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덕(건강보험공단 정책연구원 보험정책연구팀장, 가정의학과 전문의)

현재 건강보험공단에는 두 명의 의사가 근무하고 있다. 한명은 보험급여실에서 파견 근무 중이고, 다른 한명은 건강보험정책연구원 소속이다. 이 중 건강보험정책연구원에서 보험정책연구팀을 이끌고 있는 윤영덕 연구원은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올해 입사 3년차를 맞았다. 윤 연구원은 의료정책을 연구하고 제도화하는데 매력을 느껴 공단 연구원직을 결정했다고 한다. 그는 ‘보고서용 연구’가 아닌 실제 제도화될 수 있는 연구를 하고 싶어 한다. 지난해 공단 연구과제로 ‘건강보험가입자의 합리적인 의료이용 유도방안 연구’를 진행한 그는 극단적인 과다의료이용자들에 대한 본인부담금 규제의 필요성을 제안한 바 있다. 현재 복지부는 이 연구결과를 토대로 과다의료이용자들의 본인부담금 인상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올해는 ‘한국형 만성질환관리모델’을 연구하고 있다는 그를 공단에서 만났다.
 

-공단에 문을 두드리기까지 많은 경험을 했다고 들었다. "의도한 건 아닌데 여러 경험을 하게 됐다. 의대를 졸업하고, 평택에서 공중보건의를 거쳐 모교에서 인턴, 서울보훈병원에서 레지던트를 지냈다. 질병관리본부에서도 만성질환관리과에서 6개월을 일했다. 전문검진센터와 노인병원도 잠깐이지만 기억에 남는 곳이다. 2009년 11월 공단에 입사했으니까 벌써 2년 반이 다 되간다."  

-진료가 아닌 보건의료정책 연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대단한 신념 보다는 살아가며 겪은 경험들과 상황들이 진로를 결정하게 된 것 같다. 사실 의대 졸업 때부터 무슨 과를 전공할지, 어떤 의사가 될지를 고민하다가 끝내 결정하지 못하고 공보의를 지원했다. 보건지소에 근무하며 시골 어르신들과 함께 지내다보니 사람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진료할 수 있는 일차의료에 관심을 갖게 됐고, 자연스럽게 가정의학과를 지원하는 계기가 됐다.일차의료와 보건의료정책에 매료된 건 레지던트 시절 보건대학원에 다니면서부터다. 보건의료계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공부하는 동안 진료도 좋지만 보건의료정책을 바꾸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공단에서 일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면.

"정책연구를 하는 동료들도 대부분 그렇고 나 역시도 연구하고 제안한 정책들이 현실에서 반영될 때 성취감을 느낀다. 물론 정책에 반영되지 않더라도 크게 낙담하진 않는다. 원래 정책학 이론 중에 ‘garbage can model’이란 게 있다. 문제에 대한 개선안을 준비해 놓고 있으면, 쓰레기통에 가 있다가도 여러 조건과 정책환경이 맞아떨어질 때 쓰레기통에서 나와 정책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얘기다."

-작년에 진행한 건강보험가입자의 합리적인 의료이용 연구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주변에서 많이 걱정하던 연구주제였다. 과다의료이용자의 도덕적 해이로만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 연구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전국민 건강보험급여자료 분석을 통해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료이용현황과 다빈도 의료이용자의 특성을 분석하고, 합리적 의료이용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 연구였다. 건강보험이 기본적으로 사회연대성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부담능력에 따른 보험료 부과’와 ‘의료필요에 따른 의료이용’이 원칙이다. 우리나라는 주치의제도나 의료전달체계 등 합리적 의료이용을 가능케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에 일년동안 1,806번 외래를 방문하는 등의 극단적인 사례가 나오게 되는 거다. 복지부의 올해 업무계획에 과다 의료이용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다."

-올해는 어떤 주제로 연구를 진행 중인가.

"인구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에 대응해 보건의료체계를 치료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논의는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지만 구체적인 실행방안은 마땅히 없었다. 그래서 건강보험이 예방영역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할지, 어떤 예방서비스를 어떤 모형 속에서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연구할 계획이다."

-만성질환관리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급여체계 안에서 움직여야할 것 같은데.

"맞다. 예방서비스를 행위별수가제 하에서 제공해서는 작동하기 어렵다. 만성질환관리의 핵심은 생활습관 개선을 위한 교육상담 등 예방서비스가 포괄적으로 제공되고 지속적인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예방서비스를 제공할 때 의사에게 보상을 해주는 게 아니라 환자의 건강이 향상에 이득이 되는 구조로 작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주치의가 만성질환자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되 예방서비스를 제공할 유인이 있도록 인두제 및 성과지불방식의 지불제도를 적용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현 일차의료기관의 특성상(단독개원 등)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는 표준적인 일차의료기관의 구조와 기능을 제시하고 적절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 동의하고 준비된 의료기관이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의사 출신 연구원으로서 보건의료정책 연구와 제도화에 더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가정의학은 일차의료의 개념 및 일차의료의사의 역할을 알고 그에 맞는 지식, 기술, 태도에 대해 배우는 학문이다. 또 가정의학의 쓰임새만을 이야기 한다면 최근 이슈가 되는 만성질환관리, 예방 및 건강증진 강화에 대해 보건의료체계를 잘 이해하면서 바람직한 제도를 구상하기에 적합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사로서 정책연구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의사의 전문지식보다는 보건의료체계나 정책에 대한 이해에 있어 일반인보다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보건의료정책 중 가장 우선으로 개선돼야 할 사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보건의료체계 역시 아픈 사람들이 더 잘 치료받고, 돈이 없더라도 의료이용에 어려움이 없게 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아니겠나. 또 미리 예방해서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보건의료체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딱딱하게 이야기하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사전 예방적 보건의료체계 구축이다. 어찌 보면 무엇을 바꾸는 게 가장 시급한가를 연구하는 게 가장 시급한 연구주제일 것도 같다. 가장 의료이용에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누구이고, 무엇이 힘든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게 중요한 시점이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