’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것은 의료기관평가인증제 관련한 현행 의료법 제 58조(의료기관인증) ②인증전담기관과 제 58조의 2(의료기관인증위원회) 를 밴치마킹한 것이다. 현재 보건복지부 산하에 보건의료인력 관련 기관은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과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2개가 있다. 하지만 2개의 기관은 그 설립목적에서 보는 것처럼 보건의료인력 수급 원활화와 인력 관리 및 지원, 노동조건의 개선, 복지향상을 위한 종합적인 업무 수행이 불가능하며, 면허시험 관리(국시원)와 교육훈련(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등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 보건의료 인력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제대로 된 인력 전담기구 설치가 불가피하다. 사실 그동안 의료현장에서의 인력부족 문제가 심각하고, 사회적으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핵심의제로 부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의 해결 주체인 정부는 그것을 담아낼 그 어떤 기구와 조직이 준비되어있지 않았다.

셋째, 정부 차원에서 보건의료인력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과 복지시설을 갖추는데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만들었다. 국가는 보건의료기관이 어린이집, 연수복지시설 등 공동복지시설을 설치 및 운영하는데 필요한 경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 다른 산업과 비교할 때 보건의료산업 60만 종사자가 제대로 교육받고 쉴 수 있는 연수원 하나 없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웬만한 업계에서는 좋은 연수원과 휴양시설을 다 갖추고 있지만 보건의료산업은 전무한 상태이다.

보건복지부는 물론 사용자단체, 직종 협회, 노조 모두가 반성할 일이다. 그리고 보건의료인력의 이직율을 낮추어 장기재직을 유도하기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모색하고, 보건의료인력 지원에 필요한 재정지원, 신용보증지원, 의료수가개선 등 금융 및 세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중소병원과 지역거점병원에 대한 지원을 우선하도록 했으며, 의료기관이 청년 실업자 취업, 고용확대, 근로시간 단축사업을 할 시 적극 지원하도록 하였다.

이런 식의 법안이 처음 시도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중소기업 인력지원특별법(시행 2011,12,8) ▲뿌리산업 진흥과 첨단화에 관한 법률(시행 2012,1,26) ▲항만인력공급체계 개편을 위한 지원특별법(시행 2011,5,19)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시행 2011.10.26]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시행 2008.6.15] 등 타 산업에서 유사한 입법 선례가 많이 있다. 따라서 국회가 열리면 조속한 심의를 통해 연내 법안 통과가 되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저마다 19대 국회 1호 법안을 이야기한다. 실질적으로 국민건강과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보건의료인력문제를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해결하려는 이 법안이 보건복지위원회 1호 법안으로 통과되는게 19개 국회가 민생국회로 가는 첫 걸음이다. 인력법은 여야 구분 없이, 보수진보 구분 없이, 직종 구분 없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국민을 위한 국민의 법안이다. 더구나 국민경제 관점에서도 고용유발 효과 및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보건의료산업에서의 인력확충정책은 국민건강 증진과 함께 일자리 창출 효과도 가장 극대화할 수 있다.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 누가 나를 돌볼 것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을 다시 보자.

이주호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노동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국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 단장과 민주노총 중앙위원, '보호자 없는 병원 실현을 위한 연석회의' 정책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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