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국(대한한의사협회 한의학정책연구원장)

대한한의사협회는 그동안 한방건강보험 급여의 확대 및 보장성 강화, 한방의료기관의 만성관리제 참여, 한방물리요법의 보장성 확대,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허용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하지만 그 때마다 번번이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한의협 산하 한의학정책연구원의 행보가 주목된다. 지난 2006년부터 한의협 산하에 한의학정책연구소가 설립·운영됐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였다. 그러다 지난해 협회 정관 개정을 통해 한의학정책연구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연구원으로 명칭이 바뀐후 조재국 초대 원장이 최근 취임했다. 조 원장은 한국보건경제·정책학회 회장, 보건행정학회 회장,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조정실장·보건의료연구실장 등을 지냈으며, 보건의료정책 분야의 전문가로 손꼽힌다. 한의협이 한의학정책연구소를 연구원으로 개칭하고, 보건의료정책 전문가를 초대 원장으로 임명한 것이 예사롭게 여겨지지 않는다. 지난 26일 조재국 초대 원장을 만났다. 


-경제학자 출신으로 보건복지부 장관 자문관, 보건복지 규제심사위원회 위원, 의약분업실행위원회 위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위원, 한국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조정실장 등을 지냈다. 그간의 이력에 비춰볼 때 한의계 입성이 의외라는 평이 있다.

“작년 3월 보사연 재직시절 복지부로부터 한방의료이용 실태조사와 한약소비 실태조사에 관한 연구 용역을 받은 적이 있다. 1년 넘게 연구를 하면서 한의원을 비롯해 한방병원, 한약재 유통업체, 도매협회, 한의사협회, 한약재 재배생산조합 등을 찾아 전국을 다니면서 한의계의 현황에 대해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다. 특히 건강기능식품의 홍수 속에서 한의계의 경영이 악화되고 있는 데다 한약재 가격 상승으로 국민들의 접근성이 저하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한의계 발전을 위한 계기가 필요하다고 느끼던 참에 한의협 김정곤 회장으로부터 한의학 연구의 기틀 마련에 대한 요청이 들어와 연구원장을 맡게 됐다."

-연구원의 구성과 역할은.

“협회의 실질적인 싱크탱크(Think Tank)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한의학 관련 정책대안 제시, 대안의 근거 구축, 통계 및 정보 마련 등 본연의 업무에 매진하겠지만 무엇보다 회원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연구원 구성은 정책연구팀, 동향분석팀, 정보통계팀과 행정실이 지원하는 1실 3팀을 계획하고 있다. 정책연구팀은 연구를 주로 하고 동향분석팀에서는 한의계를 둘러싼 의료계의 제도 변화, 연구논문, 해외 정보 동향 등을 온라인으로 회원들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정보통계팀은 말 그대로 한의학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주업무로 하게 된다.”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한 자료는 어떤 식으로 확보할 것인가.

“협회 내에도 많은 데이터가 존재하고 있지만 문서화 돼 있을 뿐 통계로 사용하기에 무리가 있는 것 같다. 일단 협회 자료를 우선적으로 체계화 시키고 심평원 및 국민건강보험공단, 복지부, 통계청 등의 자료 중 한의학 쪽에서 필요한 자료들을 선별해 데이터베이스화 시킬 것이다. 정책적 근거 마련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외에도 한방의 과학화를 목적으로 임상통계도 계획 중이다”

-한의학에서 임상통계가 가능한가.

“현대의학은 새로운 이론이나 치료기술이 나오면 이를 학회나 논문으로 공개해 다른 의사들이 직접 경험해보는 등 비교 평가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한방은 근본적으로 임상치료 결과에 대한 통계가 의학과 큰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면 한방은 예로부터 비방(祕方)적 측면이 있어 비방이 있는 한의사가 명의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비방은 소문으로만 존재할 뿐 병이 나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환자에게 직접 물어볼 수 밖에 없다. 진단과 처방에 있어서도 주로 옛 원전(原典)에 의존하다보니 원전을 해석하는 한의사별로 차이가 발생한다.이런 것들이 임상통계로 구축돼서 학회지나 논문으로 발표가 되고 검증을 받는 절차를 거치기엔 부족한 면이 있다. 그렇다고 임상통계에 기초하지 않고서는 한방의 과학화는 요원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대한의학회 산하에 많은 학회가 있듯이 한의계도 대한한의학회 산하에 분과별 학회가 있다. 한의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회들이 있기 때문에 이를 중심으로 임상통계나 매뉴얼 및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단기간에 이뤄지긴 어렵겠지만 임상통계 구축과 가이드라인 및 매뉴얼 구축이야말로 한의학의 과학화와 세계화의 밑바탕이 될 것이다.”

-한의협은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 의료기기 사용이 한방의료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한방의료의 임상 결과나 과정을 현대과학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게 있다. 경락(經絡)이나 기(氣) 등이 예가 될 것이다. 과정의 과학적 규명은 한방의 근본적 한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방의료가 현대 과학을 통해 증명이 되지 않고서는 과학화 및 세계화는 어렵다. 따라서 치료 결과만이라도 통계적으로 처리돼야 하는데 그 통계를 내는데 도움이 되는 의료기기의 사용은 부분적으로 인정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한방의료 원리에 엑스레이가 맞지 않다는 일부의 주장은 옳지 않다. 한의사가 치료도구로써 엑스레이를 사용하는 것은 잘못됐지만 진단 및 치료결과를 비교하기 위한 사용은 허용돼야 한다.”

-한약재는 같은 약재라 하더라도 재배 여건에 따라 효능의 차이가 있는데 약재의 표준화가 가능한가.

“지난해 보사연에 근무하면서 한약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며 한약재 재배생산조합 및 생산 농가를 조사한 바 있다. 과거에 비해 과학적 재배 관리를 통해 재배의 규격화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한국한방산업진흥원을 중심으로 약재의 재배에서부터 천연물신약 개발, 각종 한방 관련제품 개발 등을 지원하고 있으며 천연물 물질은행 구축사업과 한약제제형 현대화사업을 통한 한의약의 과학화와 산업화를 추진 중에 있다.”

-만성질환관리제에 한방의료기관이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지난 2010년 기준으로 전국의 한방의료기관은 총 1만1,800여개에 이른다. 이중 98.6%가 의원급으로 의료기관 종별 분류 중 일차진료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또한 통계청의 의료서비스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지난 1999년 이후 2010년까지 5회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연구원에서 19대 총선 후보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중 99%가 만성질환관리에 한방분야가 포함돼야 한다고 응답했다. 만성질환관리제에 한방의료기관을 배제한 것은 국민의 의료선택권과 한방의료기관의 평등권을 제한한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는 만성질환관리제에 한방의료기관을 포함시키는 것은 물론 현재 고혈압과 당뇨로 한정돼 있는 만성질환의 범위도 확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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