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OECD 국민의료비 통계' 보고서가 발표됐다. 이번 통계 보고서에서 몇 가지 주목할만한 사안이 눈에 띄었다. 우선 우리나라 GDP 대비 국민의료비 비중이 2010년 기준으로 7.1%를 기록, 처음으로 7%대를 넘어섰다는 점이다. GDP 대비 국민의료비의 비중이 한 나라의 경제수준에 비해 얼마나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나라가 점차 '건강 선진국'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OECD 평균(9.5%)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또 다른 주목할 수치는 1인당 의료비지출의 증가세가 상당히 가파르다는 점이다.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의 의료비 지출은 연평균 9% 수준으로, OECD 평균 4.5%의 2배에 달했다. 그러나 2010년 현재 1인당 의료비 지출액은 2,035달러(PPP기준, 구매력평가)로, OECD 평균 3,268 달러보다 낮았다.

가장 눈길이 가는 항목은 국민의료비에서 공적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이었다. 통계 보고서를 보면 국민의료비에서 공적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1995년 38.5%에서 2010년 58.2%로 늘었다. 여기서 공적재원이란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기금과 정부지원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가입자들의 보험료를 기반으로 한 건강보험과 정부의 국고지원이 그만큼 늘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2010년 기준으로 국민의료비에서 공적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OECD 평균이 72.2%로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 아직까지 공적재원 비중이 많이 낮은 편이다.

32개 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보다 공적재원 비중이 낮은 국가는 단 3개국뿐이다. 미국(48.2%), 칠레(48.2%), 멕시코 (47.3%) 등이 우리나라보다 조금 더 낮은 수준이다. 한국은 국민의료비에서 공적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보면 OECD 회원국 끝에서 4등쯤 되는 수준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공적재원 중에서 정부지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낮다는 것이다. 앞서 2009년 기준으로 보면 국민의료비 재원구성에서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 부담 비율이 44.7%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가계부담(32.4%), 정부부담(13.5%), 민간보험부담(5.2%) 등의 순이었다. OECD 국가들의 재원 부담율은 우리와 많이 다르다. 사회보장부담이 38.8%로 가장 높고 다음으로 정부부담이 35.6%로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당연히 가계부담은 19.8%에 그쳤다.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아마 2010년 수치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공공의료지출은 더욱 형편없다. 2007년 기준 3.5%로 멕시코(2.7%) 다음으로 최하위였다. 

전반적으로 국민의료비 재원 구성에서 공적재원, 특히 정부지원 부담이 사실상 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에 속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 수명이나 영아사망률 등 전반적인 건강지표는 OECD 평균을 웃돈다. 우리나라의 의료체계가 공적재원보다 민간 의료자원과 재원에 의존에 성장했음을 의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지표가 우리에게 상징하는 바는 커다. 미국은 세계적인 의료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OECD 회원국 중 국민의료비에서 차지하는 공적재원 비율이 우리나라보다 낮은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그러다보니 미국의 GDP 대비 국민의료비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지만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해 의료서비스 사각지대에 놓인 국민이 5천만명에 이를 정도다. 

오바마 대통령이 건강보험개혁법안을 강력하게 밀어붙인 것도 바로 이런 고비용․저효율 의료시스템을 손보기 위한 의지의 반영이다. 무엇보다 미국의 의료보험개혁은 지난 40년간 그 뿌리를 굳건히 해온 신자유주의 의료체계의 종말을 상징한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듣기에 오바마 대통령이 건강보험개혁법을 밀어붙이면서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를 부러워했다고 한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이 부러워한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는 빈껍데기다. ‘전국민 건강보험제도’라는 허울 좋은 수치만 있을 뿐 그 알맹이는 채 영글지 못했다. 무엇보다 한국의 의료정책은 방향성이 없다. 한 쪽에선 의료의 공공성을 강조하면서 또 다른 한 쪽에선 의료의 상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공공의료 역할 강화를 명목으로 보건소의 진료기능을 강화하면서 외국 영리병원 도입을 허용하는 정책이 버젓이 함께 추진된다. 얼핏 들여다보면 외국 의료시스템의 장점만 뽑아다가 국내에 접목시킨 국적불명의 정책이다. 미국식 의료시장주의냐, 영국식 국가의료체계냐를 놓고 찬반 논쟁만 난무한다. 정작 우리의 의료시스템이 그들 국가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점을 무시하고.

이런 일은 의료정책에 대한 철학이 없다보니 빚어진 것이다. 군사정권 하에서 급조된 의료보험제도의 태생적 한계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건강보험제도를 중심으로 우리의 상황에 가장 적합한 의료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한국식 의료체계’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 치열한 고민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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