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호프(영국 옥스퍼드대 의대 교수, 상담정신과 전문의)

지난 11일부터 12일까지 이틀간 '의료자원의 정의로운 사용을 위한 윤리'를 주제로 한국의료윤리학회 정기학술대회가 열렸다. 이번 학술대회에는 토니 호프(Tony Hope)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가 참석했다. 그는 1994년 옥스퍼드대에 ‘의료윤리지침’을 처음 도입했고 영국에 의료윤리를 정착시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웰컴 재단 의료인문학연구위원회 초대 회장을 맡았고, 그가 대학교 재학시절 만든 작은 토론 그룹은 영국 NHS(National Health Services)의 임상윤리연구소(Clinical Ethic Laboratory)로 발전했다. 현재 근무중인 옥스퍼드 대학교에 의료윤리연구기관인 '에톡스 센터'(Ethox Center)도 개설했다. 의료윤리학회 학술대회에 연자로 참석한 토니 호프교수를 만나 영국 NHS 개혁과 의료윤리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지난 3월 영국 내 공공의료 개혁안'(Health and Social Care Act)이 의회를 통과했다. 지역 개원의 중심 컨소시움인 'CCGs'(clinical commissioning groups)가 NHS의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 쪽으로 변화가 예상된다. 일부에서는 영국 국민건강서비스의 민영화라는 이유로 반대 목소리가 높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공공의료 개혁안에 따라 오는 2013년부터 CCGs가 일차의료 트러스트 대신 600억 파운드(한화 107조원)의 예산을 받아 1차 의료와 2~3차 병원과의 연계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 때문에 영국의 공공의료 체계가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NHS의 방식은 의료서비스를 공동구매 하는 방식이었다. 내가 세금을 내면 나를 비롯해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사람들도 혜택을 받는 방식이다. 그러나 나와 전혀 상관없는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내가 낸 세금의 혜택이 돌아가는 형태다. NHS로 인한 영국 의료체계의 문제는 병원 문턱이 낮기 때문에 병원은 환자들로 넘쳐난다는 것이다. 2차, 3차 병원의 진료를 원하는 경우 몇 년씩 기다려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CCGs에 시스템을 이양하면 처음부터 2~3차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되는 사람이나 급히 상급병원을 가야하는 사람들을 배려할 수 있다. 소비자를 배려하는 것 뿐 아니라 의료자원의 공정한 분배가 일부 가능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CCGs에 NHS의 기능 일부를 이양한다고 해서 기존의 모든 시스템이 무너진다는 것은 기우다. 오랜 세월동안 만들어놓은 시스템이 있고 NHS에 고용돼 일하고 있는 수많은 인력과 구축된 의료시스템이 있는데 그것이 한순간에 민영화 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NHS는 가장 잘 만들어진 공공의료 모델이라는 평을 듣는다. 국가가 공공의료 시스템을 갖추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갈 것 같은데 비효율적이지 않은가.

 

"NHS가 가능한 이유는 국민들이 성실하게 세금을 내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우 연간 2000파운드(한화 360만원)의 보험료를 낸다. 다른 나라의 건강보험료에 비해 상당히 비싼 수준이다. 그러나 NHS는 지출을 엄격하게 통제한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낸 세금이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쓰이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덕분에 영국 전체 의료비 지출은 GDP대비 7% 수준으로 다른 국가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다. 이는 일반의들이 필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입원진료를 제어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 인두제 방식으로 진료비를 지불하기 때문에 비용지출도 적다.

NHS하면 흔히 생각하는 것이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반의 그리고 병원에 근무하는 월급제 의사들이다. 일반의는 인두제(Capitation)와 기본 진료수당 그리고 예방접종, 자궁경부암 검사, 간단한 외과수술 등에 해당하는 일부행위별 수가를 받는다. 병원에 근무하는 월급제 의사는 병원이 일정 작업량 총액에 대해 보건당국과 계약하고 그만큼의 업무를 달성하는 조건으로 월급을 받는다. 한마디로 일정지역 내에 일정한 시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조건으로 의사에게 돈을 주는 것이다. 당연히 병원 문턱은 낮아지면서도 의료비 지출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물론 병원에 환자들이 넘쳐나고 상급병원에서 특진을 받으려면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몇 년이 걸리는 문제도 있다."

NHS의 CCGs 이양에 반대하는 시위대

- 한국에서도 영국의 NHS를 벤치마킹한 의료시스템을 구축하자는 목소리가 있다. NHS와 같은 형태의 무상의료 시스템을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현재 한국의 의료시스템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정확한 답변을 주기는 어렵다. 많은 사회적 논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스템이라는 것 자체가 언제나 변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 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영국은 1947년 무상의료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정부와 정치인들은 “앞으로 의료 효율성이 높아지면 수명이 늘어나더라도 의료비용 지출은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생각한 영국인의 기대수명은 평균 60세였지만 지금은 83세가 됐다. 의료비 지출도 늘어나 이제는 젊은 세대가 노인세대의 의료비 지출을 부담할 수 있을지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됐다.

영국의 NHS는 국가의 일반재정에서 의료관련 경비를 충당해 모든 국민에게 포괄적인 의료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형태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일단 의료 인력이 되기까지 들어가는 본인부담이 거의 없다. 미국 등 의사가 되기까지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경우 의사 면허를 받고 나면 본전 생각이 날 것이다. 그러나 영국은 학비부담이 없기 때문에 본인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고 졸업 후 사회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의사가 된다. NHS같은 시스템을 만들려면 사명감을 갖고 있는 학생들이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만큼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 인력을 양성하는 것부터 전체적인 진료시스템을 갖추는 것까지 모두 세금으로 해야한다. 재원을 어디서 조달할 것이고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고민해야한다."

토니 호프 교수가 지난 11일 한국의료윤리학회 20차 학술대회에서 강연하고 있다.

   

- NHS는 고령화 사회에 어떤 식으로 대응하고 있나.

 

"영국도 고령화로 인한 문제를 겪고 있다. 특히 의료 분야는 문제가 심각하다. NHS를 처음 시행할 때보다 평균수명이 늘어났고 그만큼 노인성 질환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환자들이 병원에서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학적인 치료 자체가 무의미한 사람들도 병원에 있으려고 하기 때문에 정작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 요양시설에 들어가면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는데 모두 환자가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영국에서는 환자에게 추가적인 비용을 받지 않고 치료를 해 줄 수 있는 한계점은 어디인가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형평성의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추가적인 재원을 마련하거나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나.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NHS를 CCGs에 일부 이양하는 방식을 고려한 것이다. 방법이 약간 변하더라도 국민 건강이 우선이다."

 

- 한국의료윤리학회가 '진료가이드라인'(Good Medical Practice, GMP)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GMP 관련 연구는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 좋은가.

 

"제대로 된 의료행위, 양질의 의료행위를 위해 필요한 것은 의료에 관한 지식과 의료진의 도덕성 그리고 윤리의식이다. 그러나 의료환경이라는 것이 무척 복잡하기 때문에 윤리적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 있다. 그 때 필요한 것이 GMP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한국 사회나 의료시스템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의료인에게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것이 있다. 어떤 것이 환자에게 가장 좋은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 의료진이 환자를 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세한 지침이 있어 의료진과 환자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또 NHS내에 임상윤리연구소(Clinical Ethic Laboratory)가 있어 의료진이 윤리적인 갈등을 하거나 궁금한 것이 있는 경우 문의하면 함께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이런 방법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연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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