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범(제너럴닥터 원장)

“저는 오덕이고 말이 많고 설득적이며 고양이를 좋아하는 30대 독신남성인 일반의입니다.” 

의사가 자기소개를 할 때 자신의 전공이나 전문 분야를 이야기하는 대신 이렇게 소개한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매일 환자를 만나는 것이 즐거운 의사가 있다.  역시 의사를 만나는 것이 기다려지는 환자들도 있다. 바로 제너럴닥터의 의사와 환자들이다.  

김승범 원장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공중보건의 생활을 마친 뒤 지난 2007년 서울 홍대 앞에 카페와 병원이 함게 공존하는 제너럴닥터라는 파격적인 병원을 개원했다. 사소한 일상을 공유하고 싶은 친구 같은 의사가 되고 싶었다는 것이 이유다.

지난 3일 홍대 놀이터 옆 제너럴닥터에서 김 원장을 만났다.


- 병원 디자인, 시스템 모두 특이하다. 제너럴닥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의대를 다닐 때 가정형편이 어려워 어렵게 학교를 다녔다. 그런 환경에서 공부를 하면 당연히 돈 많이 버는 의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은행 빚을 얻어서 말도 안 되는 병원을 차렸다. 본과 2학년 때 의료계가 의약분업 때문에 파업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장충체육관에 의사들이 모였을 때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의사 사회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단상 위에 있는 의사들부터 단상에서 제일 먼 자리에 앉아 있는 의사들까지 있었다. 내 생각에는 제일 뒷자리에 앉은 의사들도 분명 성공한 의사들일 텐데, 의사 사회의 서열이라는 것 때문에 아무 말도 못 하는 것을 보면서 느낀 감정이다. 단상 위에 있는 의사가 되는 것도 싫지만 단상 밑에 있는 의사들 중 하나가 되는 것도 싫었다. 의대를 다니면서도 개인적인 관심은 항상 디자인이었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게다가 의료계의 시스템이 나를 억압한다고 느꼈고 그것을 버틸 자신도 없었다. 또 의사와 환자 모두를 괴롭히지 않는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 방법으로 혼자서 세상을 바꾼다거나 조용히 봉사활동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가 아니라 미친짓을 한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가장 나다운 방법의 잘 디자인 된 미친짓을 말이다. 제너럴닥터는 2001년부터 생각 해 왔던 이 같은 내용을 실천한 것이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를 따듯하고 아름다운 정도가 아니라, 환자가 괴로워하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관계로 만들고 싶었다.”

 

- 홍대 앞 거리는 ‘젊은 사람들이 노는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굳이 이곳에 개원한 이유는.

 

“홍대 주변에는 병원이 없다. 한마디로 의료 사각지대다. 제너럴닥터를 제외하고 홍대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은 지하철 홍대입구역 근처에 있다. 한참을 걸어 내려가서 의사 1~2분 만나고 오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기능적인 불편을 해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젊은 사람들 왕래가 많은 곳이다 보니 젊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형태의 공간이어야한다고 생각했다. 병원과 일대일로 결합한 형태의 병원이 아니라 카페인 척 하는 병원을 만들었다. 제너럴닥터는 병원과 카페를 함께 운영하고 싶은 의사들의 생각과는 다른 형태다. 여기에는 검사장비도 없고, 위생을 위한 최소한의 장비도 없고, 예방접종을 하거나 해서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최소한의 무엇인가가 없다는 오해를 받는다. 그러나 이 곳의 목표는 의료에서 외면받고 있는 이 지역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게다가 젊은 사람들은 의료가 뭐고 이런 말에 혹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홍대, 카페, 고양이, 치즈케익이 있는 병원이라는 것에 더 매력을 느낀다. 기존 의료에서 잘 하고 있는 것을 여기까지 가지고 와서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 어떻게 보면 극단적인 형태의 병원이 탄생하게 됐다.”

 

- 최근에 의료생활협동조합(의료생협)의 형태로 운영방식을 바꾼 것으로 안다.

 

“제너럴닥터가 의료생협이라는 형태를 선택한 것은 함께하고 싶고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처음 제너럴닥터를 시작할 때는 사회적기반이나 물적·인적 인프라가 없었기 때문에 현실성도 없고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는 상황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5년 정도 실험을 하면서 환자와 친구처럼 되고 카페같은 환경에서 진료를 볼 수 있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흔히 말하는 충성도 높은 고객을 대상을 할 수 밖에 없고 달리말해 인간적인 관계 형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제너럴닥터는 그런 사회적 합의에 의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열려있는 공간이기는 하지만 진입장벽이 더 높다. 제너럴닥터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들만 모여서 노는 곳이고 그런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폐쇄적인 공간을 만든 것이다. 일종의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일차 진료를 하는 것이다. 홍대는 문화적 기반의 커뮤니티를 진료하는 것이다. 의료생협이 되기 전부터 NHN에서 사내진료도 해 왔다.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공간이 회사고 회사 속에 있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젊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머무르는 공간에서 진료 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의료생협이 됐으니 기업과의 제휴를 통해 기업 내 의원을 만들고 싶은 계획도 있다.”

 

- “안녕하세요”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안녕하세요’는 의료이용자가 내 의사를 지정해서 그 의사랑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다. 일종의 주치의 제도다. 환자가 의사를 선택할 수 있지만 의사도 자기가 보고 싶은 환자만 보는 것이다. 마치 사랑의 작대기 뭐 그런 것과 비슷한 형태라고 보면 된다. 매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의사에게 전문성은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공통의 관심사 등을 통해 딱딱하게 진료를 받는다는 느낌이 아니라 의사와 만나는 것이 즐겁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늘 아픈 이야기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내 일상을 정말로 공유하고 싶은 친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렇게 나와 공감할 수 있고 즐겁게 진료를 볼 수 있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만들어주는 시스템이 ‘안녕하세요’다. 이 시스템을 이용해서 문자, SNS, 전화로 의사와 환자가 소통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 의사가 환자를 방문할 수도 있다. 이제 시작단계다보니 갈 길이 멀다. 제너럴닥터를 운영하면서 진료비 가격 문제나 의료법 위반 여부, 범용성이 없다는 등의 문제나 의문에 부딪힌 적도 많다. 그러나 카페와 병원을 함께 운영하는 아주 섹시한 모델을 만들어서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을 만나 순수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그 관계가 단단해 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안녕하세요’도 처음에는 이해하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적겠지만 이해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순수한 관계를 만들어나가면 파급력이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

 

- 제너럴닥터같은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 의사들이 더 있을 것 같다.

 

“의사들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적 합의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최초에 인력풀이 형성되는 과정인 의대 입학부터 수련 과정이 사회적 합의에서 멀어지게 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의사들이 보수적인 성향을 갖게 되고 사회적 합의에 취약하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의사와 환자간 관계에 있어서 신뢰가 많이 부족하다. 의사들 입장에서는 동네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나를 믿지 않고 주변 사람들 의견이나 건강식품 회사 말을 더 믿는 것 같은 고민을 한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현실적인 의견조율이 필요한 이유다. 그런 상황에 염증을 느끼는 의사들도 많을 것이다. 예컨대 어디 틀어박혀 있는 것을 싫어하는 의사인데, 날씨가 좋으면 밖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밖에서 햇볕 쬐고 싶은데 막힌 공간에서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제를 해결 해 주는 입장이라면 의사의 인권은 무시되는 것이다. 제너럴닥터가 생각하는 좋은 시스템은 밖에 나가고 싶으면 밖에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의사라는 정체성이 밖에서도 잘 발휘될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을 원하는 의사들은 제너럴닥터에 와서 함께 일 할수도 있고, 이곳의 시스템을 배워갈 수도 있다”

 

- 제너럴닥터같은 실험적인 병원을 꿈꾸고 싶은 의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나는 개인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 지속가능한 행복이어야 한다.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소모되는 것도 안 되고, 지독한 자기만족만을 위한 것도 안 된다. 내 행복을 생각하면서 사회적인 부분도 생각해야 한다. 그게 잘 되지 않으면 폭력이 된다.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이유다. 낭만주의에 빠지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소 꿈꾸던 동화 같은 삶을 사는 것이 여과 없이 현실에 투영 돼 버리면 일방적인 폭력성이 생기게 되고 지속가능성 역시 사라지게 된다. 이상주의나 낭만주의에 빠지지 않으려면 굉장히 냉혹한 선택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의사들이 제너럴닥터의 사례를 보면서 의사로서 느끼는 답답함을 나 혼자 느끼는 것이 아니구나 생각했으면 좋겠다.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을 때 혼자서 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 요령이 있고 잘나가고 혼자만 아는 의사가 아니라,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계속 고민 해 왔던 의사들이 여기서 함께 그런 뜻을 펼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제너럴닥터에서 의사 모집 공고를 내고 면접을 볼 때 했던 말이 있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만날 수 있는 시간만큼은 행복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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