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만년 전 아프리카에 살던 우리 조상들의 인구가 5천~1만명 정도로 줄어들면서 진화적으로 불가사의한 `병목현상'에 접어들었는데 그 원인으로 전염병이 제기됐다고 사이언스 데일리가 5일 보도했다.

급격히 축소된 집단으로부터 "현대적 행동을 하는" 일부 개체가 출현해 개체수와 거주 영역을 극적으로 확장하고 결과적으로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한 다른 근연종 인류를 몰아냈지만 이런 `병목현상'의 요인은 아직까지 논란의 대상이다.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 대학을 비롯한 국제 연구진은 유전자 돌연변이에서부터 언어와 같은 문화 발달, 대규모 화산 분출 등의 기후변화 등 많은 가설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전염병도 이런 병목현상을 가져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이들은 우리 조상 중 선택된 일부에게서 면역체계와 관련된 두 개의 특정 유전자가 비활성화되면서 대장균 K1과 B군 연쇄상구균 등 병원균에 대해 저항력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들 병원균은 사람의 태아와 신생아, 영아에 패혈증과 뇌수막염 등을 일으킨다.

연구진은 "작은 규모의 집단에서는 단 한 개의 돌연변이도 큰 효과를 일으킬 수 있으며 희귀 대립형질도 높은 빈도로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현재는 기능하지 않는 두 개의 유전자가 사람에게는 있고 근연 영장류에는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영장류는 특히 신생아와 영아에 치명적인 이들 병원균의 표적이 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주 어린 개체의 사망은 집단의 생식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경우 종의 생존은 병원균에 저항하거나 병원균이 숙주를 이기기 위해 사용하는 표적 단백질의 제거에 달리게 될 수도 있는데 10만년 전 병목현상이 일어났을 때는 후자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이들은 특히 면역반응을 조절하는 두 개의 시알산이 비활성화된 것을 지목했다.

이미 알려져 있는 신호수용체(시글렉)인 두 시알산은 인류 진화 과정에서 매우 활발하게 활동한 것으로 보이는 큰 유전자 집단의 일부이다.

연구진은 앞서 다른 연구에서 일부 병원균들이 이런 신호수용체를 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숙주의 면역반응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이들은 또 시글렉-13의 유전자가 현생인류의 게놈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의 최근연종인 침팬지에게는 고스란히 남아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다른 신호수용체인 시글렉-17은 인간에게서 발현되고 있지만 외부에서 침입한 병원균에 대해서는 아무 쓸모없는 단백질을 만들도록 살짝 변형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들 `분자 화석'을 재현한 실험 결과 오늘날의 병원균인 E.콜라이와 B군 연쇄상구균이 이들 단백질을 인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오늘날의 병원균이 아직도 고대 유전자의 면역반응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연구진은 인류 진화 과정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들 유전자를 둘러싼 분자 표지를 분석함으로써 20만~10만년 현생인류의 조상들이 광범위한 병원균의 위협에 맞서 싸웠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들 병원균의 `선택적 청소'에 따라 이들의 개체수는 급감했지만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진 개체, 즉 당시 등장하고 있던 극소수의 해부학적 현생인류만 살아남아 오늘날 인류의 조상이 됐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인류의 진화상 병목현상은 상호작용하는 여러 요인들이 합쳐진 복잡한 결과일 것이다. 종의 분화는 많은 요인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전염병도 그 중 하나일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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